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이건 안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요? 쓰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아니여, 나는 잘 안 쓰니까 가지고 가서 써."
그렇게 쉽게 나는 18K 귀걸이를 몇 개 얻어왔다. 요란하지도 않고 싸구려도 아닌, 얼마든 원하면 쓸 수 있었던 귀걸이를 그녀는 단지 잘 쓰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선뜻 내게 주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 필요하면 가져가서 쓰라는 게 아니었다. 작아서 못 입히는 아이의 옷을,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을 챙겨서 주는 것도 고맙긴 하지만, 상대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을 내가 받아올 때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고맙다는 생각을 넘어 그 물건에는 따끈하고 진한 마음이 묻어온다.
늘 그녀는 내게 "내가 쓸 수 있는 물건을 줘야혀. 내가 못 쓸 물건은 남도 못 쓰는겨."했다. 쌀이 넉넉한 집에서 보리쌀을 먹고 싶지 않아 옆집에 주는 것과 먹을 것이라곤 보리쌀 밖에 없는데 그의 반을 퍼서 주는 것, 전해오는 온도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녀를 만난 지 벌써 십여 년이 넘었고, 그녀가 지금은 다른 대륙에 살고 있어 거의 못 보지만, 내 삶에 참 큰 흔적을 남겼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 나는 항상, 잉여물을 떼어주거나 처분하는가, 아니면 내가 쓸 수도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가 생각한다. 만약 여분의 것이나 필요하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한다면 최대한 상대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하고,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나누거나 줄 때는 최대한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상대가 나의 "선의"에 대해 고마워하기를 조금이라도 바라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