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모든 아스퍼거(자폐)와 ADHD가 알코올중독이 된다는 것도,
알코올중독을 옹호하려는 의도도 전혀 아니라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얘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남편은 사람들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그것도 술을 아주 진탕 마셔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마셨다. 그게 2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스무 살 중반이 될 때까지 입에 전혀 술을 대지 않던 사람이 한 번 마시기 시작하니 "절제"가 되지 않았다.
젊을 때는 나도 종종 술을 마시곤 했고, 기억이 안 날 때까지 마실 때도 많았으니 남편의 절제가 안 되는 음주 성향을 잘 몰랐다. 그렇다고 남편이 매일 습관적으로 마신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여느 젊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는데도 무책임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30대에는 지도 교수님들과 술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그다음 날 아주 중요한 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된 날도 있었고, 지인 집에서 하는 바비큐 파티에 갔다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해 운전석에 겨우 앉혀오고, 무슨 종류의 모임이든 술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자리면 남편은 항상 끝까지 남아서 그 자리를 떠나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택시를 타고 자신이 가야 할 집을 설명을 못해서 택시기사한테서 전화를 받은 적도 있고,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서울을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온 적도 있으며, 아들이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밴드의 콘서트를 그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서 못 일어나서 함께 못 간 적도 있다.
술이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매일 한 병씩 마시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자신은 사실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듣고 매우 화가 난 적도 있다. 술을 끊기 위해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이 쓴 책을 몇 권씩 읽고 6개월간 금주를 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예전 직장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회식이 있었을 때는 정말 거의 매일 마시고, 그 담날 회복하고, 또 마시고, 또 회복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직장을 바꾸고 나서는 가끔 회식이나 모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정말로 집에서는 여러 달 동안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술을 안 마신 지 6개월이 지났어도 다시 술을 입에만 대면 또 고주망태가 되었다. 그리곤 며칠간 한없이 회한에 빠졌다가 금주일지를 써보기도 하고, 직장에 금주 서포트 그룹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가,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겠다는 가능하지 않은 목표를 세웠다가... 어느 날 결국 다시 술에 절어 집에 들어왔다.
나는 정말이지 술을 그토록 마시면서 자신은 그렇게 될 때까지 마실 의도가 전혀 없었다, 단지 와인을 입에만 대기만 했는데 왜 그렇게 취할 때까지 마시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지겨웠다. 레퍼토리가 늘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그가 바뀔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오랫동안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그다음 날 그에게 해장국을 끓여줘야 하는가? 전혀 한 모금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던 그의 말을 나는 진심!!으로 믿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무책임한 변명 같아서 미웠다. 그가.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가 왜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자꾸 술을 마시는지, 그리고 왜 동이 틀 때까지 남아 마시고 있었던지를.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던 중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늘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는 긴긴 대화를 했다. 정말 왜!!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일로 나를 힘들게 하는지 그도, 나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술을 처음 한 모금 마실 때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마음인지를 물었을 때 그가 말했다. "... 불안해서인 것 같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불안이 몰려오는데 술이 한 모금 들어가면 내가 아주 자연스러워지는 게 느껴져. 그리고 사람들도 그런 나를 아주 재밌어하고 편안해하는 것 같아."
혹자는 이게 너무나도 당연하거나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었다. 나도, 그도 그에게 자폐가 있다는 걸 너무 오랫동안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만나서 불안해하고 불편해한다는 것도 몰랐다. 늘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편하고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들만 봤으니까. 자신이 '불안'이라는 단어와 깊은 내면에서 조우하게 되었을 때 그는 아마도 스스로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날의 대화가 물꼬를 터서 우리는 그의 불안과 음주에 관한 얘기를 좀 더 진진하게 좀 더 자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왜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먼저 술을 입에 대려고 했던 지를 알게 된 것이 정말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날 그 순간 이후로 남편은 바로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일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술을 마시 돼 "적당히" 마신 적은 절대! 없었던 것일까?
이것은 내가 신경다양성에 대해 공부하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는데 ADHD와 절제력의 부족이 관련이 있다는 걸 어딘가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뭔가 한 번 몰입하면 과하게 몰입하는 것은 발전적이기도 하지만 자기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런 성향으로 성공하기도 했지만 알코올한테는 매번 KO 당하고 있었던 거였다. 남편에게는 자폐성이 더욱 강하게 보이지만 ADHD적 특징도 있다. (대부분의 신경다양인들은 자폐, ADHD, 강박, 운동협응의 어려움 등을 2개 이상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가 술을 입에 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심한 불안감 때문이었고, 절제가 안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신경다양성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비전문가적이지만 타당성 있는 결론을 지었다.
비로소 20여 년 만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정말 진심으로 그를 미워하지 않고 연민하게 되었다. 그도 실은 우리 가족만큼, 혹은 누구보다 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바꾸고 싶어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도 않게 되었다.
비로소 스스로가 불안 때문에 술을 마시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사람들이 술을 권하면 터놓고 말하게 되었다. "사실 제가 자폐가 좀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면 불안함이 커집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데 한번 마시면 절제가 잘 안 됩니다. 그냥 저는 콜라 마셔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단 한 명도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물론, 예전 직장이었다면 남편은 승진대상에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현직장에서도 '아이고, 저 사람이 자폐가 있대, 알코올중독이 있나 보지, 허우대는 멀쩡한대...'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남편이 가면을 뒤집어쓴 채 자폐가 없는 척하고 술을 아무렇지 않게 마셨어도 어차피 다른 말들을 등 뒤에서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자폐"가 숨길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자폐적 성향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남편은 이러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절제하면서 술을 '가끔' 마실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자신이 평생 술을 '적당히' 마실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drink'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어휘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안쓰럽고, 자랑스럽다!
(**이 글을 다 쓴 후 발행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남편의 치부를 이렇게까지 다 드러내도 될까 하고서. 하지만 분명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단 한 명이라도 남편처럼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우지 않고 이 글을 올리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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