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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10. 2022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내 아이 속은 모른다.

  "여보, 해솔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해솔이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 봐. 오늘 글을 좀 많이 적으셨네?"


   퇴근을 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우리 세 가족이 상봉한 자리에서 해솔이 어린이집 가방을 열어 수첩의 '어린이집의 소식란'을 확인한 아내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평소 두 쪽, 길어야 세 쪽에 걸쳐 매일 해솔이의 담임선생님께서 적어주시는 해솔이의 어린이집에서의 모습,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다섯 쪽에 걸쳐 글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잔디밭에 개미들이 해솔이 신발 위로 올라오자 해솔이는 개미 싫다며 짜증을 내는군요. 그래서 개미가 없는 곳에서 놀자고 이야기해주었어요."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닥에 드러누워 떼쓰며 우는 해솔이입니다. 또래보다 조금 떼가 많은 것 같아요"


  "… 그동안 해솔이가 ○○이를 잘 챙기며 놀더니, 요즘은 해솔이가 ○○이에게 책을 못 보게 뺏는다던지 손가락을 무는 경우가 가끔 보입니다. … ○○이에게 때리거나 물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런 모습이 보이면 계속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수첩에 적힌 글을 읽으면서 어린이집에서 보인 생각지도 못했던 해솔이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이란 아이가 다친 곳이나, 마음의 상처가 생기지 않았을까 많이 걱정이 되었다. ○○이의 부모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셨을까? 아셨다면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셨을까? 그리고 우리 부부를 얼마나 원망하셨을까? 


  심각한 엄마 아빠의 표정이 불편했는지, 아니면 어두침침한 지하 주차장에서 한동안 넋을 놓고 수첩만 바라보는 엄마 아빠가 답답했는지 우리의 마음을 알리 없는 해솔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평소 세 돌이 지나기 전에는 훈육을 해도 크게 소용이 없다며 잔소리꾼 남편의 잦은 훈육을 경계하던 아내도 오늘은 아이에게 엄하게 이야기했고, 평소와 달리 바깥 산책, 마트 구경 없이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올해 2학년 담임, 학교에서 생활, 학교폭력 담당 업무를 맡으면서 학급 아이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는 말이 "다른 친구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해서도 안 되고,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었는데, 정작 내 아이가 다른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속상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써 심란한 마음을 잊으려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솜씨를 발휘해 토마토 파스타와 돈가스로 푸짐한 저녁상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도, 아이와 저녁 목욕 겸 물놀이도 함께 하고, 잠자기 전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 '남 가르치기보다 내 아이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와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아직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아이, 오은영 박사의 책에서 읽은 말처럼 '아이에게는 혼낼 것은 없고, 가르칠 것만 있다.'라는 말이 있듯 놀라운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갖고 아이에게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그리고,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또래 아이들이 주로 보이는 발달상의 과정인가, 아니면 타고난 성향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알게 모르게 내가 부모로서 보여주는 좋지 못한 행동을 학습한 결과인가….


  혼란스러운 밤이다. 세상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가득한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아이, 담임선생님께는 또래보다 떼가 많은 아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는 점. 입장을 바꾸어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 온 아이들도 누군가에게는 세상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가득한 보석 같은 아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니 지금까지 나의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는지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성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내 아이에게 우리 반 아이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고 또 말하던 그 다른 이들과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어떻게 잘 알려줘야 할지 고심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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