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둠 속 항구, 드디어 찾은 꼬리.(2)
숨 막히는 대치 상태가 잠시 이어졌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항구의 어둠 속에서, 민성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노려보는 동남아 무리와 원장 일당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미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컨테이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호연의 귀에 속삭였다.
"호연아, 저쪽 동남아 무리는 5명, 저 원장 무리는 3명이야. 숫자로 밀리면 안 돼. 우선은 저 원장의 발을 묶어놔야 해."
미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속에는 냉철한 분석과 단호한 판단이 실려 있었다. 호연은 누나의 지시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미 원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곧바로 무릎 쪽을 향해 날카롭게 시선을 겨누었다. 호연이 한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머리 위로 두 개의 쇠구슬이 나타나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듯
슈슉, 슉슉
소리를 내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쇠구슬들이 품고 있는 잠재된 파괴력은 고요한 어둠 속에서 섬뜩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로 그 순간, 동남아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의 귀를 찢을 듯한 거친 외침이 어둠을 갈랐다.
카이앙!
그리고는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내 혼돈의 싸움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민성에게 달려든 것은 건장한 체구의 사내 둘이었다. 그중 한 명이 거대한 마체테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휙-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민성의 어깨를 향해 사선으로 내려찍었다. 민성은 뒤로 살짝 몸을 빼며 공격을 피했다. '젠장, 살벌하잖아!' 속으로 욕을 씹으며 상대가 다시 마체테를 들어 올리려 할 때를 노렸다. 기회가 오자마자, 민성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몸을 뻗어 주먹을 날렸다.
빠밤!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확히 상대의 관자놀이와 눈 부위를 원, 투로 가격했다. 마치 잘 익은 수박이 터져 나가는 듯한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내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상대를 잠시 돌아볼 틈도 없이, 민성의 팔에 차가운 감촉이 스쳐 지나갔다.
슥-
다른 한 명이 민성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나이프로 재빠르게 팔을 그은 것이었다. 상의 잠바가 찢어졌지만,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은 듯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민성은 찢어진 팔 부분을 힐끗 바라본 후, 이를 악물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직선으로 달려들어오는 민성을 향해 힘껏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민성은 기다렸다는 듯 찰나의 순간 옆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고, 나이프를 쥐고 있는 상대의 팔을 그대로 낚아챘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를 자신의 겨드랑이에 꽉 잡고 힘을 주었다. 이어지는 것은 박치기였다.
콰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이빨이 박살 났는지, 입안에서 피를 뿜으며 그대로 기절했다.
민성은 쓰러져 늘어진 두 상대를 바라보며 잠시 의아했다. '내가 타이밍이 완벽했나? 이 녀석들이 이렇게 약골인가? 왜 픽픽 쓰러지는 거지?' 그의 표정에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묘한 개운함이 스쳐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이미 두 명을 제압한 상태였다.
두 명의 동료가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을 본 나머지 세 명의 동남아 조직원들은 순간 주춤거렸다. 그때를 놓칠세라,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원장 일당, 즉 원장과 두 명의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죽기 살기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민성의 직감은 그들이 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호연아!" 민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장을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아빠의 지시를 알고 있었다는 듯, 컨테이너 위 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던 쇠구슬 중 하나가 총알처럼 원장을 향해
쉭!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러나 원장은 예상외로 몸을 빠르게 날려 피했고, 쇠구슬은 허공을 가르며 빗나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있는 컨테이너 벽에 박혔다.
"어라? 너무 빨리 달리니 조준이 힘드네~"
호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럴수록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듯, 달리는 원장의 속도와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한번 정확히 조준했다.
그리고 다시 손을 휘둘렀다.
슈우욱!
이번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악!
원장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쇠구슬은 그의 무릎에 정확히 명중했다. 원장은 다리가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명중이다!"
호연은 자신의 염동력 능력에 잔뜩 흐뭇해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미나는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연이 아닌 원장 옆에 쓰러진 두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호연은 그런 누나를 보고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나! 머야~ 왜 그래? 나 잘했잖아!" 보통 같으면 "잘했어!" 하고 칭찬했을 누나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어딘가 언짢은 모양이었다. 미나의 시선은 원장 무리 중 유독 미동조차 않고 쓰러져 있는 두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호연아. 저 아저씨 둘… 그때 유치장의 인형같이 쓰러져 있던 사람들과 같은 기운이 느껴져…" 미나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경고가 뒤섞여 있었다.
"응? 머라고?"
의아해하며 누나를 바라보던 호연은 미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그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호연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그의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버렸다.
