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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y 18. 2024

언제나 '나 홀로' 걷는 당신

같이 도서관에 갔다 올까?


그래! 


<건물을 나와 곧장 남편은 자기 갈 길을 마치 어딘가에 늦은 사람처럼 혼자 빨리 걸어갔다. 나는 뒤에서 걷고 있었는데 거의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같이 도서관에 가기로 했으면서 왜 자꾸 자기 혼자 저만치 앞서서 걷는 거야?.. 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나랑 같이 가고 싶기는 한 거야? 아니면 혼자 가고 싶은데 억지로 같이 가주는 거야?? 나도 굳이 이런 기분으로 같이 안 가도 되거든.)


(저기서 기다리고 있군... 아이고 겨우 따라잡았더니 또 혼자서 앞서서 가기 시작하네? 참 네.. 뭐 이건 같이 어디를 가는 거야, 그냥 각자 같은 곳을 가는 거야?.. 아, 계속 이렇게 가야 하면 그냥 집에 돌아갈까?)


(뒤에서 누가 날 납치해 가도 모르겠다. 여기 뒤에서 한참 숨어 있으면 내가 없어졌는지는 알까?... 좀 숨어있다가 나가봐야지...)


왜, 빨리빨리 안 와? 뭐 기분 나쁜 일 있어? 


아니, 그냥 자기 혼자 자꾸 막 앞서서 걸어가니까 좀 그렇긴 해. 왜 자꾸 혼자만 앞서서 걸어가?


내가 언제? 난 그냥 미적거리지 않고 걸을 뿐이라고. 당신이 그냥 너무 늦게 일부러 천천히 걷는 거지.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가 보지? 


(아, 이제야 진짜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진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야. 뭐, 딱히 화를 내려고 해도 좀 빨리 걷는 걸 가지고 뭐라 하기도 그렇긴 한데... 기분이 좀 좋지는 않네.) 


<하지만 일어나려는 화를 누르며 겨우 겨우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몇 시간 뒤 집으로 가는 길>


왜 이렇게 천천히 걸어? 


나는 그냥 내 속도대로 걷는 거야. 그리고 뭐 어디에 늦었어? 왜 급하게 서둘러서 어디를 가야 해? 재밌는 가게들도 많은데 좀 천천히 구경도 하면서 걸으면 안 돼? 왜 그렇게 막 빨리 걸어서 집에 가려고 해? 집에 뭐 중요한 일 있어? 


그러니까 삐진 게 맞았군. 어쩐지 계속 뒤에서 걸어오면서 일부러 천천히 걷는 게 아까부터 뭔가 있는가 보다 했지. 


난 진짜 삐진 게 아니라니까! 아니다, 좀 삐진 게 맞기는 맞겠네.. 근데 그건 당신이 자꾸만 앞서서 걸어가니까 서운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막 좀 화가 나서 그런 거야. 도대체 그러는 이유가 뭔지 그냥 말 좀 해봐. 


난 앞서서 나 혼자 걷고 그런 적 없다니까!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고!


(정말 돌아버리겠다!) 


<집으로 돌아와서 두 아이들과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자, 내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볼 테니 객관적으로 너희들의 의견을 좀 줘 봐. 난 진짜 뭘 잘못했는지, 왜 오늘 하루가 망가져야 했는지 난 도무지 모르겠거든. 


<그리고 아들들에게 그날 밖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들 2: 아빠는 뭐, 항상 그렇게 앞장서서 걷잖아요. 뭐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데요, 뭘. 그럴 때마다 아빠를 불러서 좀 천천히 가라고, 아니면 거기서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시잖아요. 


알아. 하지만 왜 그렇게 우리가 항상 그렇게 기다리라고 말을 해야 하냐고. 지난번에 빅토리아 마켓 갔을 때도 기억나지? 혼자 앞서서 막 가버려서 우리가 전화해서 서로 어딨는지 물어보고 찾으러 다니고 했던 거. 


난 시티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신과 애들을 보호해 주려고 내가 앞장서서 길을 터주는 거야. 


그렇게 길을 터주고는 뒤에는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잖아?!


알았거든! 걸어가다가 올 때까지 기다렸잖아. 


