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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Nov 14. 2016

국민의 목소리

집회 참가 후기

12/5 저번 주와 다르게 더 많은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누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야하기 좋은 날씨'라고 그랬다. 점심에 고깃집에 가서 불고기 전골을 먹었는데, 사장님께서도 오후 4시까지만 장사를 하고, 문 닫고 시위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친구와 3시 반에 시청에서 보기로 했는데, 방심해서 늦었다. 지난주에는 버스를 타고 가니 서울역까지밖에 가질 않아서, 이번에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역시나. 지하철을 2개나 보내고서야 탈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 시청에서 내리는지라 지하철역에서 서울광장에 나오기까지도 거의 20분 이상이 걸렸다. 이미 서울 광장은 광화문부터 시청 아래까지 꽉 찬 상황. 시간은 오후 4시 정도였다. 집회의 본 공식 시작 시각은 7시였는데 말이다. 말로만 듣던 '단두대'도 보였다. 

단두대 ㄷㄷㄷ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수십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선언문을 읽고 행진에 들어갔다. 공부하기 바쁜 어린 친구들의 목소리에 힘이 됐는지 유난히 어른들의 응원의 박수가 컸다. 한편으론 이런 어린 학생들이 이 겨울에 이 곳을 나와야 할 정도로 시국이 난감한 상황인지 매우 안타까웠다. 중간에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려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니가 거기 가 있을 줄 알았다. 조심해 다치지 말고.'라고 짧은 말로 걱정을 해 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꽤 쿨하신 분이다. 

자랑스런 중고생 친구들

광화문 광장 메인 무대 앞에 친구와 자리를 잡고 공식 행사 전 공연과 발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물리적으로 청와대로의 행진이 어렵다는 말에 친구와 나는 자리를 일어났다. 시각은 6시. 

어디로 가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무렵, 중고등학생들의 빠른 박자의 구호가 들렸다. 걸음걸이도 일반인들의 두 배정도 되었던 것 같아 구호를 함께 외치며 따라가기에 바빴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던 주변에 있는 시민들도 중고등학생들의 행진을 힘차게 응원했다. 그 어른들의 얼굴 속에도, 대견함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내자동 로터리까지 도착하자, 이미 대학생 연맹? 들이 미리 도착해 발언과 선언문을 읽고 있었다. 함께 구호를 외친 후 우리는 청와대 쪽으로 더 전진해 나갔다. 여기서부터는 사람 머리 하나 크기의 여유도 없아 앞뒤가 막힌 채 전진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앞에 바로 폴리스라인이 있었고, 벽과 전투경찰라인으로 청와대 가는 길이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더 앞으로, 더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서 있는 경찰들과 채증 카메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7시까지 평화롭게 이어지던 시위가, 이후부터는 조금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뒤로 시민들이 더 모이자, 사람들은 청와대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좀 더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경찰들이 길을 터 주기를 요청했다. 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쉬어갔다. 

옆에 있던 한 여성 분은 수시로, 현재 상황을 카톡의 여러 단체방으로 퍼 나르고 있었다. 사람들에 끼여서 본의 아니게 대화문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잠복경찰인 줄 알았으나, 아마도 수습기자 일을 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의도치 않게 앞 쪽으로 왔지만, 현재 대통령 하야 시위에서 가장 일촉즉발의 상황인 곳에 와 있던 것을 깨달았다. 일부 상대적으로 과격한 분들의 행진으로 앞선 몇몇 경찰들의 방패를 빼앗아 경찰 버스 위로 올려 버리기도 했다. 내 앞으론 갑자기 경찰의 무전기가 던져지기도 했다. 예상컨데 맨 앞에서 뺏어서 뒤로 던졌던 것 같다. 하마터면 내 앞에 계시던 여성분들이 다칠 뻔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의 과격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찰들과의 물리적 접촉을 피하려 노력하고, 과격 시민들을 자제시키는 아름다운 시위문화를 목격했다. 

내자동 청운동 주민센터 앞 폴리스라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폴리스라인에서는 전체 시민들의 목소리와 흥분이 커지자, 다급한 목소리로 의경들에게 명령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속으로 '아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회사 상사분이, 폴리스라인까지는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조금 걱정이 되고 무서워서 중간에 껴서 소심하게 목소리로만 열심히 '하야'를 외쳤다. 


이렇게 무서운 와중에 갑자기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부르릉부르릉' 들렸다. 아, 이제는 오토바이가 와서 밀어버리려고 하는구나. 큰일이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롯데리아 배달 오토바이였다. 배달하시는 분의 얼굴 표정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오토바이 뒤로 과격하신 분들이, "앞에 누가 햄버거를 주문해서 반드시 폴리스라인을 뚫고 햄거버를 배달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분명 배달하시는 분의 표정은 가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 상황에 햄버거를 시켰을 까...

코미디와 같은 장면이었다. 분명 오토바이는 앞으로 갔는데 되돌아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갑자기 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상여가 등장했다. 깜짝 놀랐는데 농민들이 상여복을 입고 들고 오신 것이었다. 중간에 다시 상여를 들어야 한다면서 일손을 보태라는 요청이 왔다. 얼떨결에 상여를 잡았는데, 이 때는 정말 무서웠다. 아 어쩔 수 없이 맨 앞으로 가야 하는구나....

5분 뒤에 다행히? 농민분들이 오시더니, 농민이 아니면 상여를 들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  


9시쯤인가.. 경찰이 길을 비켜준다는 말들이 오고 갔다. 우리는 너무 고무되었다. 그래서 안전하게 경찰들에게 돌아가는 퇴로를 확보해 주기 위해 어렵게 오른쪽으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경찰들에게 "수고했다"라는 목소리들이 더 컸다. 우리 의경 친구들도 어쩔 수 없이 명령에 의해 서 있는 모습들이 수고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경찰 의경분들

그러나, 우리의 정보는 틀렸었다. 한 15~20명 정도의 경찰들만 빠졌지, 폴리스 라인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실망했지만, 정해진 자리에서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친구의 장모님이 싸주신 '장모님 도시락'을 경복궁 옆 앞 거리에 주저앉아 먹기 시작했다. 뭔가 상당히 없어 보였지만, 이 난리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계란후라이에 쌀밥, 그리고 볶음 김치는 환상적이었다. 

꿀맛..


광화문 앞 - 쓰레기를 치우던 몇몇 시민들의 모습


시위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인사동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라면을 사들고 거리에서 나라를 걱정했다. 교회를 다니는, 그리고 교회를 다녔던 우리는 '종교인'과 '시민'으로서의 믿음과 행동에 대해 토론했다. 

정말 많은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This is the music of the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분노한 자들의 노래를 부르는
민중들의 함성이 들리는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들의 음악이라네!

우리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드럼의 박동에 메아리칠 때.

내일이 오면 피어나려는
새로운 생명이 있도다!

- 레 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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