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성과가 있는 것 같다.
숟가락은 잘 쓰고 있을까?
일전에 이번 학기 목표 중 하나가 학생들이 숟가락을 쓰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kopano/22
간단히 요약하면, 이곳 보츠와나 친구들은 밥을 먹을 때 손으로 떠먹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밥 먹기 전 후로 손을 씻지 않는다는 점. 손 씻기를 지도하기엔 물이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위생과 간편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숟가락을 보급하는 게 최선일 것 같다는 글이었다.
숟가락 보급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으니 중간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애들 사진을 찍어줬다.
3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숟가락을 사용을 지도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과가 있는 편이다. 평소에 손도 안 씻고 밥을 손으로 떠먹는 터라 배앓이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손 씻기를 지도하자니 학교에 물이 별로 없어서 현실적이지 못했다. 숟가락 사용을 장려하는 편이 최선인 것 같았다. 두어 달쯤 숟가락 사용을 강조하니 이제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제법 늘었다.
3학기 시작과 동시에 2학기 성적 우수자와 1학기와 비교해 2학기 때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들부터 상품으로 숟가락을 주기 시작했다. 추가로 퀴즈를 잘 풀거나 숙제를 잘해 올 경우에도 숟가락을 상으로 주었다.
그러니까 숟가락을 쓰는 일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짜고짜 숟가락을 준다고 습관을 바꿀 수는 없는 까닭이다.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서의 변화부터 가져와야 했고, 숟가락에 특별한 지위를 얹어 줌으로써 숟가락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숟가락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질투와 부러움을 느낀다면 베스트다.
"숟가락 = 자랑" 이 되게 하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인 셈이다.
수업시간에도 음식을 깨끗이 먹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설명했고, 점심시간마다 교실을 돌면서 숟가락 쓰라고 얘기를 잔소리를 하고 다니고, 없으면 손이라도 씻으라고 얘기를 한다.
지금은 절반 정도의 학생이 숟가락을 받았고, 무언가에 성공할 기회를 줘서 그때마다 숟가락을 상으로 주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숟가락을 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손으로 밥 먹기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고, 숟가락이 정말 없어서 손으로 먹는 친구들도 있다.
문제는 어딜 가나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어딜 가나 온몸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어린 학생이라고 다르겠는가. '손 좀 씻어라, 숟가락을 챙겨 다녀라'라고 얘기를 해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변화에 저항하는 친구들이 있다.
예를 들면, 까틀로 라는 이 친구는 좀처럼 손을 씻지 않는다. 사실 자기 이름을 영어로 쓰지 못할 만큼 부진한 친구인데, 학습장애가 의심되는 친구다.
이 친구한테 수학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헬로, 하와유 같은 생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달을 했는데도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이 친구가 수업시간에 발표를 했다. 물론 자기가 답을 구해서 발표를 하는 건 아니고, 옆 사람한테 물어봐서 그걸 그대로 따라 말하는 식이긴 하지만 어쨌든 변화가 있었다. "잘했다, 훌륭하다" 칭찬도 해주고, 악수도 하고, 많이 치켜세워주었다.
'넌 특별히 상으로 숟가락을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다른 친구들은 박수까지 쳐주며 다 같이 좋아했다. 없는 칭찬 거리라도 만들어서 칭찬을 해 주고 숟가락을 준 건데, 다음 날 잃어버렸다며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하나를 더 주기까지 했는데, 한 며칠 쓰더니 또 가져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짜증이 난다. 선생도 사람인데 어쩌겠나. 그래도 또 숟가락을 줄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정말이지 너무 쉬워서 틀릴 수 없는 쪽지 시험지를 만들어서 풀게 하고 그 상으로 숟가락을 주었다. 결국 혼자서 세 번째 숟가락을 받았다. 물론, 똑같은 시험지로 두 번의 재시험을 본 끝에 만점을 받기는 했지만. 어쩌겠나 선생이 하는 일이 이런 일인 걸...
이런 몇몇 친구들을 빼면 숟가락을 보급하는 일은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보이는 편이다.
"숟가락 = 자랑" 이 되게끔 설계한 일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점심시간에 교실을 돌다 보면 나 숟가락 잘 쓰고 있다며 숟가락을 흔들어 대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에게만 숟가락을 나누어 줬는데, 상으로 숟가락을 받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집에서 자기 숟가락을 챙겨 와 쓰는 경우도 생겼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숟가락을 보급하는 건 이번 학기에 꼭 이루리라 다짐한 목표인 만큼 사전 계획을 하는데에 꽤 공을 들였다. 나름 많이 고민했고, 참고자료까지 찾아가며 준비했었다. 현재로서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UpiRV4zI0
숟가락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아래 영상에서 이야기해 두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zP72_VB5w&t=28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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