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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01. 2022

말린 가오리는 무섭게 생겼어

낮말도 딸내미가 듣고, 밤말도 딸내미가 듣는다

  "말린 가오리는 무섭게 생겼어."


  "살아있는 가오리는 귀엽고, 말린 가오리는 무서워."


  거실에 앉아 아빠 엄마와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던 해솔이의 입에서 뜬금없는 가오리 이야기가 나왔다. 난데없는 가오리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던 우리 부부의 머릿속에 불현듯 지난 주말 가족 여행으로 찾은 강릉 경포 아쿠아리움의 수조 속 가오리들이 생각났다. 


  수면과 가까운 곳에서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헤엄치던 가오리들, 흡사 사람 웃는 표정과 비슷한 비공과 입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말린 가오리 사진의 이빨이 드러난 무시무시한 표정이 떠올라 아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쟤네가 살아있을 때는 저렇게 귀여운 모습인데, 말린 모습은 무섭게 생겼더라."


  생후 30개월이 되어 가면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가득해진 아이는 아빠 엄마의 모든 말과 행동을 궁금해하고, 비슷하게 흉내 내려고 한다. 아빠 엄마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세상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걱정거리가 먹구름처럼 머리를 가득 채운다. 


  처가 식구들과 함께 한 가족 여행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해솔이가 무슨 일이 자기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는지 "아 씨"라고 한 적이 었었다. 모두들 얘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어머님께서 "해솔이가 아마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친구들이 다양하게 감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봐서 저럴 거야."라고 하시며, 이제는 해솔이도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해솔이 입에서 튀어나온 "아 씨" 낯설지 않았다. 아마, 해솔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범인이 나일 거라 확신했다. 왜냐하면 "아 씨" 내가 서둘러 운전을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니까. 잘못은 잘못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해솔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함께 차를 타게 된 후로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다며, 조심하겠다며 마음먹었지만, 아직도 출근을 하며 아이를 등원시킬 때 신호가 원활하지 않거나, 갑자기 끼어드는 차들이 있으면 무심코 튀어나오는 말을 아이가 어느새 배워 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롱초롱한 눈,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이건 뭐야?"라고 묻고, 아빠, 엄마가 했던 말들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따라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사랑스러움, 대견함, 그리고 이만큼 커서 아빠 엄마와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등 오만가지 좋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만, 걱정 또한 그에 못지않다. 아이에게 풍부한 언어 자극을 주고, 오감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놓치고 있었던 나의 일상 속 그릇된 모습들….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마주한 나의 감추고 싶은 모습들을 보며 부모가 가진 막중한 책임에 대해, 그리고 진정한 좋은 본보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낮말도 딸내미가 듣고, 밤말도 딸내미가 듣는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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