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군대에서 복무할 당시의 일이다. 필자는 분당에 자리한 부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였는데 그곳에선 특정 야간근무나 군 내 봉사 시간을 초과하면 병사들에게 외출과 외박의 혜택을 부여했다.(필자가 근무했던 곳은 후방 지원 부대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훈련은 많지 않았지만 대신 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서 이등병이나 일병 시절에는 일상적 근무 시간 외에도 늘 추가근무나 사역 업무에 종종 자원하곤 했다. 생활관에서는 늘 선임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이외의 일상 업무 역시 고역의 나날이었기에 근무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며 외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일병으로 진급하기 직전 신병 위로 휴가와 몇 번의 외박을 다녀올 수 있었다. 항상 전화로 먹고 싶은 음식이 너무나 많다고 늘 투덜거려서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휴가나 외박을 나올 때마다 부모님은 매번 비싸고 좋은 음식만을 사주셨고 해주셨으며 휴가 기간 동안 모든 부분에서 매우 각별하게 신경을 써주셨다. 그리고 생활관에 있는 잠깐의 시간조차 죽기보다 싫어 이등병 시절 무려 6번이나 부모님, 동생과 함께 주말 면회의 시간을 가지기까지 했다.(집에서 군부대는 자동차로 왕복 2시간 거리였다) 물론 나의 요청으로.
그러던 어느 날 병장 진급 직전 상병 위로 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단둘이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휴가와 외박을 자주 나오던 그때 군대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뭐든 기꺼이 해주셨지만 사실 심정적·금전적 부담의 압박이 있었다고 말이다. 면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 동생의 대학 진학 문제, 이사 문제를 비롯해 본가에서 금전적 지출이 많았던 시기였던 데다 가족 모두 저마다의 문제로 힘겨워했던 시기였음을 모르고 휴가를 나올 때마다 치기 어린 투정으로 가족으로부터의 극진한 대우를 당연시하고, 일상의 고단함을 달랠 유일한 가족의 휴식 시간을 나만을 위한 2시간짜리 면회로 몇 차례나 빼앗아 갔으니.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첫 아르바이트 경험 역시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는데 군대 전역 후 선반 목재 사업 직종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되면서였다. 그곳에서 5살 위의 직원인 형에게서 업무를 배우고 함께 포장 업무와 자재들을 운반하며 친분을 쌓았고 몇 달 후 가벼운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때 그 형이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던진 말이 당시의 나에게 비수처럼 날라왔다. “네가 일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과장님이랑 실장님이 나보고 두어 달만 같이 도와주라고 하신 거 모르지? 원래는 2주만 같이 도와주고 밀린 일 하라고 하셨거든. 내가 너 그때 알게 모르게 많이 챙겼어.”
순간 술로 인해 몽롱했던 기분이 싹 사라지고 온몸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민폐 끼치는 일을 죽도로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나인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진 못하더라도 절대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신조인데. 돌이켜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일자리로 알고 들어왔지만 생각했던 만큼 고되지 않았고 특별히 어려웠던 점 또한 없었다. 오히려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윗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요령을 피워가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저 난 편안함과 익숙함에 속아 가까운 이의 도움을 알지 못했고 당연시 여겼을 뿐이다.
매해 수많은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빠르게 사라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 편안함과 안정감에 익숙해진 나머지 시장 내에서 자신들의 주변과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계에서도 누군가와 아무런 마찰이나 갈등 없이 편하기만 하다는 느낌이 계속된다면 그와 자신의 관계를 한번 돌아보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신을 위해 아무런 내색 없이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감수하고 있을지 모른다. 편한 주변 관계를 돌아보라.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문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