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사자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쎄~게 긁고 지나간 것처럼 남편의 한쪽 다리가 피가 나도록 심하게 긁혔다.
그런데 누구에게?? .. 어디서??.. 우리 둘 말곤 아무도 없었는데?..
남편은 가끔 자신의 다리를 아주 세게, 깊이도 긁어서 피가 나기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나는 왜 그런지 전혀~ 그 이유를 몰랐다. 내가 "당신 다리에서 피가 나~" 하면 "어? 그러네.. 자다가 긁었나 봐. 손톱이 너무 길어서 그래. 손톱을 짧게 깎아야겠어."와 같은 짧은 대화가 오고 갔고, 곧 손톱을 짧게 깎는 걸로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상동행동"에 대해서 알게 된 후에야 남편이 언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게 됐다.
우선 아이의 자폐가 심해서 센터에 다니며 자폐증에 관해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상동행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 말로 설명하자면, 자폐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감각이 매우 예민한데, 감각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같은 단어와 소리를 계속 내거나, 물건을 계속 돌리거나 등등의 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하는 경우를 말한다.
심한 자폐가 있는 사람들이 손을 새처럼 파닥파닥 하거나 한자리에서 뱅뱅 도는 걸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봤을 텐데, 실은 아스퍼거 정도의 자폐가 있는 사람들의 상동행동은 대부분 상동행동인지도 잘 모를 정도로 약하지만 정말 흔하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계속 빙빙 돌린다던가, 연필을 계속 돌리거나,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계속 뽑는다던가, 눈을 계속 깜빡거린다든가, 모든 손의 손톱을 다 물어뜯어놓는다던가...
어? 그런데 다리를 자기 스스로 피가 나도록 긁는 것도 상동행동인가?
그렇다고 한다. 이런 류의 상동행동을 pain stim, 한국어로는 '고통 상동행동'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조절 가능한 정도의 고통으로 조절이 불가한 외부 자극에 대한 스트레스를 조금 낮추는 것이라고 한다.
감각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예민해지면 견디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때 이러한 pain stim으로 과부하에 걸린 감각을 조금 진정?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지만 억지로 상상해 보자면, 내 주위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소리치고 때려 부수고 난리가 나서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내 몸의 털을 하나씩 뽑거나, 뾰족한 걸로 나를 찌르면 감각이 거기에 집중이 되어서 스트레스를 주는 주위 상황에 조금은 덜 예민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종이의 뾰족한 부분으로 손가락을 꼭꼭 찌르는게 너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상동행동이 더 궁금한 사람들은 한국어로 '상동행동' 말고 영어로 'stim / stimming'으로 검색해서 더 많은 자료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영어가 어려우면 요즘은 간단히 번역기 돌리면 되니까!^^) 한국어는 대부분이 심한 자폐에 관한 정보만 많지만, 영어로 stimming을 치면 고기능 아스퍼거들의 좀 더 자세하고 다양한 예시와 설명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의 심한 자폐증을 가진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감각을 진정시켜 주는 stimming 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시각적 stimming 도 있는데, 라바램프처럼 둥근 모양이 몽실몽실 둥실둥실 떠다니는 걸 보면서 안정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네온 조명 같은 걸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자신의 행동이 상동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후로는 다리를 약간 긁다가 "... 내가 다리를 긁었어.. 하마터면 세게 긁을 뻔했어!"하고 인지하고 곧 멈추었다. 그렇게 인지하기 시작한 후론 아주 오랫동안 다리를 긁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호주 방문에서 내가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나의 스트레스도 심하여 남편을 살필 여력이 없었던 터라), 남편은 아주 극심한 스트레스를 장시간 받았고, 그 다음날 본 그의 다리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군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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