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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May 15. 2017

잘 돼가냐?

네 잘 되고 있어요

괜히 말했다.

사업한다고. 

아마 내가 아는 지인 10명 중 2명 정도에겐 말한 것 같다. 이제 시작한 지 2 달여가 되어가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 주신다. 


"잘 돼가니?"

"사업 잘 돼?"

"잘 되면 취직시켜줘."

"매출이 어느 정도야?"

"직원은 몇 명?"


처음엔 이런 질문에 기가 죽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요..."

"그게... 아직 시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잘 되기 전에 당신 가족들을 망하게 할 수도 있는데요."

"매출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저 혼자 하고 있어요."


매 번, 길게 설명해야 하다 보니 내가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턴 그냥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다. 


"네 잘 되고 있습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지인 분들도 관심이 있고 응원해주시는 마음에 물어보셨을 텐데 괜히 내가 자격지심으로 꽁 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전부터 내가

"회사 잘 다니니?"


라는 질문에 항상 긴 서술형으로 대답해서 그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나 보다. 보통 사람들이 회사 잘 다니냐고 물어보면, 진짜로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아니고, 일종의 '안녕하신가요?'의 질문이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안녕하신가요'에 대한 질문도 직접적인 질문은 아니다. 영어로 바꿔보면 'Are you well? Are you alright?'이라는 질문인 것 같은데 이것도 좀 이상하다. 영국에선 alright? 을 귀찮으니깐 aight?이라고 hello처럼 쓴다고 했는데 이거랑도 좀 다른 것 같다. 미국에서 How are you?라고 물어보는 것도 오늘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이나, 아니면 그냥 hello의 의미이지 않을까. 

듣기로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밤마다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침에 보면 '안녕하신가요'로 정말 밤새 '안녕'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에서 '안녕하신가요'인사의 유래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흔히 '밥 먹었니?', '식사하셨습니까?'는 정말로 외국엔 없는 질문인데, 이 것 역시, 정말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hello의 의미일 뿐이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하도 밥을 못 먹어서 정말 그 당시엔 '밥을 먹고 다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나... 밥은 걱정 없이 먹고 다닐 정도로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친구들의 부름을 단계적으로 거절하기 시작했고, 오랜만이라고 모이는 지인들의 모임에도 이제는 출석률이 높으면 안 되겠다. 나는 정말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지난 두 달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내 주제도 모르고 말이다. 거기까지 가 놓고, 오가는 이야기에, 분위기에 묻어가지도 않고, 온통 내 제품과 고객 생각만 하다 오니 그 모임이 즐거울 리 없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거절하고 양해를 구하자. 

그리고 물어보면 그냥 잘 되고 있다고 대답해야지. 그리고 정말 잘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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