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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y 21. 2024

예민한 감각 - 촉각

1. 남편의 눈에 다래끼가 생기려고 해서 안약을 넣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병원이나 집에서 안약을 넣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던지를 아는지라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병원에서 안약을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얼굴에 인상이 써지고, 안약을 넣고 난 후의 하루는 거의 너무나 우울한 날이 되곤 했다. 집에서도 눈이 건조하거나 해서 식염수라도 좀 넣어주려면 얼마나 짜증부터 내던지 이제는 아예 그런 얘기를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데 웬일로 어제는 자신이 나에게 안약을 좀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했을까. 실은 그저께 저녁에 그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내가 바로 넣어주겠다고 했더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으니 다음 날 아침에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지, 계획이 필요하지..)


그렇게 그다음 날이 되었고, 계획대로 남편은 안약을 넣어달라고 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는데 온몸의 긴장이 느껴졌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해서였던지, 이전에 몇 번 해봐서였던지 금방 안약을 2초 만에 다 넣고, 다했다 하니, 정말 다 했냐고 했다. 


왜 그렇게 긴장을 하느냐고 물으니 안약을 눈에 넣으면 눈이 너무 아프다는 거였다. 헐~ 그래서 이번에도 아픈 걸 참았냐니까 그렇다고 했다. 


나는 3시간마다 안약을 넣어야 한다고 했고, 알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시간을 지켜 와서는 안약을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이 지나고 나니 이젠 거의 아무렇지 않게 "안약공포"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자극은, 이전에 예상할 수 없어 느꼈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 남편과 연애할 때였던 가, 왜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남편의 귀를 가볍게 만지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주 예민하게 내 손을 물리치며 인상을 썼다. 만지지 말라는 거였다. 


가족끼리, 애인끼리 귀도 파줬던 한국 문화의 그 세대에 자란 나는 그렇게 자신의 귀를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매몰찬 눈빛을 하고 말할 것인가 싶었다. 


살다 보면 귀에 뭐가 묻어서 떼어주고 싶을 때도 있고, 다른 이유로 아주 가끔은 상대의 귀를 건드릴 수도 있는데도 오랫동안 그는 자신의 귀를 만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거의 십여 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그의 신뢰를 얻어가며 나는 그의 귀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남편의 귀를 아무렇지 않게 만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말하긴 했었다.^^ 


남편은 그렇게 자신의 귀를 만지도록 "허락"해 주었지만 처음에는 잠시 동안만 허락했다. 하루에 그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그렇게 서서히 나는 그의 귀를 만질 수 있게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내가 만지고 싶을 때 만진다. 


3. 코를 자꾸 풀고, 건초열로 자꾸 재채기도 하고 해서 내가 코를 좀 씻어내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얘기를 정기적으로 몇 번 한 덕분인지 웬일로 그러겠다고, 약국에서 코세척제가 보이면 좀 사다 달라고 했다. 


나는 그날 바로 사다 집에 갖다 놨다. 


(생각보다 내가 너무 빨리 사 왔나?)


남편은 마음에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사 오라고 했으니 쓰라고 했고, 그는 그다음 날 쓰겠다고 했다. 


다음 날이 되고도 그가 여전히 쓰지 않자 나는 왜 안 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날 저녁에 쓰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이 되자 그렇게 그는 그 세척제를 정말 큰 마음먹고 한 번, 딱 한 번 썼다. 

그 이후로 자신의 코는 더 이상 막히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쳇, 여전히 코는 계속 풀어 재끼면서...) 


그에겐 코로 무언가가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인 것 같았다. 


4.  어느 날 TV화면에 유튜브를 틀어놨다. 집중이 잘 되는 피아노 곡 모음 같은 채널이었는데 화면은 거의 바뀌지 않고 같았다. 어떤 큰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사진이었는데 남편은 그 사진에 매료되어 한참을 앉아서 그걸 보고 또 봤다. 


그리곤 내게 그 폭포의 물이 튀는 게 살갗에 느껴지냐고 물었다. 전혀 이미지적인 사고를 하지도, 신체의 감각이 독특하지도 않은 나는 안타깝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마치 그 폭포 옆에 서 있는 듯 튀는 물방울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여 조금이라도 남편이 느끼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듯했다.. 




남편은 모든 촉각에 예민해서 눈, 코, 귀,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심하게 힘들어한다. (수면이 아닌 일반 내시경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왜 그런지를 알기에, 논리적으로 자신의 행동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인지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니라고, 내일 아침에 하겠다고, 오늘 저녁 먹은 후에 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면 나는 안다. 그가 그때까지 심리적으로 준비하겠다는 뜻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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