쓰러져 있던 두 사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정장 안쪽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마치 일식 요릿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길고 날카로운 사시미 칼이었다. 그들은 고통의 기색 하나 없이 좀비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미나와 호연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호연은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달려오는 그들을 향해 다시 한번 쇠구슬을 날렸다.
퍽! 퍽!
쇠구슬은 정확히 그들의 몸통에 박혔다. 사내들은 잠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걸어왔다. 미나와 호연은 동시에 경악하며 소리쳤다. "좀비야? 머야?!" 이들의 모습은 상식을 초월한 기괴함 그 자체였다.
"시네, 코노 보-즈 야로-!" (죽어라, 이 어린 도 사 놈들) 그들은 일본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떠들어댔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분명하게 '죽이겠다'는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호연은 알 수 없는 언어에 잠시 당황했지만, 자신들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 살벌한 기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양손을 들어 올리고, 주머니에 남은 쇠구슬들을 염동력으로 자신의 주위로 이동시켜
쉬이익 쉬이익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민성은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나머지 세 명의 동남아 조직원들도 가볍게 제압했다. 민성은 숙련된 형사답게 그들의 사지를 근처에 널브러진 밧줄로 단단히 묶어놓았다. '어차피 이놈들은 고통을 느끼는 놈들일 테니….'
정리를 마친 민성은 고개를 들어 호연이 있는 컨테이너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쓰러져 있는 원장과, 그리고 그곳으로 사시미 칼을 들고 달려드는 두 명의 검은 정장 사내들이 보였다. 민성은 곧장 아이들에게 달려가 도울 참이었다. 그때, 두 사내가 호연의 쇠구슬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순간 안심했다. '역시 호연이 녀석…!' 그는 호연이 자신의 쇠구슬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심도 잠시, 다시 일어나는 두 사내의 모습을 보고 민성의 얼굴은 굳어졌다. '머지? 저놈들? 호연이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고?' 의아함과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민성의 온몸을 감쌌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주저 없이 호연이 있는 컨테이너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미나는 당황해서 쇠구슬을 마구잡이로 날리려는 호연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으며 쓰러져 있는 사내들의 다리 부분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호연은 누나의 지시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달려오는 두 사내에게 각각의 쇠구슬을 날아가게 손을 뻗었다.
파팟!
소리와 함께 쇠구슬이 날아가 정확히 한 명의 무릎을 강타했다. 사내는 무릎이 옆으로 꺾이며 그대로 제자리에 쓰러졌다.
악!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절묘하게 몸을 틀어 피했고, 쇠구슬은 허공을 갈랐다.
쇠구슬을 피한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동료를 무시한 채 그대로 미나와 호연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 쪽으로 몸을 날렸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을 박차고 점프를 뛰어 컨테이너 박스에 기어오르려 양손으로 매달렸다.
미나가 놀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호연은 침착했다. 그의 눈은 빠르게 매달린 사내를 추격했고, 곧바로 자신이 던져 놓았던 쇠구슬들을 염동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오르게 했다. 수십 개의 쇠구슬들이
쉬이익!
소리를 내며 그 사내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퍽!
쇠구슬이 사내의 몸을 강타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매달려 있던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컨테이너 아래로 떨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민성이 간신히 달려온 컨테이너 아래쪽을 보니, 호연의 쇠구슬에 맞아 쓰러져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이내 몸을 뒤척이며 다시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젠장, 독한 놈들!' 민성은 더 이상 기다릴 틈 없이 달려드는 사내를 향해 오른 주먹을 뻗어 정확히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커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앞으로 쓰러지고는 숨을 쉬기 힘든 듯 허파가 찢어지는 듯한 기침을 연거푸 쏟아냈다. 그때였다. 무릎이 옆으로 꺾여 주저앉아 있던 나머지 사내가 민성의 등 뒤를 노리고, 한 발로 점프하듯 몸을 날려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시미 칼은 민성의 복부를 향했다. 그러나 민성은 이미 상대의 움직임을 감지한 뒤였다. 칼이 복부에 닿기 직전, 그는 번개같이 손을 뻗어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어버렸다.
악!
사내는 당황한 얼굴을 보였고, 이내 민성의 숙련된 업어치기 한 방에 바닥에 등이 패대기 쳐졌다.
퍽!
마치 고기를 패대기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 항구에 울렸다. 사내는 호흡이 힘든지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모든 적들이 제압되자, 미나와 호연은 그제야 안도의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감이 역력했다. 민성은 바닥에 쓰러져 헉헉거리는 원장에게 다가가며 싸늘하게 한마디 던졌다. "나는 사냥감을 정하면 안 놓쳐."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었다. 마치 당연한 결과를 말하듯 담담했다.
