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해야 할 것은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임을]
20230124 먼저 전도할 자 마태복음 10:5-15
[먼저 해야 할 것은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임을]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며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3)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4)
가족이든 세상이든 개신교인을 향한 시선은 어딘가 까칠하다.
개신교인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개신교 특유의 문화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있었기에, 반성해야 할 모습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을 향해서는 유독 높은 잣대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의외로 비난의 말들을 던진다.
믿는 사람이니 당연히 보여야 할 모습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며,
비난과 원망 때로는 조롱 섞인 말을 던진다.
‘부족한 내가 또 예수님 얼굴에 먹칠을 했구나. 그래, 나는 믿는 자임에도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저런 비난을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은연중 마음을 뒤덮는다.
스스로에 대한 시선도, 믿음도 뒤흔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백히 알려주신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기’ 위함이라 하신다(마태복음 9:13)
예수님이 부재할 때 인간은 불완전하고 죄 된 모습 그 자체다.
그 누구도 여기에 예외가 없다. 비난하는 자, 비난받는 자 모두가 그렇다.
그렇기에 말씀 안에 비춰보면,
비난할 입장도, 비난받을 입장도 되어서는 안 되며, 애초에 그러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C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지 깨닫지 못한다’. (순전한 기독교 중)
복음을 전할 때 혹은 내가 믿는 자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고 해서.
그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선을 행하여도 결국 그 선을 행할 수가 없었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그렇게 해 보기 전까지는 내 안에 오직 불완전함과 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심지어 상당기간 믿음 생활을 하다 보니,
내 힘으로 그 비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 혹은 내 힘과 의지로 그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하나님보다 나의 자아가 앞서서 행한 교만이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면 평안이 임할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돌아올 것이라 말씀하신다.
일상을 살아가며 한정된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잘 알고
시간을 쓰고 수고를 더할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헛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을 향해 자책하거나 반성하라 하지 않으신다.
혹은 그와 반대로 싸우거나 변명하라고도 하지 않으신다.
믿음을 앞세워 훈계하거나 하나님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자들을 위해 해야 할 것은,
함께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 애써 몸부림치는 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안에 주의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일이 내 해야 할 일이다.
말씀보다 이성이 앞서서 행동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나와 내 가정과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평강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