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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30. 2016

SAMSUNG은 알지만, 한국은 몰라.

호주 편

점심 먹고 시내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가끔 보는 비슷한 광경이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젊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 청년이, 한 장년의 호주인 남성에게 열변을 토하는 것 같이 보였다. 혹시 무슨 사기라도 당했나, 내가 도와줄 건 없을까 귀를 쫑긋하고 그 내용을 들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삼성’은 알지요?” (So, you know Samsung, right?)


“응, 알지. 내 스마트폰도 ‘쌤숭’(보통 '쌤성'이라고 많이 말하지만 이렇게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이고 우리 집 TV도 쌤숭이지.”(Sure, I do. My smart phone is Samsung, and the TV at home is Samsung, too.)


“그럼, ‘ 엘지’는 알아요? 엘지도 엄청 유명한데.” 


“에엘쥐, 당연히 알지. 우리 집에 ‘에엘쥐’가 뭐가 있긴 있는데 뭐였더라? 냉장고가 ‘에엘쥐’인 것 같기도 하네.” 


“한국이 전자제품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자동차도 얼마나 많이 수출하는데요. ‘기아 자동차’ 알죠? 지금 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도 기아차, i30 같은 게 엄청 많이 지나가네요. 이 큰 땅에서 왜 작은 i30 같은 차들을 많이 타는지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 


“아, ‘키아’! 우리 조카도 키아 타는데 보기보다 내부가 넓고 뭐 가격 대비 좋다더군. 근데 그게 '일본차' 아니었나? 난 새로 나온 혼다, 토요타, 키아, 뭐 이런 종류인 줄 알았지. 암튼, 나는 호주땅에 호주의 '포드'보다 더 나은 차는 없다고 생각해. 그럼, 포드가 차 중에 최고지.” 


“'현대’도 한국을 대표하는 차 중에 하나인데…” 


“뭐? 켠 뭐?” (Sorry? KYUN what?)


“아니오, 현! 현. 대!”


“히히휸태?”


“현! 대! 아, 왜 이게 안 되나? 현. 대.” 


“혹시 ‘하이온다이’ 말하는 거 아니야?” (By any chance, do you mean Hyundai?)


“에이? 하이온다이는 또 뭐예요? 하이온다이가 현대예요? 하이온다이? 어떻게 현대가 하이온다이가 되나? 아참, 신기하네.” 


“그래, 하이온다이 맞는 거 같네. 한국 차 하면 하이온다이지.” 


“그래요, 한국이 이렇게 유명한 전자제품도 잘 만들고 자동차도 많이 만들고 해서 수출하는 데 왜 한국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단 말이에요? 어떻게 한국이 열대지방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어를 쓴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어 글쎄... 내가 뭐 그런 몇몇 유명 브랜드를 아는 거지, 굳이 그게 어느 나라 제품인지, 그 나라는 어떤 나라 인지까지 조사하고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아? 내가 뭐 한국과 관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지.” 


딱 한눈에 보아도 그 청년은 아마도 군대를 갓 제대하고 처음 해외여행을 나온 애국자일 것 같았다.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가득 찬 나라사랑으로 해외에 나왔는데, 아무도 한국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분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물었다.


“2002년 월드컵은 알지요? 월드컵? 월드컵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때 '붉은 악마'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유명했는데 그건 알지요?" - 그러면서 청년은 붉은 악마의 '짝짝~짝, 짝짝' 박수까지 흉내 내어 보이고 있었다. 물론, 당시가 월드컵이 지난 지 몇 년이 안 되었으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붉은 악마를 기억하고 있을 때였지만 대한민국민이 다 안다고 세계인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이 청년은 조금 무리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글쎄, 들어본 적이 없네요." 


처음에는 재밌게 웃으며 청년 편에서 듣고 있었지만, '붉은 악마'가 나왔을 땐 청년이 좀 정도를 넘는 것 같아 내가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워홀 왔어요? 아님 그냥 배낭여행인가요?”


“아, 한국분. 아이고 반가워라. 근데 호주 사람들 다 이렇게 무식해요? 어떻게 기아가 일본 거라고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세계가 다 아는 붉은 악마를 왜 모른단 말입니까?”


“글쎄요, 제가 보기엔 이분이 아주 아주 마음씨 좋으신 분 같아요. 아무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이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 다 해 주시고, 다 들어주시고, 역정 한번 안 내시더군요. 호주에선 축구가 유럽인들에게나 인기가 있지 실은 별로 대중적인 인기는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월드컵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요. 저도 2002년 기억나는데, 우리 동네서 저 혼자 소리 질렀던 거 같아요. 그러니 당연히 이분은 붉은 악마인지 검은 악마인지 모를 수밖에요. 근데 그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건 누구 생각인가요? 한국에서 다 안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 절대 아니라는 걸 여행을 마칠 무렵이면 절실히 깨닫게 될 거예요.”


“근데 모든 호주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다들 이렇게 무지합니까? 아, 진짜 짜증 나네. 한국에서 일본어를 쓴다고 생각했다잖아요! 세상에.”


“글쎄요. 듣기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호주에서의 한국이란 나라는 한국에서 동남아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얼추 맞아요. 물론, 아니란 걸 아는 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의 한국과 상관없이 사는 백인 호주인들은 그렇게들 생각한다는 거지요.”......


분이 덜 풀린 듯 일어서 씩씩대며 걸어가는 청년의 배낭에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기가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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