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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Apr 21. 2023

제주에는 '고사리 방학'이 있었다!

'제주사람에게 고사리의 의미'

해마다 4-5월 정도 '친정엄마'와 안부전화를 주고받을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요새 고사리 꺾으러 다니느라 정신없이 바쁘다"라는 것이었다. 허리가 망가지는줄도 모르고 열심히 고사리 꺾어오시고,손질후 삶고

다시 깨끗이 말려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시는거였다. (에구에구 자식새끼가 뭐라구..난 진정 못한다우!)


솔직히 나는 고사리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남편도 "고사리가 발암물질이 있다, 혹은 남자 정력에 안좋다"라는등의 (정말 근거가 있는건지?)등의 이유를 달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거였다.

물론, 애들도 관심밖의 '반찬'이었고, 특별히 우리집에서 제사도 안지내기에 내게는 부담스럽기만한 존재였다.


이제서야 제대로 확인해보니,
1. 생고사리에는 '아노이리나제'라는 비타민 B1을 파괴하는 물질이 있지만, 삶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모두 제거되며 오히려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성분으로 변한다 하고..
2. '동의보감'에 고사리를 오래 섭취하면 남자의 양기를 떨어트린다는 말이 있지만, 허구헌날 고사리만 먹는게 아닌이상, 고사리 성분을 봤을때 남자에게 굳이 좋지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 인간은 무슨 정보를 듣고 이리도 '고사리'를 적대시한 것인지... 할많하않...
나또한, 무에 그리 바쁘다고, 그 귀한 제주고사리 ' 영양가 검색'한번 안했던 걸까?



시간이 흘러도 흘러도...

소비가 안되는 꽤 많은양의 말린 '고사리'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다가, 여기저기 이웃에게 선심쓰듯 해맑게 마구 나눠줘버린 기억이 있다. 오히려 받아주셔서 "굉장히 감사합니다"라는 느낌으로..


엄니의 수고스러움을 알았기에, 차마 돌려보낼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버릴수도 없었고,

그저 "엄마 덕분에 고사리 실컷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답해버렸으니...

그후 엄니는 해마다  몇년이나 더 보내오셧고 늘 나는 나눠먹느라 애를 태웠다.

당시, 울엄니가 젊었기에 망정이지, 지금은 허리 아파서, 엄두도 못내는 일인것을..

그렇게 나는  미운고사리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었다.

    


보름전쯤 친정 제주를 방문해보니, 여기저기 현수막에 '고사리철 진드기및 뱀 조심''고사리철 실종 안전사고 대책'

등의 문구가 많이 보였고, 제주지방 방송에서도 이와관련된 사건사고가 연일 방송되고 있었다.

'고사리 체취'중 진드기나 벌, 뱀에 물려 사망하기도 하고, 혼자 정신없이 꺾다가 무리를 이탈하여 밤늦도록 실종되어, 사냥 탐지견에 '드론'까지 동원되어 찾는등.. 제주의 119는

날마다 때아닌 곤욕을 치루고 잇엇다.

 

그만큼, 4-5월 경의 '고사리 꺾기'행사는 제주의 독보적이고 대대적인 행사였다.


제주살이를 하는 육지인들을 포함, 관광객들까지 어우러져, 물안개 가득한 새벽 어스름부터 '고사리 부대'의 행렬은 어마어마했다.


낮의 강렬한 햇살을 받고나면, 고사리가 거칠고 세어지므로, 가능한 새벽시간대에 여리여리한 고사리를 만나고자 애를 쓰는거였다. 제주에는 특별히 '고사리 장마'라고 하여, 초여름 본격적인 장마전에 습기가득한

4월의 장마기간이 있으며, 이시기가 '고사리 취'의 매우 적기이다.


어렴풋이 기억을 되살려보니, 과거 내가 국민학교시절 바닷가 마을에서는 '미역 AND 고매기(보말) 방학'

내가 살던 과수원이나 중산간 마을 지역에서는 '고사리 방학'이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고기가 귀하던시절,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고기보다 더 맛있고 영양가 높은 '제주고사리'를 약 보름안에 (고사리 장마기간 ONLY) 재빨리 체취해야만 하니,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했던거로 기억된다.

 한번 체취하면, 1년내내 제사상에 올릴수 있고, '고사리 나물''고사리전''고사리 육개장' 그리고 제주의 맛있는 돼지고기 는 생선 그 무엇과도 절묘하게 맛이 어우러지는 1년치 식량이었으니  죽기살기로 꺾어야 했단다.

  

게다가 고사리 한줄기를 꺾고나면, 다시 줄기가  금새 9번이나 올라오니, 끊이지않는 샘물같은 것이었다.

꺾어도 꺾어도 악착같이 올라오는 생명력처럼 후손들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갖고, 기도하는 맘으로 치루는 일종의 '기도회'혹은 '염원행사'느낌이기도 한거였다.

 게다가 가격이  600그램에 7-9만원 정도라 하니, 아니하지 않을수 없는, 아니 무조건 참여해야만 하는 행사로 변모되고 있었다.

 

산책삼아 걸어가본 들판이나, 얕은 산등성이며 숲 주변에는 여인네들이 소위 '고사리 앞치마'라는 하단부분에  큰지퍼가 달린 특수 앞치마까지 매고서 고사리 꺾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인네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앉아 고사리를 다듬을땐

앳띤 소녀들처럼  "까르르 까르르"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고사리는 긴줄기 하단부분을 '똑' 꺾어내는 방식이며 그 손맛에 '고사리 채취'를 한다고 할정도로 매력적인 느낌이라 한다. 마치 우리가 '뽁뽁이'를 무심하게 계속 터뜨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고사리 캐기'가 아닌  '꺾기'라고 다들 힘주어 수정해가며 말한다.

  

   


말로만 '제주여인'인 나란여자..이제라도 ' 제주 고사리'의 의미를 파악했으니..

내년봄엔, 꼭!! 고사리 꺾는 손맛도 느껴보고, 그 고사리로 맛난 육개장 끓여 부모님께 맛나게 대접해야 하겠다. 고사리 들어가는 온갖종류의 음식도 다 만들어보고, 브런치에 소개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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