아니지, 2~3초 만에 한 번씩 돌아보면서 가는 것도 아니고, 한참 앞장서서 가다가 한 번씩 자기가 어딘가에 멈추면 거기 서서 기다리는 걸 상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볼 수 있어?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야? 난 그냥 평소대로 했는데 당신이 뭔가가 배배 꼬여서 나를 이렇게 공격하는 거잖아? 


아들 1: 아빠는 우리가 어렸을 때도 그랬죠.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우리를 안고 다녔겠지만, 좀 커서 제가 잘 걸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어렸던 유치원 다닐 때 아빠가 혼자 앞에서 너무 빨리 걸어가서 제가 뒤에서 좀 울면서 따라갔던 때가 기억이 나요. 전에도 말한 적 있었는데... 그때 진짜 다리도 많이 아프고 천천히 가고 싶었는데 혼자 남겨질까 봐 힘들게 막 따라 걸었었죠.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짐)


아들 2: 근데, 아빠가 일부러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궁지에 몰아넣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그냥 다음부터는 그럴 때마다 아빠를 불러 세우면 되지 않을까요? 

.........

<그렇게 그날의 가족회의는 별 수확 없이 끝난 것 같았다>


<그다음 날, 어딘가를 가기 위해 함께 빌딩을 나서는데 또다시 남편이 앞서 걷다 걸음을 늦췄다>


아, 앞장서서 걸으면 안 된다고 했지. 근데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앞서서 빨리 걸으려고 하는 것 같으니까 그때마다 나에게 혼자 빨리 걷지 말라고 상기시켜 줄 수 있어? 


ㅎㅎ, 응, 그러지. 


<남편은 아주 논리적인 사람이니 아마도 밤새도록 우리가 한 말의 의미를 분석하고 또 분석하며 앞으로 어떻게 가족들을 의도치 않게 상처 주지 않을지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 남편이 앞서가는 걸 상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정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바뀌면 남편은 으레 속도를 높였다>


자기야, 그냥 우리 앞으로는 손을 잡고 다니자. 그럼 빨리 걸을 수가 없을 거 아냐.


아, 그래 그러자. 그럼 내가 혼자 빨리 못 갈 거니까. ㅎㅎ 나는 완전 구제불능이구만!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늘 남편의 손을 잡고 걸으며 남편에게 남과 보조 맞춰 걷기 트레이닝을 시켰다. 요즘은 손을 잡고 걷지 않아도 거의 항상 보조를 맞춰서 걷거나, 가끔 자신이 빨라지면 곧 늦추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빨리 걷는 것처럼 보이면 혹시 자신이 너무 빨리 걷기 때문은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나는 가끔은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빨리 걸을 수 있다고 하거나 아니면 조금 지치니 속도를 늦춰달라고 편하게 말한다.> 


가끔 내가 예전 생각을 해 보면 사람들과 걸을 때 자주 나 혼자 앞서서 걸었던 것 같아. 난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그냥 늘 그랬고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의도치 않게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는데, 이제 그 사람들한테 좀 미안하지? 


아니, 뭐 그렇다고 미안할 거까지는 아니고. 뭐 그건 과거의 일이니까. 



아스퍼거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세상에 산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대부분 학습으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배우지 못한 부분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길을 걸을 때는 상대와 속도를 맞춰서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을 따뜻한 부모가 가르쳐 주지도, 성인이 되어 어디서 배운 적도 없으면 그냥 상식적으로 알 수는 없는 거다. 


예전에 아이들이 아빠 좀 기다리라고 했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이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자신이 앞장서서 걸으면 뒤에 남은 사람이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걸어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전~~ 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전에도 내가 같은 불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에게 자폐적 성향이 있다는 걸 인지하기 전에는 그게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갖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냥 그게 배려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행동이라 생각했을 것이니 이기적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많이 외롭고 서운하기만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스퍼거가 있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게 너무 억울하다고 하고. 


아스퍼거가 있는 많은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좀 더 일찍 자신에게 아스퍼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무척! 안타까워한다. 그것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그들의 삶이 나뉜다고들 하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스퍼거가 있다는 걸 알고 난 후로 삶의 해방을 느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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