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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네카 Nov 10. 2020

밥이라는 그놈.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 “그럼 난 뭐 먹고 사냐.” “넌 뭐 먹고살래?” 살면서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들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피곤한 이유는 바로 이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도 먹어야 하지만 부모, 배우자, 자녀를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밥을 먹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기에 증오하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은 상사와 매일 억지로 마주하며 쓴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거래처에 굽신거릴 줄도 알아야 하며, 나이 어린 선배에게 깍듯이 존대하며 굽힐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서로 더 나은 밥을 먹기 위해 대립하다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긴다. 그래서 몸값이 있다. 몸값은 사회가 허용한 밥그릇의 크기다. 몸값이 높은 자들은 더 큰 그릇에 다양한 종류로 많은 걸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성도 쌓아서 올릴 만큼의 쌀을 축내는 자들이 오히려 정의롭고 공정한 선의의 경쟁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추구하진 못할망정 반칙과 특권을 써가며 타인의 그릇까지 넘본다. 과식하면 체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 지독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온갖 주변의 악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끼니를 해결해 나가는 이들에겐 비교적 관심이 덜하거나 관대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고 보면 정당한 행위로 밥을 먹는다는 건 새삼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념에 빠져 있다 보면 배고플 땐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다가도 이 녀석이 얄미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문득 밥이라는 놈이 지겨워졌다. 물론 이놈 잘못은 아니지만.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생선구이 백반이다. 그럼에도 배고프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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