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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Sep 17. 2019

열정과 무책임해지려는 욕망 사이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를 마치고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보다 멀리보라.


 구글 스칼라 메인 페이지에 나오는 뉴턴의 말이다. 뉴턴이 학문을 대하는 태도, 그의 겸손함 등이 짧은 문장에 잘 녹아 있는 표현으로 평가된다.


 이 문장은 선행 연구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보다 유리하게 해결했던 것이 자신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밝히는 겸손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고, 학자로서 자신이 선인들의 지혜 위에 올라서 있음을 잊지 말고 겸손해져라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자네는 거인의 어깨에 조차 올라보지 못했으니 열심히 어깨에 올라타도록 하고 좀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충고일 수도 있겠다.  



보츠와나에서 느려 터진 인터넷 속도로 구글 스칼라를 탐색하는 건 고역이다.


 워낙 유명한 말씀이시라 이 문장에 대한 나름의 조사 결과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말이 뉴턴이 처음 한 말이 맞느냐 아니냐부터 시작해, 뉴턴이 이 말을 한 저의가 무엇이냐 까지 꽤 많은 양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저것 읽어 본 결과 뉴턴이 처음 한 말은 아닌 것 같고 그 이전부터 꽤 유명한 문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뉴턴이 겸손보다는 '너는 공부 좀 더 해야겠다(어깨에 올라타라고!)'라는 의미로 쓴 것 같기도 한데, 이 부분은 의견이 갈린다. 어쨌든 뉴턴이 워낙 유명세를 탔고, 뉴턴이 동료(혹은 라이벌)와 주고받던 편지에 이 문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뉴턴의 말로 굳어진 게 아닐까 싶다.

 구글 스칼라는 대학원생일 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접속하던 페이지였는데, 그때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는 줄도 몰랐다. 엉뚱하게 보츠와나에 와서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한가하고 심심하니 잉여력이 넘쳐나는 모양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다'라는 말은 보통 학자나 연구자 집단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집단의 범주를 바꾸어도 꽤 그럴싸한 말이 되는 것 같다.


 요즘 보츠와나에서 내 일상을 돌아보자니 마치 한국이라는 크나 큰 거인의 어깨에서 보츠와나라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거인의 어깨로 내려온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런 큼직한 대상을 어떤 말로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문화? 문명? 시스템? 국민성? 아님 사회라고 해야 할까?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아쉬운 보츠와나다.

 초반 몇 달 간은 물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물이 모자라고, 전기가 자주 끊기고, 식재료가 신선하지 않고, 인터넷이 부족하고... 물질이 부족한 것만 보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문화 지체와 인적 자원의 부재다.

 현지 교사들과 같이 일을 해보니 이들은 너무나 무지했고 게을렀다. 사칙연산을 틀리는 것은 기본이고, 기초적인 과학 상식도 부재했다. 시험문제의 답을 알기는 했지만 어째서 이런 답이 나왔는지 물으면 곧 말이 막혔다. 시험 결과를 평균을 내고 종이 한 장에 요약하는데 일주일을 썼다.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하기 때문이다. 엑셀을 쓰면 빠르다고 알려주려 했더니 배울 엄두를 내질 않는다. 교무실에 컴퓨터가 있고, 잘 작동되는 엑셀을 두고도 아무도 배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깨달았다. 여긴 물자가 부족한 게 아니고,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것이라고.


 중앙 교육부 사람은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처리는 엉망이고, 사전 계획이라는 게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뿐이다.

 일례로, 얼마 전 중간발표회가 있었다. 우리 파견자들로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다. 1년간(정확히는 약 9개월간) 어떤 교육활동을 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발표하는 자리다. 한국인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소속 학교장과 소속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도 모이고, 중앙 교육부의 담당자도 모이는 자리다.

 이런 행사에 앞서 언제쯤 실시할 예정이냐 한 달 전쯤 물어도 답을 못 줬다. 그러더니 일주일 전에 덜커덕 다음 주 한다고 공지했다.


