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예배3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랑

by 안진석


고린도 전서 8장부터 11장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가’


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예시로 바울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너희의 자유(헬라어:권리)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바울이 이같이 말한 이유는 예수님이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그가 나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울이 내린 결론은 이와 같다.


“형제가 실족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겠다.”


그렇게 이어진 9장에서는 사도로서의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나열하며,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아갈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피력한다. 단, 권리를 쓰지 않고 참는 것이 복음에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어서, 믿음이 약한 자에게 믿음이 약한 자처럼,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처럼 맞춤형으로 전도한다는 것을 알린다.


자신이 이토록 절제하며 복음을 끊임없이 효율적으로 전하려는 이유 역시 썩지 아니할 것인 영광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을 쳐서라도 복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다음 10장에서는 유명한 구절인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우리가 자유가 있지만, 상대의 자유 즉, 유익을 구하려고 애쓸 때 더불어 그 자유를 상대에게 넘기는 것 자체를 감사로 받아들인다면, 나의 자유를 판단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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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임을 말한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고, 그 기쁨으로 인해 그들이 구원으로까지 전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웃’에게 초점이 가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웃을 위해서 내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이며,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남을 돕는 것 이전에 내가 안전해야 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울의 메시지가 헛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자기 부인과 순종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즐거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며, 실제로도 중요한 경우도 많다. 그런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억압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적이지 않은 자유와 권리(마약, 동성애)가 보편적인 자유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 없다. 남을 해치며, 탈취하는 모든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행위를 제시한다. 세상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자유들도 누군가 실족한다면 하지 않겠다는 선포가 그렇다.


내가 술을 먹는 행위로 인해서 누군가 실족한다면, 먹지 않는 것.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행위가 누군가의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먹지 않는 것. 등등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는 행위들을 어떤 법이 있어서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완전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 없다.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또 다른 표현으로 ‘손해 보는 능력’ ‘나의 자유를 포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바보스러운 행동이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

그 대상이 연인이든, 부모님이든, 이웃이든 상관없다. 그 그릇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향해 사랑하는 사람은 온 인류를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사랑의 그릇을 넓혀나갈 것이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자. 그러면, 당신은 모든 자유를 포기할 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이며, 이웃으로까지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동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은 십자가에 달려도 기쁘다.


죽을 만큼 사랑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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