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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17. 2022

따스한 봄날, 추억의 길에 새로운 이야기를 새기다

실레이야기길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안마산이 온통 연둣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일 년 동안 자리를 비웠던 일터에서 맞이한, 잠시 잊고 지냈던 분주한 나날, 그리고 우리 가족도 피해 가지 못한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자가격리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창 밖으로 펼쳐진 화사한 봄의 풍경과 따스한 햇살은 지난밤 등이 가려워 불편하다며 막 단잠에 빠져들려던 아빠를 깨워 한동안 잠들지 못하게 했고, 새벽같이 일어나 거실에 나가자며 아빠 손을 잡아끌던 해솔이 덕분에 비몽사몽으로 아침을 맞은 나를 이불속에서 끌어내는 마법을 선보였다. 


  오랜만에 금병산 자락에 있는 실레이야기길을 찾았다. 연애 시절부터 남들 다 가는 핫 플레이스들은 제쳐두고 맑은 공기, 좋은 풍경을 찾아 산과 들로 향하던 아재, 아지매 감성 가득한 우리 부부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는 곳. 사실 해솔이가 세상에 나오고 난 뒤에도 추억에 젖어 정겨운 길을 걸을 생각에 이곳을 두어 번 찾았지만, 휴식년으로 인해 산책로가 통제된 탓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어야 했었다.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익숙했던 길을 걸을 생각에 우리 부부의 마음도 설레었고, 아마 어린이 집에서 숲을 오가며 등산 실력을 키웠을 해솔이도 엄마 아빠 앞에서 본격적으로 날다람쥐 같은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을 것이다.



  시냇물이 흐르는 한적한 농로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드니 연둣빛 배경과 간간이 수 놓인 진달래의 분홍빛과 개나리의 노란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찍 일어나 피곤했을 해솔이도 손에 작은 곰 인형과 물통, 소중한 쌀과자를 꼭 쥐고 씩씩하게 엄마 아빠 곁에서 봄기운을 만끽하며 걸었다. 길가에 핀 갖가지 야생화,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떨어진 나뭇잎, 움푹 파인 웅덩이에 길게 놓여 있는 도롱뇽 알을 보며 연신 "이게 뭐야?"라고 묻는 해솔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힘이라도 들세라 "아빠가 안아줄까?"라고 물어보면 "싫어요!" 하며 앞서 걷던 엄마를 향해 줄행랑을 치던 해솔이는 본격적으로 맞이한 오르막의 초입에서 만난 나무 계단도 엄마 손, 아빠 손을 번갈아 잡으며 끝까지 올라갔다. 혹여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스스로 해 보겠다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는 딸내미의 모습을 보니 아이의 몸도, 마음도 많이 자랐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모든 코스를 다 돌지 못하고 중간쯤 마을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지만 셋이 함께 걸은 봄날의 실레이야기길에서 본 풍경들, 아내와 해솔이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추억이 새겨진 길에 아이와의 새로운 추억을 아로새긴 봄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과 소중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시간이 주는 크나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평범했지만 특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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