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운명하셨다."
돌아가셨구나. 한 숨을 길게 쉬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일로 외부에 계셔서,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밥을 해 주시고, 잠을 재워 주셨다. 복덕방에 데려가 화투를 치시기도 했고, 친구분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돌아다니시기도 했다. 항상 밥은 30번 이상 씩 씹고 넘겨야 했으며, 식사 전, 숟가락을 물컵에 세 번 담가 밥알을 숟가락에 묻히지 말아야 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나를 버려두고 자주 밤에 안 들어오시긴 했지만, 나는 할아버지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이를 드시고 이제 끝을 바라보시는 상태가 되었을 때, 슈퍼에 가신다고 문을 열어놓아 우리 집 고양이가 가출을 했다. 그리고 2주 만에 돌아온 고양이는 결국 3일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성인이 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애정이 많이 식었다. 취업을 하기 전, 집에 있을 시간이 많을 때는, 이래 저래 시간도 보내고 정도 다시 쌓고 했는데,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밖을 싸돌아 다니니, 앉아 몇 마디 나누는 것이 솔직히 꽤나 어려웠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집 2살짜리 고양이를 죽게 만든 (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멀리 떨어지면 효자가 된다고 하나.. 미국에 있을 때, 그리고 갓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사촌 동생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에게 무척이나 잘했다. 보고 싶었고 반가웠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바쁜 한국생활에 쩔다 보니, 이 모든 게 다 귀찮아질 정도로, 짐으로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사랑과 마음을 주지 않은 채, 있다가 할아버지는 결국 가셨다.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이제 장례식장을 가야 한다. 마음이 덤덤하다. 상주 역할을 해야 할, 삼촌은 몇 달 전, 이미 운명하셨고, 직계 손자인 내 사촌 동생 역시, 부모님을 그렇게 힘들게 하다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더 어린 사촌 동생이 있지만, 비공식 상주 역할을 해야 한다. 어릴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내가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상주가 되어야 하기도 하겠다.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분노가 많았다. 결혼하고나서부터 먹고 놀아 할머니를 힘들게 했으며, 평생 술에 절어 가족을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란 이유만으로, 나를 키워주셨기에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마가복음 필사를 완성하셨다고 좋아하셨던 얼굴이 생각이 난다. 마치 초등학교 개구쟁이 얼굴과도 같았다.
이제 그를 보내야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이제 30대인 나는, 부모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원컨대, 부모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조만간 30년 간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뭐, 나도 마차가지이다. 나의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섰을 때, 생각보다 준비하며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준비하며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된 길인 것 같다. 때문에, 보통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전에 일 년에 한 번씩은 유서를 업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사실 아직 초본도 없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 초본부터 완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