   별 수 있었겠나, 우리로서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꽤 정성을 들여 발표자료를 준비했다. ppt는 기본이고 동영상도 준비해 넣었다. 나의 경우엔 이미 유튜브에 올려놓은 것을 정리해 대충 끼워 넣었지만, 다른 분들은 이날 하루를 위해 밤을 새 가며 영상 편집을 한 분도 있었다.

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지만, 톤 다운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현지인들 표정과 반응들을 보니 어떠한 희망도 느끼기가 어려웠다. 배우려는 의지도 없고, 문제점을 제기해도 부끄러워하거나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은 웃었다. 어째서 일까. 이들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일까?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조차 못하니 그다음 단계로 계획을 하거나 실천의 문제로 넘어가지 못한다.



 위기다. 심리적 위기.

 2년 간 이것저것 실적을 내고 떠나는 것을 목표로 이곳에 왔는데, 약 9개월을 살아보니 희망을 찾지 못하겠다. 무언가 개선하고 성과를 내려는 욕심으로 왔건만, 뭘 바꿨는지도 모르겠고. 이들과 앞으로 무엇을 바꿔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계약 연장을 취소하고 하루빨리 돌아가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실, 이곳에서의 삶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물가도 저렴한 편이고, 크고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 빨래와 청소가 많아 귀찮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감내할 수 있다. 요리에 취미를 붙여 가며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게 사는 편이다.


 하지만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곳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꾸만 실망하게 된다. 좋은 경험과 기억을 가져가지는 못할 것만 같아 두렵다. 보츠와나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도움을 얻어서, 혹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어떠한 장점 때문에 보츠와나가 고맙다거나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지를 못해서 두렵다. 내가 오만한 것은 아닌지, 이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자꾸만 반성하게 되지만 스스로를 반박하지 못해서 더 무섭다.


 조금이나마 성장했다고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그 성장했다 함은 실망감을 자연스럽게 감추는 데 성공했을 때, 분노를 적당히 다른 감정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을 때 등 부정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성장이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내가 많이 달관하게 되었구나 라고 느꼈다. 한국에 살면서도 필요한 깨달음이겠지만, 아예 모른다면 더 좋을 법한 것들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과 답답함이 지난 8개월 간의 감정이었다. 나 홀로이, 잘 먹고 잘 살면서 '이쯤이면 만족스럽다'라고 느끼며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안분지족이랄까 무위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이 자각에 다시 한심하다고 느끼고는 자아비판에 빠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현지인들과 교류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아닌지, 혼자 외골수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었다. 그렇다고 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일은 너무나 답답하고 지루한 일이어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일례로, 지역 교육청에서 뿌려지는 시험지가 하도 엉망이라, 1/3 쯤은 잘못된 문제가 출제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에 1학기, 2학기, 3학기 내내 줄기차게 컴플레인을 넣었다. 교장에게 따졌고, 동료 교사들에게 니들은 도대체 이딴 시험 문제를 보고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냐며 시비를 붙였다. 그들은 매년 그렇다며 웃었다. 어째서 자존심 상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2학기부터는 나를 출제위원으로 넣어달라고 졸랐다. 덕분에 3학기가 되어서는 실제로 출제위원이 되었다. 지역 교육청으로 며칠간 출근을 했고, 지난주 꿰넹 지역 학년말 고사 출제를 마쳤다. 약 4만 명의 학생이 보게 될 시험지다. 1,2,3,5,6 학년이 이 시험을 보게 될 것이다(4, 7학년은 국가 수준 평가로 대체됨). 수학만 내가 참여했고, 잘못된 답지나 풀 수 없는 문제가 없도록 수십 번을 살폈다.

교장에게 조르고 졸라서 결국엔 왔다.
이 사람들하고 같이 시험 문제를 만들다 보면 속 터질 일 이 하루에도 수십 번.

  

 출제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보니, 시스템이 없고, 규칙이 없고, 방향성도 없었다. 성실히 일하는 자, 책임감을 갖는 자, 부지런한 자 역시 없었다. 과거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곳 사람들이 컴퓨터를 잘 못 다뤄서 시험지가 엉망인 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시험지에 대해 어느 누구 하나 다시 한번 풀어보거나 오탈자는 없는지 점검하는 사람이 없었다.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잡담이나 하고 낮잠을 자다 퇴근했다.

