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우리 집 고양이

꿈같던 너와의 시간

by 쿠우보이

여느 때와 같이 퇴근하고 집에 온 날.

네가 문 앞에 있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검은, 발은 하얀 아기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

'난 집주인인데. 아 정확히는 우리 부모님이 집주인이고 난 집주인 아들이야.'

'그래서? 나하곤 상관없음.'


하고 새침하게 여기저기 둘러보던 너

작고 귀엽던 너


"엄마 얘는 갑자기 뭔가요."

"시장에서 고양이 파는 아줌마가 못생겼다고 그냥 가지고 가래"

"음... 없어 보이긴 하네요. 볼 양쪽에 매직으로 점찍어놓은 것 같네"

20150419_134929.jpg 실제로 점입니다. 매직으로 그려놓은것 아니에요.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다.

쪼그만 너는, 붙임성이 강했지

애기때부터 내 배 위에 와서 자기도 하고. 내가 계속 안고 있어도 별로 싫어하지 않았어.

난 고양이들은 다 별로 안고있는걸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군.


고양이. 넌 식탐이 참 많았어. 우리가 하루에 두 끼씩 정해진 시간에만 줘서 그런지,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다녔지. 우리 음식도 훔쳐먹고, 음식 있으면 뜯어 놓고. 말썽꾸러기

IMG_1061.JPG


넌 높은 곳에 뭐만 있으면 다 떨어뜨렸지. 잘 때도 참 귀찮았어. 뭘 올려놓기만 하면 다 떨어뜨리니..

잘 때 참 짜증이 났어. 쿵 쿵 떨어뜨릴 때마다.

창고 위에 있던 바구니도 한번 쓰러뜨리고, 주방에 있던 쓰레기통도 몇 번 쓰러뜨려서 정말 짜증이 났었지. 치우느라 고생이 많았어.

피자나 치킨 시키면 예전 니오는 신경도 안 썼는데 넌 맨날 먹자고 덤비고.. 아 그래서 널 가둬 놓기도 했었어 우리가 먹을 동안.


그래도 가끔은 귀여운 짓을 많이 했지. 집에 오면 기다리고 있다가 반기거나

과자 봉지를 말아서 던지면 주워 온다든지. 너무 귀엽고 대견스러웠어.

한 번은 탕수육을 시켰는데 자꾸 조심스레 손을 얹는 너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어.

가끔은 널 앉고 잤었지. 내가 발이 부러져서 침대에서 못 움직일 때 널 한 번 앉고 잤어. 참 따뜼했었지.

던지면 줏어오던 개냥이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오는데 빌라 계단에 어디서 많이 보던 고양이가 있는 거야. 우리 집 고양이인데?

뭔가 이상해서 일단 널 쫒아가서 잡아서 집에 데리고 왔어. 널 집에 데리고 오면서 난 화를 냈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얘가 밖으로 나가느냐고.. 네가 없어질 까 봐 깜짞 놀랐었어.

그리고 우리는 또 같이 살게 되었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몇 주 전에, 정신이 없으셔서 현관문을 열어 놓으셨고, 결국 넌 다시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우리는 널 2주째 못 찾았지.


널 찾아다니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가 수시로 밖을 돌아다니고 먹이도 놓고 다니고 그랬어.

널 찾고 싶었어. 네가 없어진 주는 비가 많이 왔어. 왜 하필 그때 비가 오는지..


그리고 3주째 널 찾았어. 기적 같은 일이었지. 난 정말 감사해했어.

그리고 부모님은 널 씻기고 이제 우리 따뜻한 집에서 같이 살자고 약속했지.

그런데 며칠째 넌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우리는 걱정이 됐지만, 아 많이 못 먹다가 왔으니, 조금 있음 좀 나아지겠지 했었어.

IMG_2615.JPG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던 우리 고양이...

그런데.. 넌 나아지기는커녕 계속 토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물도 먹지 않고 화장실 구석에 서서 나오질 않았어.


더 이상 귀여운 소리도, 애교도 없었어.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하니 고양이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에 그렇게 혼자 죽음을 준비한대. 난.. 그때까지도 믿지 않았어. 그래서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아파하는 널 보며, 조금만 참아 형이 회사 가서 이야기하고 와서 병원 데리고 갈게 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어. 지금 가면 괜찮겠지.


점심시간에 조퇴를 하고 널 데리러 왔는데..

넌 굳어있었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이야.

..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어.

너무 슬퍼서 울음이 잘 나지 않았어.

너무 딱딱하고 차가웠어.

항상 따뜻하던 네가 말이야

소파 위에 널 뉘었어.

소파를 참 좋아했는데..


어떻게 하니 너를..

회사 따위 집어치우고 병원에 널 제일 먼저 데려 왔었는데.. 그렇게 휙 가버릴 줄 몰랐어.

난 널 데리고 병원에 갔지. 몸이 굳어서 가방에도 잘 들어가지 않더라고. 그래서 수건으로 널 가려줬어.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 물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던 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애교 부리고 같이 따뜻하게 잠자던 우리 가족과 넌 꽤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넌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제 1살 반밖에 안된 애기인데.. 넌 너의 죽음을 그렇게 어린 나이에 받아들여야 했니. 미안해..


그렇게 배고파 해도, 항상 정량만 줬었는데. 탕수육 먹고 싶어서 조를 때도 한개도 주지 않았는데.. 우리 치킨 편하게 먹자고 너 방에 넣어놓고 먹기도 했었지. 생각해 보면 하나 두개 정도는 그냥 줄걸..

밤에 잘 때 자꾸 떨어뜨린다고 혼냈었지. 인터넷 찾아보니깐 자기한테 관심좀 보여달라고, 놀아달라고 하는 거라고... 아, 좀 더 관심 가져주고 쓰다듬어 주고, 같이 앉아줄걸.. 혼내기보다는... 너무 후회가 된다. 왜 네 맘을 몰라줬을까 나는..


이제 너무 미안해서 다른 고양이는 집에 들여오지 못할 것 같아.. 자꾸만 네 생각이 난다. 그렇게 표현을 많이 했었는데 난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채, 쓸쓸히 죽어갔지..


가장 마지막 순간에도.. 널 너무 외롭게 혼자 뒀어.. 회사 가야 한다는 핑계로.. 너무 미안해.

무지가 다리 건너 그 곳에 가서는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키보드계의 끝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