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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Oct 11. 2019

보츠와나 어린이 여러분, 숟가락 잘 쓰고 있습니까?

조금은 성과가 있는 것 같다.

숟가락은 잘 쓰고 있을까?

일전에 이번 학기 목표 중 하나가 학생들이 숟가락을 쓰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kopano/22


간단히 요약하면, 이곳 보츠와나 친구들은 밥을 먹을 때 손으로 떠먹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밥 먹기 전 후로 손을 씻지 않는다는 점. 손 씻기를 지도하기엔 물이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위생과 간편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숟가락을 보급하는 게 최선일 것 같다는 글이었다.


 숟가락 보급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으니 중간 정리를 해 보려 한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애들 사진을 찍어줬다.

 3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숟가락을 사용을 지도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과가 있는 편이다. 평소에 손도 안 씻고 밥을 손으로 떠먹는 터라 배앓이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손 씻기를 지도하자니 학교에 물이 별로 없어서 현실적이지 못했다. 숟가락 사용을 장려하는 편이 최선인 것 같았다. 두어 달쯤 숟가락 사용을 강조하니 이제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제법 늘었다.


점심시간마다 찾아가 숟가락 쓰고 있냐고 묻는다.


 3학기 시작과 동시에 2학기 성적 우수자와 1학기와 비교해 2학기 때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들부터 상품으로 숟가락을 주기 시작했다. 추가로 퀴즈를 잘 풀거나 숙제를 잘해 올 경우에도 숟가락을 상으로 주었다. 

 그러니까 숟가락을 쓰는 일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짜고짜 숟가락을 준다고 습관을 바꿀 수는 없는 까닭이다.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서의 변화부터 가져와야 했고, 숟가락에 특별한 지위를 얹어 줌으로써 숟가락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숟가락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질투와 부러움을 느낀다면 베스트다.

 "숟가락 = 자랑" 이 되게 하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인 셈이다.


성적우수자와 성적이 많이 오른 친구들 사진.


 수업시간에도 음식을 깨끗이 먹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설명했고, 점심시간마다 교실을 돌면서 숟가락 쓰라고 얘기를 잔소리를 하고 다니고, 없으면 손이라도 씻으라고 얘기를 한다.


 지금은 절반 정도의 학생이 숟가락을 받았고, 무언가에 성공할 기회를 줘서 그때마다 숟가락을 상으로 주고 있는 상황이다.

어 그래, 잘하고 있어.


물론, 모든 학생들이 숟가락을 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손으로 밥 먹기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고, 숟가락이 정말 없어서 손으로 먹는 친구들도 있다.             

이 친구는 손을 꼬박꼬박 씻어서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손으로 먹는 게 더 편하다고 하길래 너 편한 대로 하렴 하고 두었다.
손이라도 씻고 떠먹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어딜 가나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어딜 가나 온몸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어린 학생이라고 다르겠는가. '손 좀 씻어라, 숟가락을 챙겨 다녀라'라고 얘기를 해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변화에 저항하는 친구들이 있다.


 예를 들면, 까틀로 라는 이 친구는 좀처럼 손을 씻지 않는다. 사실 자기 이름을 영어로 쓰지 못할 만큼 부진한 친구인데, 학습장애가 의심되는 친구다. 

 이 친구한테 수학이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헬로, 하와유 같은 생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달을 했는데도 머릿속에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이 친구가 수업시간에 발표를 했다. 물론 자기가 답을 구해서 발표를 하는 건 아니고, 옆 사람한테 물어봐서 그걸 그대로 따라 말하는 식이긴 하지만 어쨌든 변화가 있었다. "잘했다, 훌륭하다" 칭찬도 해주고, 악수도 하고, 많이 치켜세워주었다. 

  '넌 특별히 상으로 숟가락을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다른 친구들은 박수까지 쳐주며 다 같이 좋아했다. 없는 칭찬 거리라도 만들어서 칭찬을 해 주고 숟가락을 준 건데, 다음 날 잃어버렸다며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하나를 더 주기까지 했는데, 한 며칠 쓰더니 또 가져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짜증이 난다. 선생도 사람인데 어쩌겠나. 그래도 또 숟가락을 줄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정말이지 너무 쉬워서 틀릴 수 없는 쪽지 시험지를 만들어서 풀게 하고 그 상으로 숟가락을 주었다. 결국 혼자서 세 번째 숟가락을 받았다. 물론, 똑같은 시험지로 두 번의 재시험을 본 끝에 만점을 받기는 했지만. 어쩌겠나 선생이 하는 일이 이런 일인 걸...


 이런 몇몇 친구들을 빼면 숟가락을 보급하는 일은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보이는 편이다.                    

실베스터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퀴즈에서 이기고 상으로 숟가락을 받았다. 그 뒤로 눈만 마주치면 숟가락을 내 눈 앞에서 흔들어 댄다.





"숟가락 = 자랑" 이 되게끔 설계한 일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점심시간에 교실을 돌다 보면 나 숟가락 잘 쓰고 있다며 숟가락을 흔들어 대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에게만 숟가락을 나누어 줬는데, 상으로 숟가락을 받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집에서 자기 숟가락을 챙겨 와 쓰는 경우도 생겼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숟가락을 보급하는 건 이번 학기에 꼭 이루리라 다짐한 목표인 만큼 사전 계획을 하는데에 꽤 공을 들였다. 나름 많이 고민했고, 참고자료까지 찾아가며 준비했었다. 현재로서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UpiRV4zI0


숟가락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아래 영상에서 이야기해 두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zP72_VB5w&t=283s




http://kopanob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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