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얽힌 사슬, 어둠의 심연으로

3. 지독한 불안, 흔들렸던 가족의 고리

by 끄적쟁이



3. 지독한 불안, 흔들렸던 가족의 고리


차가운 새벽 공기가 서서히 걷히고 희미한 여명이 창문을 통해 비쳐 들었다. 민성 아빠와 두 자녀 미나, 호연이 사는 집은 평소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새벽 부두에서 겪은 충격적인 사건의 잔재가 깊게 배어 있었다. 민성은 경찰서에 남아 밤샘 뒷수습에 매달렸지만, 집으로 돌아온 미나와 호연은 그날 새벽의 공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새소리마저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눈을 감으려 할 때마다 눈앞에는 피칠갑이 된 동남아 무리들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죽이려 달려들었던 '불사신' 같은 검은 사내들의 공허하고 죽은 듯한 눈빛이 섬광처럼 되살아났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괴이한 몸짓으로 달려들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껏 미나가 겪어온 어떤 영적인 위협보다도 현실적이고 섬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을 죽이려 드는 악령이 주는 공포에 가까웠으나, 그들이 사실은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더 큰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인간의 육체가 다른 무엇인가에 게 잠식당하거나 조종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신체는 여전히 그 충격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옆방의 호연 또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흐느끼는 듯한 작은 숨소리는 그의 공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온몸을 웅크리고 있을 터였다. 정신병원에서의 난동은 그에게 있어 '누군가를 구하는 정의로운 싸움'에 가까웠다. 염동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은 단순히 놀라운 것이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의 일은 달랐다. 쇠구슬이 박히고 몸이 으스러져도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존재들은 호연이 이제껏 알고 있던 상식의 경계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괴물'과의 싸움. 어린 호연에게는 너무나 버겁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그의 염동력이 과연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다음에도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침대 위에서 웅크린 그의 작은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미나와 호연은 서로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했다. 미나는 차가운 이불깃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지붕 아래, 같은 공포를 겪었지만, 서로의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혼란은 너무나도 깊어 쉬이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당황스럽고, 무섭기만 한 이 상황이 야속했다. 두 아이는 그렇게 서로의 희미한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고요한 어둠 속에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새벽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미나와 호연이 이렇게 아무런 경계 없이 한 공간에서, 어둠에 기댄 채 잠드는 것이. 서로에게 멀어졌던 시간이 있었던 만큼, 이 사소한 순간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가족 셋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마도 민성이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떠나보낸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민성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남아 있는 미나와 호연 두 자녀를 돌보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거대했고, 어떻게 채워야 할지, 어떻게 남겨진 아이들의 상실감을 보듬어야 할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아빠로서의 사랑 표현 방식은 미숙했고, 상실감에 대한 회피는 더욱 큰 오해를 불러왔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딸 미나에게 그는 세심한 대화 대신 군대식의 억압과 명령조의 지시를 내리곤 했다.

"공부해라."

"늦게 들어오지 마라."

"네 방은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민성의 눈에는 딸아이의 변화가 그저 통제해야 할 일탈로만 보였을 뿐, 사춘기 소녀가 겪는 내면의 혼란이나 고통, 혹은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읽어주지 못했다.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려는 미나에게 아빠의 억압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목줄 같았다. 민성의 말투는 마치 학교 선생님들이나 다를 바 없이, 혹은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난하려는 듯 느껴졌다. 미나는 아빠의 무관심과 강압적인 태도 속에서, 더욱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졌고, 옷깃에서는 텁텁한 담배 냄새까지 풍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민성과 미나 사이의 골은 깊고도 깊어져만 갔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만 오갔고, 이내 침묵이 더 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모든 갈등의 한가운데서 12살 초등학생 호연이는 점점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빠와 누나의 팽팽한 신경전은 어린 그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중압감이었다. 사랑해야 할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은 호연의 마음속에 큰 균열을 만들었다. 그 스트레스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싸움으로, 폭력으로 해소되기 시작했다. 이내 호연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누나에게까지 비뚤어졌다.

"누나 때문에 아빠가 힘들어해!",

"누나 때문에 우리 집이 시끄러워!"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아빠인 민성마저 "누나가 사춘기니 호연이가 좀 이해해 주렴." 하며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호연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친구들이

"네 누나 담배 피우고 학교도 잘 안 다닌다며?" 하며 자신을 놀리는 것도 싫었다.

그저 모든 원망이 미나에게 향하는 것만 같았다. 어린 마음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나를 향한 반감으로 커져갔다.


그렇게 아빠 민성과 중학생 딸 미나,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 호연이는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는 시기였다. 민성은 형사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다. 아이들이 원할 때 편히 시간을 쓸 수 있는 다른 직업으로 바꾸기 위해. 그러나 쉽지 않았다. 강력반의 특성상 그에게는 단 하루도 온전히 가족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놈의 사건들이 당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도 아내의 죽음 이후로 알 수 없는 육체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평소보다 경이로운 빠른 스피드, 상식을 뛰어넘는 비정상적인 힘, 그리고 예민하게 발달한 오감은 그를 사건 현장에서 더욱 탁월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를 인간의 영역에서 미묘하게 벗어나게 하는 기이한 감각을 선사했다. 이 변화는 그를 때로는 불안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세 사람 사이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듯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와 상처만 깊어가는 나날이었다.


이렇듯 복잡하고 위태로웠던 아빠 민성과 두 자녀 미나, 호연이의 관계 속에, 미나의 신병으로 인한 영적 능력의 발현, 호연의 도술력 각성, 그리고 민성 아빠의 경이로운 신체 변화까지. 이 모든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그들의 삶에 거대한 파문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어제 새벽, 부두에서 겪은 충격적인 일들까지.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이 깨져 가는 가족에게 행복을 위한 과정인 것인지, 아니면 불행으로 이끄는 또 다른 시작점인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엇이든 함께 했다는 것. 오랜만에 온전히 아빠와 두 자녀가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함께했다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이 깨어져 가는 가족에게 찾아온, 한 줄기 희망의 빛일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기대감이 민성 아빠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고리'가 어쩌면 가족의 굳건한 '고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아침 햇살처럼 그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