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정리, 노무현 자서전을 읽고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조선일보'가 매일 아침 날아왔다. 대학 입시를 위해 '논술'을 봐야 했는데, 당시 논술에는 신문 읽기가 좋다고 이유로 매일 아침식사 전까지의 짬 시간에 '조선일보'를 정독했다. 물론 흥미 있는 1~3면, 그리고 논술 기자의 사설 등을 주로 읽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이렇게 나는 조선일보를 꾸준히 읽어왔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신문, 언론이란 사실("fact")을 아주 정확하게 전달하는 매개체로 알고 있었다. 신문에 주관적인 의견을 넣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교과서=사실, 신문=사실, 뉴스=사실이 나와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일반적인 것이었으니 나 혼자만 순진했던 건 아니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와서는 아주 창피하다)
그래서 그랬었던 것일까, 나는 맹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김진명 소설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나오는 묘사와 같이, 애국심이 뛰어난 사심 없는 대통령을 해석했고, 김재규 씨의 경우 남한의 핵무장을 막으려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로 해석했다. 그냥 단순하진 않았는데, 김재규 씨의 최후진술 같은 것도 테이프로 구해 들으면서 '목소리가 참 여자아이 같군'이라는 생각도 했으니까.
자연스레 뚝심 있고, 사심 없어 보이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를 좋아하고 지지했다. 당시 박근혜 당대표를 커터칼로 피습한 사건에 대해 상당히 분노했던 기억도 난다. 고3 때 대선이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역시 나는 별생각 없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 문제를 삼는 것은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후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기적적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한국의 정치 상황은 나와 앞으로 관계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역시 너무나도 창피한 이야기지만, 미국에 있는 8년 동안 거의 한국 정치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르바이트, 월세를 내기 위한 하루하루가 내게는 전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으며, 예상치 못한 한국 귀국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계획에 없었던 한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병역 대체복무로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첫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심심 해지는 시기가 많아지면서 나는 여러 다양한 언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건 내가 '세금'을 내기 시작한 다음부터이다. 지금 어려운 시국에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정치에 눈을 뜨고, 올바르지 못한 모습에 당당히 자기 의견들을 내는 모습들을 보면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상당히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너무나도 '내 인생'에만 신경 썼던 것 같다.
어쨌든, 내 인생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때, 단 하루도 한국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돌이켜 볼 수 있는 노무현은 오직, 기록과 영상, 그의 목소리뿐이다. 한국에 살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며 '조선일보'만 봐 왔던 나는 다양한 신문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론은 칼보다 강한 펜의 권력으로 수많은 대중들에 힘입어, 개인과 단체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너무나도 명백했던 정경유착,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는 과연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게 되었다. 예전에 좋아하고 지지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동시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못했던, 검찰의 독립성을 지켜주려는 노무현 저 대통령의 모습에서 '권력을 놓다니!'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아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지'라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워낙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황제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를 짓밟는 것이 당연시되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원래 그래야 했던 행동들이 뭔가 급진적이고 너무 섣부른 행동인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았다. 검찰과 국세청의 독립을 주장했고 실행에 옮긴 사람, 그래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러한 독립성의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려 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믿기 어려운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것 같다.
처음 큰 기대를 하고 치렀던 18대 대선의 주인공이 '박근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광화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집에 걸어갔다. 이명박 정부 때 상식이 통하지 않은 그의 절대권력 앞에서 나는 상식적으로 국민들의 '심판'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 후광에 힘입어 나온, 제대로 된 토론 조차 되지 않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했었나 보다. 그런데 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만행'등을 SNS로 열심히 퍼 나르며 비판했던 내게 한 가지 교훈이 되었다. 선거의 결과는 나와 내 또래 아이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주 조그만 시장에 불과했구나. 언제나 '올바른' 것이 '올바르게 보이지만 더러운'것을 이기는 것은 아니구나. '순진한 정의'가 탐욕으로 가득 찬, 꼼수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좁은 정의의 우물'로는 되지 않는 것이구나.
예전에 실험실에서 일할 때, 한 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노무현은, 올바른 길로 너무 꺾으려 했어. 30도만 꺽지 외 180도를 꺾으려 해서 부러진 거야"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 간첩들이 사주한 '광주 폭동'이라고 표현하시는 분 치고는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나는 노무현의 시도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노무현 역시, 자서전에서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대통령의 의지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더 정의로움이 인정받는, 옳음이 그름을 이기는 나라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대통령으로만 아니라, 이 나라의 여러 정치 보직에서, 여러 직업의 사람들에게서 노무현이 추구했던 그런 제2의 제3의 노무현이 나오길 기대한다. 나부터 그동안 직장인으로서, 앞으로 되고자 하는 창업가로서, '꼼수'를 바라지 않고 공정하고 올바른 길을 지켜내는 것에 힘써봐야겠다. 손석희 jtbc 보도사장을 보면서 나는 '노무현'을 본다. 유시민 작가를 보면서 또 '노무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