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와 아바이마을, 그리고 식해
초등학생 때쯤 TV를 보는데 ‘아바이마을’ 소개가 나왔다. 아바이 순대를 파는 곳이라고. 나는 순대도 좋아하지 않고 ‘아바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저런 곳을 왜 갈까? 했다.
그런데 올해 초여름에 바다 여행으로 속초를 다녀오려고 Perplexity의 도움을 받아 일정을 짜니 아바이 마을이 포함된 일정이 나왔다.
이상하게 이제는 갈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갯배의 의미를 누가 알려주지 않아더라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순대와 식해를 먹다 보니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났다.
시장에서 ‘OOO 아바이’, ‘OOO 어마이’하고 내 이름을 넣어 우리 부모님을 부르시던 할머니 모습. 어릴 때는 왜 사람들이 듣게 내 이름을 자꾸 넣어 부르실까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성한 아들 부부를 부를 방법이 따로 없었던 할머니 마음이 조금 이해될 것도 같았다.
그때는 ‘아바이’, ‘어마이’하고 부르시는 할머니가 계시니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으나 이제는 한 번 가지 않고서는 기억을 떠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 댁에 가면 유일하게 잘 먹는 반찬이 ‘가자미식해’였다. ‘명란젓’은 껍질이 있어 많이 먹기가 어려웠고, ‘창란젓’은 특유의 향이 있어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빨간 타파웨어 용기에 담긴 여러 가지 발효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고춧가루가 벽돌빛에 가까워져 마르기도 해 모양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식해만 있으면 밥을 잘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가자미식해를 잘 못 담그시다가 할머니께서 아프시게 되면서 할머니께 해드리려고 동네 분들께도 도움을 구해 식해를 배우셨다. 7번 국도를 따라서는 식해를 내놓는 곳들이 있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지 않으셨으리라 추측이 된다.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하시면서 정말 맛있는 식해가 완성이 되었고 부모님은 매주 할머니께 병문안을 가셨다. 그때쯤 어머니께서는 내 도시락 반찬으로 식해를 싸주셨는데 네온 주황빛이 도는 듯한 밝은 붉은빛이 밥알밥알과 가는 무채를 타고 윤기 있게 도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쉽게 먹을 수 없는 반찬이고 내가 너무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 반찬이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았는데, 직설적인 친구가 악의 없이 음식물 쓰레기 같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으니 무만이라도 조금 먹어보라고 얘기하다 며칠 지나니 그 친구조차도 매워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께서는 횟대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자미가 아닌 횟대로 담아주셨는데, 그때쯤엔 나도 삭힌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냉장 냉동 시설이 부족하니 바다 가까운 곳에서 그로 가까운 내륙 근처까지 생선을 오래 먹기 위해 염장하여 삭혀서 먹던 음식이었겠지만 이제는 밥알과 무가 맛있어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께서도 나이가 점점 드셔서 식해를 담기가 어려우시니 리뷰를 열심히 찾아 사 먹어보았는데 맛있긴 했으나 무와 밥알, 생선 삭힌 특유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시원하고 새콤한 단맛이 아닌 인위적인 단맛이 느껴져 아쉬움이 있었다.
자꾸 사라져 가는 것이 그리운 나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배워야 하는데 배워야 하는데 하며 시간이 가고 있다. 이런 음식은 내가 직접 하면서 어머니께 여쭤보지 않으면 디테일한 것들은 챙기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제 때 여쭤보지 않으면 맛있게 하기가 어렵다. 또, 이제는 날씨가 계속 변하니 재료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산지의 위치가 점차 변할 것만 같아 그때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조급함도 있다.
처음 가 본 아바이마을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식해를 통한 뒤늦은 이심전심, 그리고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