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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소원

의원면직 혹은 명예퇴직

by 이정원

"나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 앞으로 딱 20년만 더 일하고 그만둘래."


아이들이 꿈나라 여행을 떠난 밤. 아내가 갑자기 퇴직 이야기를 꺼냈다. 매일같이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철부지 피터팬 같다며 늘 핀잔을 주는 아내인데. 의외였다. 당찬 포부가 어떤 연유로 생기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물어봤다.


"노부부들이 같이 배낭여행 다니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 딱 20년만 하고 프리랜서로 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좀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긴 20년 후면 아이들 모두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독립할 시기이니. 아내와 함께 직장에 얽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충분한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런데 왜 하필 20년 후에 그만두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더 일찍 그만둘 수도, 더 늦게 그만둘 수도 있는데.


"너무 나이 들어서 그만두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어렵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힘들잖아."


맞는 말이다. 늦게 그만두면 그만큼 안정적인 직장에 더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있지만 인생에 있어 확실한 이벤트, 노화와 죽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건강이든 경제적 능력이든 최적의 시기는 없는 것 같다.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만 있을 뿐.


작년부터 한창 러닝에 빠진 아내를 보면서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일도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놓고 조금 일찍 은퇴해서 함께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내와 함께 마라톤도 뛰고, 여행도 다니고.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물론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 관리도 잘해야 할 것이며, 경제적인 기반도 잘 마련해 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이들을 잘 키우는 데도 힘써야 할 것이고. 부지런히 사는 게 먼저다.


아내의 한 마디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아내의 퇴직을 꿈꾸게 한 오붓한 노부부는 어디서 만났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아, 러닝머신 뛸 때 가상현실 있잖아, 거기서 나오더라고."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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