쓰러져 있던 원장은 체념한 듯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발버둥 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순순히 수갑에 손목을 내주었다. 민성은 뒤늦게 온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 쓰러진 원장을 일으켜 세우고 임시 구속 조치를 취했다.
이후 민성은 쓰러져 있는 두 사내를 등을 맞대게 한 후 손목과 발목을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둘의 몸통을 마저 묶으며 컨테이너 위에서 내려온 호연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호연아, 이놈들 네 쇠구슬을 맞고도 다시 달려들더라? 그리고 나한테도 그렇게 맞는데도 비명 한 번 안 질러. 고통스러운 표정도 없고. 대체 뭐냐?"
민성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의 경험상, 인간이라면 그렇게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호연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이상해요. 내 쇠구슬이 약하진 않은데…"
그는 바닥에 떨어진 쇠구슬 하나를 염동력으로 컨테이너를 향해 날려버렸다.
퉁!
컨테이너 안이 비어 있는지, 큰 울림의 소리가 났다. 날아간 쇠구슬은 컨테이너 벽에 찌그러진 모양을 만들며 박혔다. "사람이 버틸 수가 없는데…" 호연은 중얼거리며 여전히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민성은 호흡이 차츰 돌아온 두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뒤로 묶여 있는 한 사내의 새끼손가락을 잡고는
우두득!
소리와 함께 부러뜨렸다. 비명도, 고통의 몸부림도 없었다. 그저 눈동자만 옅게 흔들릴 뿐이었다. 민성은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이놈들 고통을 못 느낀다. 그리고 둘 다 그렇다는 건… 인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바로 그때, 미나가 두 사내에게 다가가서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영혼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듯 날카로웠다. 미나는 곧 민성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빠, 그 유치장에서 만났던 악한 기운이 이들에게도 약간 묻어 있어요. 그 유치장에서 인형처럼 변해버린 사람들과 같은 기운이에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영혼이 불완전한 상태일지도 몰라요."
민성은 미나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동시에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놈들은 아직 살아 있으니, 잘 데리고 가서 이 모든 비밀을 조사해 봐야겠다.' 민성의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이들을 통해 거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원장을 쳐다보았다. "원장! 이놈들에 대해 아는 것 다 말해!" 민성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그러자 원장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손을 교차로 내저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현을 했다. 그의 얼굴에는 극도의 공포가 역력했다. 이내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도 끌려가는 중이었어요. 아무것도 몰라요."
원장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누가! 널 납치한다고? 허, 이놈 보소. 거짓말을…?"
민성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지만, 원장의 떨림은 진심처럼 보였다. "안 돼요… 말하면 전… 죽어요…" 원장은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그 유치장의 면허 정지 당했던 의사와 비슷하게 극도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민성 뒤에 서 있던 미나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싸늘한 전율처럼 떨려왔다. 그녀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을 비추듯 투명하고 서늘한 빛을 머금었으나, 그 안에 깃든 기운은 태고의 지혜와 차가운 경고를 담고 있었다. 어린 소녀의 음성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새벽 항구에 낮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차갑지만 냉혹하지 않았고, 엄숙했지만 과도한 분노는 아니었다.
"이 천하에 피 같은 죄를 지은 어리석은 인간아! 네놈이 저 지독한 탐욕에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네 손으로 망친 저 불쌍한 영혼들이 마침내 네 숨통을 죄어 올 것이다!"
그것은 분명 미나의 음성이었으나, 그 안에 깃든 기세는 모든 부정한 것을 꿰뚫어 보는 맑고 준엄한 심판자의 선언 그 자체였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서슬 퍼런 경고는 새벽 항구에 낮게 깔리며, 원장의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듯 울려 퍼졌다.
"이 육신의 몸주(몸主)로 명하노니, 나는 혼백(魂魄)을 돌보고 귀신을 다스리는 자! 네놈의 목숨이 바로 저 영혼들의 마지막 한(恨)을 풀어줄 대가(代價)가 될 것이다! 저들의 고통이 네게 돌아가 마땅한 심판을 받을지니라!"
미나의 목소리 끝에는 알 수 없는 영적인 기운이 공간을 뒤흔들며 원장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를 에워싼 보이지 않는 원혼들이 차가운 한기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요동쳤다. 원장은 마치 영적인 속박에 묶인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바르르 떨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는 듯한, 영적인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민성이 연락한 지원 병력들이 오는 듯,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새벽 부두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여명 속, 사이렌 소리는 이 거대한 어둠의 막을 걷어내는 승리의 선율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