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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ul 09. 2024

여행 갈 땐 베개!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이제야 앉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 글을 기다린 분이 계시다면 앞으로는 간간히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남편은 잠을 잘 못 잔다.


베개에 머리를 갖다 대면 잠에 쉽게 빠지지만 그만큼 쉽게 깨기도 한다.


그가 잠을 잘 못 잘 때는 대부분 환경이 바뀌었을 때이다. 특히나 자신이 혼자 호텔방에서 자야 하는 경우가 가장 심한 것 같다. 그리고 3일을 같은 곳에서 묵는다면 첫날이 가장 심하다. 같은 호텔방이어도 그 옆에 내가 있으면 심적으로 훨씬 편해서 잠을 좀 더 잘 자는 편이고, 혼자여도 같은 방에서 둘째 셋째 날이 되면 그 방에 익숙해졌으니 좀 더 나아진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여행을 가서 잠을 푹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언젠가 자폐스펙트럼 상있는 어떤 사람이 자신은 여행 갈 때 자신의 베개를 들고 가지 않으면 너무너무 그 여행 자체가 괴롭다고 하는 말을 고 남편에게 전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 나도 항상 내 베개를 들고 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 들고 갈 수만 있다면야.. 그럼 잠을 훨씬~ 더 잘 잘 수 있을 텐데.."했다.


나는 남편이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아니다, 어쩌면 언급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마도 까탈스럽다며 주의를 기울여 심각하게 듣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호주에 갈 때는 내 옷을 좀 못 들고 가더라도 남편의 베개를 꼭 들고 가볼까 한다.


이제 와서 반추해 보면 그에게 베개는 늘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으니까.


미라와 제이슨 이야기


호주에 살 때 내 친한 이웃이었던 미라와 제이슨이 있었는데, 제이슨은 참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부인이었던 미라는 아주 털털한 성격이었던 반면 제이슨은 아주 꼼꼼했다. 부인이 청소기만 대충 돌리는 걸 보지 못해 부인을 아예 나가라고 하고는 자신이 청소를 했다. 청소기도 돌리고 먼지까지 다 털어서 아주 깨끗하게 해야 했다. 그는 남자였지만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고, 다른 남성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친한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같이 밖에서 어울려서 놀거나 따로 어디를 가는 법이 내가 알기론 없었다. 가끔 어디를 갔을 땐 우리가 같이 가족동반으로 갔던 적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는 침구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 결국 침구를 파는 가게까지 열게 되었다. 내 큰아이 생일 때도 제이슨이 케이크를 아주 예쁘게 구워서 줬다.


이런 제이슨을 나는 어쩌면 결혼은 했지만 실은 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너무나 섬세하면서, 조용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하는 법이 거의, 아니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남편의 베개 얘기를 듣고 나서 불현듯 제이슨이 떠올랐다.


그는 여행을 다닐 때 반드시 자신의 베개를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혹시 그가 게이가 아니라 아스퍼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보고 그의 특성들을 약간 다른 눈으로 기억해 보았다.


- 그는 자주 아팠다. 미라는 그게 늘 불만이었는데 그는 툭하면 아파 누웠다. 신경다양인들은 주로 자주 아프다. 늘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마스킹을 하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음식에도 예민해서 아무거나 잘 못 먹었고, 음식이 조금만 상하거나 자신과 맞지 않으면 심하게 아팠다. 모래를 씹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미라는 남편이 아파도 너무 자주 아프니까 항상 불만스러워했다.

- 그리고 그가 남자들과 술을 마시거나, 스포츠를 즐기지 않았던 건 그가 여성스러워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 그는 케이크도 꼼꼼하게 잘 만들었고, 딸을 위해 나무 위에 집도 완벽하게 지었고, 뭐든 잘 만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 그는 어쩌면 아주 시각적인 사고를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 러시아어를 쓰는 중국계 호주인이었던 미라는 전형적인 호주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들을 먹었는데 제이슨은 거의 항상 파스타 아니면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는 새로운 음식에 대한 자극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는 늘 자신이 먹는 음식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당시의 제이슨은 40대였는데 여권이 없었다. 나는 20대부터 여권이 있었고, 늘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 했으니 여권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못 가서가 아니라,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이게 너무 이해가 안 되어서 충격적일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사람이 많은 곳이 싫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득한 새로운 나라에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이 아주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제이슨과 미라는 결국.. 이혼했다고 했다.


나는 처음 이혼 소식을 접했을 때, 드디어 제이슨이 다른 남성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내 맘대로 추측했었지만, 지금은 어쩌면 제이슨을 미라가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번 여행에서는 꼭 미라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아스퍼거 #신경다양성 #여행 #베개 #예측불가능상황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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