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May 16. 2024

왜 나는 내가 아스퍼거가 있다는 걸 평생 몰랐을까

약속 장소에 항상 아주 일찍 도착한다

오늘 김작가 만났는데 거기 어떤 사람이 오기로 한 시간보다 10분 이상 늦었거든.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정말 다들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고 막~~ 늦고 그래서 너~~~무 너~~~무 싫다더라고. 그래서 도 한국 사람이라고, 모든 한국 사람이 다 그런 거는 아니라고 했어. ㅎㅎ 김작가는 약속 장소에 반드시 최소 한 시간 반 전에는 도착한대. 그리고 약속 시간 정각에 일이나 미팅을 바로 시작한대. 


ㅎㅎ 나 같은 사람이 거기 또 있었네? 난 적어도 2시간 이상 전에는 가는 거 같아. 미리 도착해서 출구는 어디인지, 그곳에 어떤 테이블이 어느 위치에 어떻게 있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빛이 잘 비치고 가장 덜 눈에 띄는 곳이 어딘지, 다 미리 파악을 한 다음,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된 다음에 사람들을 만나야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새로운 장소에 준비 없이 딱 들어갔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곳에 한가득 앉아 있을 때 막~ 미치도록 소리치고 싶어 져. 


요즘은 그래도 자기가 왜 그런지를 아니까 좀 낫지 않아? 


그럼 그럼, 백배 낫지... 근데 왜 나는 내가 이런 걸 평생을 몰랐을까? 몇 년 전 당신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도 모르고 있겠지? 어째서 나는 내 스스로도 내가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하고 40년이 넘도록 살 수가 있었을까?...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많을 텐데.. 난독증 얘기만 하지 말고 내 얘기도 사람들한테 좀 해~ 


당신이 아스퍼거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이전보다 마음이 훨씬 더 편해졌어? 


그럼! 이젠 아예 사람들한테 그냥 바로 말해버려. 어제도 사람들이 왜 나보고 술을 안 마시냐고 해서,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절제가 잘 안 된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 만나는 거에 불안이 심해서 술을 마셨던 거였더라고, 실은 내가 좀 자폐가 있다고 말해버렸어. 오히려 그러면 그게 새로운 대화 주제가 되서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 


예를 들면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데? 


주로 자기 주위에 비슷한 사람이 있는 얘기를 해. 자기 아는 사람의 아들, 자기 조카, 친구도 뭐 그런 비슷한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뭐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 


그럼 사람들이 오히려 당신을 더 잘 이해하겠네? 그러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속이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생활이 편해졌겠다? 


그렇지! 아, 훨씬 더 이전에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지난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살짝 북받침)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빨리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얘기를 쓰라고. 


하지만 내가 당신 얘기를 쓰다 보면 당신 주위에 당신을 아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게 당신이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어떡해? 


괜찮아. 난 뭐 숨기는 거 없고 다들 알아도 괜찮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기에 대해 알게 되면 좋지 않겠어?


알았어. 그럼 내가 지난 얘기들을 기억해서 써보도록 할게. ^^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약속 장소에 종종 늦는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ADHD가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없는 사람들 중에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새로운 장소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교통 상황이 어떨지, 도착한 장소가 어떤 곳일지, 건물은 입구와 출구가 어디인지... 가능한 많은 것을 미리 파악해 두면 마음이 좀 더 편해진다. 이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스퍼거스에서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예측 불가능하거나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말이다. 


*** Asperger's syndrome은 한국어로는 아스퍼거스, 아스퍼거라고 하며,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아스피라고 한다. 이는 자폐스펙트럼상에 있는 일상생활에 두드러지는 문제가 없는 자폐증을 말한다. 하지만 자폐증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가 자폐고 어디까지가 정상인지가 참 모호하다. 그래서 자폐스펙트럼이라고 하며 아스퍼거스라는 말도 따라서 그 스펙트럼상에 포함시키면서 이제는 공식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증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아스퍼거스를 스펙트럼상에서 함께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 많다. 따라서 나는 자폐스펙트럼, 자폐증, 아스퍼거스, 아스퍼거, 아스피라는 말을 앞으로 계속 혼용하여 쓸 것이다. 


#자폐증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스 #아스퍼거 #아스피 #약속 시간에 일찍 가요 #불안 #예측 불가능 #두려움 #신경다양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