 한 과목 당 3~4명의 출제위원이 참여했지만, 어느 과목이나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마지막 날인 일주일째, 수학을 제외하고 출제를 마친 과목은 없었다.

 나와 함께 수학 문제를 출제한 세 분들은 모두 교감이었다. 사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교감이었다. 교감부터 이러니 일반 교사들의 근무태도는 어떻겠나. 이런 곳에 나를 끼워준 건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였지만 그 덕에 나는 헤어 나오기 힘든 실망감을 느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교육청에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바닥을 쳤다. 너무 답답했고, 한심했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보다 한 주 전, 발표회에서 이들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는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탓에 심각할 정도로 착잡했다.

 이런 감정을 떠안은 채 1년을 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견 연장을 취소하고 훌훌 돌아가버릴까 하는 욕망이 자리를 키워갔다.


 다른 파견 선생님들은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한 개인으로서 뭘 얼마나 바꿀 수 있겠냐 라며 현실을 직시하게 끔 도와주신 분도 있었다. 다들 고마웠지만, 그래도 마냥 놓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바꾸고자 하는 생각을 놓는 순간 이곳에 온 목적을 잃는다고 본다.

 현재로서 잠정적으로 내린 답은 현실적으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나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찾아서 하고, 그 외의 것에서는 과감하게 포기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조언일 것 같다.

 내가 이곳의 교사들을 바꾸거나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발표회 한두 번쯤 더 한다고, 내가 듣기 싫은 소리 좀 더 한다고 뭔가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출제위원으로서 몇 번 더 출제를 한다고 해서, 내가 만든 시험지가 그 이전의 그것보다 더 좋다고 해서 무언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대신 학생들은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지지리도 공부 못하고, 이해도 늦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결국엔 학생에게 달린 것 같다. 교실에서도 복창 터지고 답답하겠지만 하는 일이 그런 일인 걸 뭘 어쩌겠나.


 사실, 오늘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이곳의 국영 방송에서는 한국의 EBS처럼 교육방송을 한다. 우연찮게 티브이를 봤는데 LCM(최소 공배수) 구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난 학기에 최소 공배수, 최대 공약수 찾기를 가르치다 절반도 성공을 못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있어 어떻게 가르치는지 주의 깊게 봤다. 50과 60의 최소 공배수 찾기이니 5학년이나 6학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 같았다.

 TV 속의 교사는 50과 60의 최소 공배수를 찾기 위해 5분이 넘는 시간을 썼다. 나중엔 계산이 어려웠는지, 혹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을 했기 때문인지, 윈도 계산기를 열어 마우스로 숫자를 클릭해가며 계산을 했다.

 네 줄짜리 수식을 쓰고 설명하는데 5분을 설명하다니... 이게 여기서 내가 하여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고, 지루하게, 한번 더, 또 한 번 더... 이게 이곳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학기 내가 너무 빨리 가르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대로 답답해했지만 이 친구들은 그들대로 난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지역 내 22개 학교 중 21등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ebs 강사를 보며, 아니 btv(보츠와나 국영방송) 강사를 보며 늦었지만 내 수업의 방향을 수정했다.


개념 설명 단계가 아닌 연습 문제 풀이 단계에서 조차 한 문제를 5분이 넘게 설명했다.
그는 12*25를 암산이 아니고, 필산도 아닌 계산기를 열어서 계산했다.
고마워요, 당신 덕에 많이 배웠습니다.


 며칠 전까지 무책임해지려는 욕망이 나를 지배했다. '이까짓 거 떠나버리면 그만이다'라는 생각 말이다. 우울증이었나 싶을 만큼 심각했다.

 이번 주는 기분이 한결 가볍다. 여기서 뜻하지 않게 뭔 일이 터지면 정말 파견 연장을 취소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결 홀가분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도록 한다.



http://kopanobw.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watch?v=OJxgcyVzuwk&t=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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