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편
호주에 온 지 5~6년쯤 되었을까?
그때껏 머리에 파마를 한 적도, 염색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뱃속의 아기에게 해롭다는 생각으로 안 한 거였지만, 호주 살면서 내 머리에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끔 한국에 오면 ‘머리가 그게 뭐냐’는 주위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파마에, 커트에 예쁘게 하고 호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돌아가면 다시 생머리로 길게 기르거나, 아니면 한국의 블루클럽 비슷한 ‘Just Cuts’ 같은 곳에서 저렴하게 자르곤 했다. 한 번은 단발로 자르는데 너무 고르지 못하게 잘라,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자르고는 미용실에 정말 오랫동안 다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라면 가끔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뭔가에 지르고 싶은 날, 머리로 기분 변화를 주고 싶은 날.
그날이 내겐 그런 날이었던 가 보았다.
아이가 유치원 가고 없는 아침의 잠깐 동안에 어디 가서 머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잘 아는데도 없고 해서 그냥 가까운 우리 동네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지나가면서 보니 사람도 없고 한적하니 금방 하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예약하지 않고 왔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호주인들이 한국인들 머리를 잘 알지도 못할 것 같고, 호주인들이 파마한 걸 거의 본 기억도 없어서 그냥 심플하게 가기로 했다. “앞머리는 조금 정리해 주시고요, 뒷머리는 한 2~3cm 정도 잘라 주세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 간단한 머리였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 같았고.
멋지게 차려입은 한 아가씨가 오더니 여기저기 쓱싹쓱싹 자르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ㅆ~으~으ㄱ~ ㅆ~아~아~ㄱ’ 정도였다고 할까? 느려도 그렇게 느릴 수가 없었다. 마치 수습생의 첫날인 것처럼 말이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그렇게 자르고 또 자르더니, 드디어 머리를 감으란다.
그냥 집에 간다고 하고 싶었지만 순순히 그 요구에 응했다.
그리곤 다시 앉아서 이제 드라이 시작.
말린 후 한참을 다시 마무리.
정말로 세상에 태어나 제일 오래 걸린, 너무나 지겨웠던 단발 커트였다.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겼고 머리는 머리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평하고 싶단 생각보단 어서 그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맘이 더 컸다.
짜증 났던 나의 속마음이 혀를 타고 밖으로 나올 뻔했던 건 바로 계산대에서였다.
“네? 얼마라고요?”
“70불이요.”
호주 미용실에선 머리 감는 것, 드라이해 주는 것 등 비용을 다 따로 받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내게 선택권이 있어 내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비쌀 줄 알았으면 그냥 커트만 해 달라고 했을 텐데…별의별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정말 여러 가지가 추가되었는지, 아니면 그냥 커트비가 원래 그렇게 비싼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70불이 적힌 영수증을 받아 나오면서 잠시 현기증이 있었지만, 내가 미리 커트비를 물어보지 않은 게 잘못이라 생각했다. 동네 미용실이라고 다 싼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가서 다시 내가 앞머리를 고르고 옆머리도 손질해야 했다. 정말로 미용은 한국이 호주보다 앞서도 많이 앞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70불이면 동네 미장원에선 파마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절대 호주 동네 미용실은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이듬해 나는 이민 온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중 많은 수가 미용사였다.
호주에서 필요한 직업군은 자꾸 바뀌는데 한동안은 요리, 제빵이어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다 요리사나 제빵사 더니 그다음 해 몇 년간은 길 가다 부딪히면 다~ 미용사였다.
덕분에 저렴한 미용실(?), 즉 본인의 차고에서 잘라주거나 한국인의 집에 직접 가서 잘라주는 미용사들이 많이 생겼다. 나도 차고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자르고 파마도 하곤 했다. 몇 번 그렇게 해 보았지만 그 역시 자주 하게 되지 않았던 이유는, 차고에서 할 경우엔 난방도 잘 안되고 어두침침한 게 싫었고, 또 파마를 감고 있는 동안엔 라면 같은 걸 끓여서 먹으며 개인적인 얘기하는 게 싫었으며, 우리 집에서 하는 경우엔 내가 그 뒤처리 청소를 다 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내가 영어를 가르쳤던 기술 전문대학 (TAFE)에 미용학과가 있었는데, 그곳에선 자주 커트를 무료로 해 주었다.
주로 실습생들이었는데 가끔은 영어가 유창하지가 않아서 실수가 있기도 했다. 무료 남성 커트는 아주 순식간에 마감이 되었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해 주었던 여성 커트나 염색도 꽤 빨리 마감이 되곤 했다.
같은 동료 중 아주 멋쟁이었던 제니는 늘 그곳에서 염색을 하곤 했는데, 한 번은 매니저가 적시에 나오지 않았다면 적갈색이 샛 빨강으로 될 뻔했다면서 안도하기도 했다.
나중에 만난 다른 이민자분들이나 심지어는 1년간 살러 온 부부들의 경우만 보아도 헤어자격증을 따서 오거나 아니면 바리캉을 꼭 사서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호주에는 미용이 비싸다는 걸 한국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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