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것
우리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선택은 피할 수 없다. 선택을 피했다고 생각했다면,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도 '선택'이다. 아침에 알람이 울렸는데, 바로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알람을 끄고 5분 더 잘 수도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도 모두 선택의 범주안에 들어가게 된다.
때론 우리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것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 순간에서만큼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 안에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하기 위해서 '결단력'과 '용기'도 필요하지만, 또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나는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서 생각보다 크게 깨달은 것들이 없는데, 없는 와중에 하나 정말로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부끄러울지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혹자는 한계선을 낮게 잡으면 결국 breakethrough(한계점 돌파?) 가 없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맞다. 위대한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 놀라운 일을 이뤄내는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목표를 두고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나는 아니다. 나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나는 그런 깜냥이나 순발력, 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나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폭과 정도가,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큼 엄청 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작은' 용기를 연속적으로 발휘하여, 작은 선택을 쌓음으로 무언가를 해내길 원한다. 티글 모아 태산이다. 작은 결단은 눈에 띄지 않지만 결국 뒤돌아보면, '와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기대와, 주변이 바라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있다.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그분들은 아마도 이미 나의 미래의 모습들을 어렴풋이 그림으로 그려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감사하지만, 나의 미래의 모습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그 그림이 그려지기까지는 수많은 나의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이겨내야 하는 나의 고독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누구도 나의 선택과 책임에 대해 도와주지 못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실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님이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시지는 않는다. 좋은 아버지는 아들의 삶을, 딸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경험하게 하고, 사랑과 헤어짐에 아파하며, 이 세상에서의 피눈물도 없는 냉정함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길 원한다.
수많은 조언들과 자기계발서 내용들이 판을 치고 있다.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지만, 지나치게 삶의 선택을 주도적으로 가져가려 하는 용기 있는 청년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그렇게 일 년이 되고 그렇게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선택에 대해 온몸으로 직면하여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다 보면, 성장하는 나와 나로 인해 좀 더 나아지는 주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