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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Feb 01. 2016

내 사랑의 방식은 내 마음대로

호주 편 

남편을 늘 파트너(partner)라고 부르던 수(Sue)가, 드디어 그 파트너와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그들은 14년간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남녀로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초등 5학년과 2학년의 딸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부부는 늘 가사를 거의 정확히 분담해서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저녁을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은 설거지나 청소를 했으며,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도 철저히 분배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빨래통도 따로 있어서 수는 자신의 옷만, 데이빗은 또 자신의 것만 각각 빤다고 했다. 아이들의 옷은 누가 빠는지 안타깝게도 못 물어봤다. 하지만, 아이들도 청소나 각자의 설거지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이한 공무원이었다. 데이빗도 공무원이었는데, 둘은 항상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아이들을 빼고 본 그들은 타인의 개인 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인생을 맘껏 즐기는 커플로 보였다. 개인의 자유를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둘도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은 다른 부모들보다 더욱 극진히 힘을 다했다.


데이빗은 한 번 결혼했던 터라 별로 다시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한 큰 바람이 없었고, 수도 데이빗이 좋기는 했지만 꼭 결혼을 할 정도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1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이도 둘이나 낳는 동안에 말이다! 물론, 수는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결혼을 안 해도 별 불편함이 없어서 굳이 결혼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했다. 


허긴, 결혼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사실혼의 관계 (de facto)는 실은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와 같은 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때껏 살며 굳이 결혼식을 올릴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큰 딸 애나가 엄마 아빠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 계속 아쉬워하던 딸애를 위해 결혼식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최소한만을 갖춘 아주 간단한 그들만의 결혼식이 될 것이라곤 했지만서도.  


수와 데이빗을 알기 전에 그들과 비슷한 경우의 커플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브루스와 새라는 20대 후반의 연인이었는데 실수로 새라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둘은 사귄 지 벌써 3년 정도 되었고, 서로 잘 맞아 보였으므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이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라는 당연히 아이는 낳아서 기르겠지만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결혼을 하는 건 원치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브루스도 그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둘은 더 이상 연인관계는 아니었지만 계속 왕래는 하였다. 브루스는 연인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다하려던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렇게 쿨하게 애는 낳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그 '선언'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멋지게 보였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젊은 남녀가 있기야 하겠지만, 사회가 얼마나 그 결정을 후회스럽지 않게 경제적으로 인식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같이 일했던 동료인 재키도 고등학생인 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졸지에 할머니가 되어 버렸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에고, 어떻게요?..."라고 했더니, "뭘 어떡하긴, 잘 키워야지..."했다. 그렇게 대답하던 재키의 얼굴엔 전혀 근심도 없이 행복만이 가득했다. 


2015년 세계 창의 지수 (Global Creativity Index) 결과를 보면 호주가 139개국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 개 항목의 평균값으로 순위를 매겼는데 그중 사회 관용 지수 (Tolerance Index)는 4위였다. 1위는 아니지만 한국의 70위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렇게 높은 관용 지수를 가진 호주는 당연히 동성애에 대한 사랑도 정말 너그러운 편이다. 


내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는 3학년, 1학년 자매가 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엄마가 둘이었다. 아빠는 없고, 엄마만 둘이었다. 벡(Bec)과 롸빈(Robin)은 레즈비언 부부였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정자 기증을 받아서 가진 걸로 들었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고 물어보기도 참 껄끄러웠다. 두 아이들은 정말 밝았지만, 큰 아이, 사라(Sara)는 자신의 부모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서서히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에게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천사와도 같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늘 대표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아이의 노래를 들을 때면 매번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정말 노래가 아름다워서 감동을 받아서였겠지만, 왠지 늘 가슴 한쪽도 함께 아팠다. 


나는 여전히 동성애자들에 대한 생각은 개방적이지만, 그들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잘 안 선다. 물론, 버려지고 학대받는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 엄마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사라의 얼굴에서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보았다. 아니, 어쩌면 그건 편견이 없지 않은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방식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롸빈과 벡은 둘 다 여성이었지만, 롸빈은 좀 더 남성적인 역할을 했고, 벡은 그나마 조금 더 엄마 같은 역할을 맡아했다. 롸빈은 실제로 남성처럼 양복과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다녔고, 늘 대화도 남성처럼 했다. 그에 반해, 벡은 보통 헐렁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엄마들과의 수다도 종종 떨고 학교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그나마 여성적인 벡도 '전립선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모금을 하는 달이었던, '콧수염의 11월'인 Movember (Mustache+November)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많은 남성들이 매년 11월에는 콧수염을 자르지 않고 길러서 주위에 모금을 부탁하는 연례행사가 있었는데, 당연히 수염이 자라지 않는 벡은 열심히도 가짜 수염을 붙이고 다니며 모금을 했다. 


늘 벡은 사람들 돕는 것도 좋아해서, 자신은 크게 돈 벌거나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할머니 때부터 구세군 (Salvation Army)에서 하는 자선 가게를 맡아오고 있는데,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정말 참 밝고,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 벡을 안 지 몇 년이 지나, 한 동안 그녀가 정말  힘들어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여전히 직접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어볼 만큼 친하지는 않았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까지는 몇 달이 더 걸렸다. 


나중에 모든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들은 얘기로는, 롸빈이 다른 여자와 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애가 벌써 셋이나 있었던 여자와 말이다. 즉, 정리하면 그 새로운 파트너 여성은 레즈비언이 아니라 양성애자였던 것이었다. 


벡은 살이 10킬로 이상 빠진 것 같았고 말수도 부쩍 줄어 많이 걱정했지만, 그토록 슬퍼하던 벡도 얼마 안 가 나이 많은, 내가 보기엔 정말 너무 늙은 다른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 외로웠던 건지... 복수를 하려던 건지, 아님... 정말 사랑했던 건지.


호주에서는 남편이나 부인을 파트너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경우는 사실혼의 관계에 있거나, 동성애자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종류의 사랑을 하는 사람도 호주에서는 그다지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는다. 동거자도, 동성애자도, 양성애자도. 단지, 개인의 선택이고 선호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그들은 진심으로 동등하게 대하기도, 소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가끔은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이 대놓고 반대 혹은 비하하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다. 그냥, 집에서 부부끼리나 할 수 있는 얘기인 것이다. 


개개인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

남과 다른 기호가 부끄럽지 않은 사회.

남과 같아지도록 교육받지 않는 사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은 사회.


그런 호주가 나는 늘 정말 부럽고 질투 났다. 

우리는 오랫동안 못 가질 것 같아서 더욱 그랬던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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