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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Sep 07. 2024

내가 대체 뭘 잘못했어?!

남편: 내가 도대체 잘못한 게 뭐야?

나: 헐~ 지금까지 얘기했잖아! 

남편: ...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잘못한 게 뭐냐고??

나: 이렇게 오래 얘기했는데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를 모른단 말이야? 지금까지 나 혼자 떠들었던 거였어? 

남편: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나: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전혀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전혀 내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늘 착하다는 말을 듣고 큰 아이가 그럴 법하듯 나는 남편의 "이기적인" 언행을 최대한 이해하고 견뎌내고 있었다. '어떻게,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할까... 상대방은 서운하고 속상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하면서.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느 날 '이제부턴 어떻게든 대화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필요시 "자세하게" 내 감정과 입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 내 "너무나 당연히 이해가 되는" 나의 설명을 듣고 남편이 나의 말에 공감하고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면 나는 사과해 줘서 고맙다, 괜찮다며 쿨하게 넘어갈 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은 자신이 대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며 되묻기 일쑤였다. 분명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주 자세하게" 방금까지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대화는 "당신은 항상! 옳지, 나는 매번 틀렸고 말이야! 내가 뭘 하건 결코 당신의 성에 차는 법이 없군"(You are always right and it's always my fault! I'm never good enough!)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주로 남편은, 

1. 내가 "대화"를 시작하면 그건 곧 "공격"이 시작되는 걸로 간주했다. 그러니 당연히 자연스레 방어모드에 돌입했다. 

2. 내가 상황을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면 집중을 잃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핵심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통으로 다 까먹었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들리지 않았었거나. 

3. 자신이 대체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항상 물었다. 도저히 자기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런데 남편이 신경다양성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대화하는 자세와 방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  내가 대화 비스므리한 걸 시작하면 그의 얼굴과 몸은 경직되었으며 이미 화가 좀 나려고 하는 걸 나는 감지했다. "아, 나는 공격하는 거 아닌데? 나는 그냥 당신이  OOO 하면 좀 서운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얘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얘기해 본 건데 공격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스트레스받지 마~~ ^^ 커피 한 잔 할까?..."처럼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쾌활하고 심각하지 않게 얘기하려고 한다. 


그러면 이미 방어모드에 들어가 있었던 그는 혼자 방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자신이 좀 오버했었다는 걸 인지하고는 잠시 후 (혹은 한참 후) 방에서 나와서는 말한다. "이제 얘기할 준비가 됐어. 내가 어떻게 할 때 서운한 감정이 든다는 거야? 내가 고쳐볼게 얘기해 봐." 


남편은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어서 (감정을 나누거나 읽는 것에 많이 약한 대신) 나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들이 더 잘 먹혔다. 


2. 나는 더 이상 장황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자세하고 길~~ 게 얘기해 봐야 남편은 내 말을 듣지 ""할 것이므로 그냥 최대한 간단히 말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열리고 나의 말을 더 듣기를 원할 때 더 자세한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내 말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길어지면 그는 눈에 띄게 불편해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얘기를 그만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자연스럽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 아 참, 빨래해야 하는데 깜빡했다... 이거는 안 빨아도 돼?..." 


3.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남편이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라고 감정적으로 말할 때도 나는 감정적으로 받아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이제 그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물을 때는 "따지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질문"하는 거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남편의 말도 안 되는 되물음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긴 했지만 억지로 눌러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화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아스피(아스퍼거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은유적이거나 간접적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얼마 전 들은 유튜버 크리스의 얘기다. 

그는 새 사무실로 옮겨야 했던 적이 있어서 짐을 옮겨줄 트럭을 불렀다. 그들은 50개 정도의 아주 무거운 박스를 2층 사무실 계단에서 들고 내려와 1층 트럭으로 옮겨야 했다. 당연히 트럭운전사가 크리스와 함께 박스를 사무실에서 트럭으로 실을 거라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무거운 첫 번째 박스 하나를 계단에서 힘들게 들고 내려와 겨우 트럭에 실은 후, 다시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 "실은 제가 허리 수술한 지가 몇 달 안 됐어요" "아, 그렇군요.." "......" 


그리고 크리스가 박스를 들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전 트럭운전사는 박스를 들지는 않고 "수술하고 완전히 허리가.. 아직 회복이 덜 된 것 같아요." "아.. 네.. (그래서 어쩌라고?? 안타깝긴 하지만 난 당신 얘기엔 솔직히 관심 없고, 박스나 빨리빨리 옮깁시다!)" "......" (어색한 기운이 잠시 흐르고...) (결국 크리스의 부인이 개입하여) "크리스, 허리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 무거운 박스를 많이 나르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당신이 혼자 다 날라야 할 것 같아.." 

"WHAT????"


뒤돌아 보면 나와 남편도 이런 경우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어서 나는 굳이 직접적으로 대놓고 말하지 않았고,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편에게 종종 서운함을 느끼고 화도 났었다. 


물론 남편에겐 여전히 바뀌지 않는 부분이 아주 많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중요한 건 나는 더 이상 그가 의도적으로 나를 서운하게 하거나 이기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도 내가 "대화"를 할 때마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웃지 않고 "대화"를 시작하면 항상 내가 "매우 화가 났음"으로 인식하는 남편 때문에 나는 습관적으로, 의식적으로 늘~ 얼굴에 웃음을 띠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요즘 남편은 종종 내게 뜬금없이 "당신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 하면서 너무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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