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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11. 2022

화락회(和樂會)

화평하고 즐거움 가득한 모임

  오늘 직원회의가 끝난 후 교무실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카페인 보충을 하려고 하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성난 얼굴의 두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오셨다. 아버지 뻘의 선배 교사와 내가 우리 학교에 발령받던 해 가을 신규 발령을 받은 후배 교사의 언쟁, 발단은 직원회의 때 잠깐 언급되었던 화락회 운영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메시지와 전화 통화가 오가는 가운데 생긴 약간의 오해였다. 두 선후배 교사의 중간쯤에 위치한 아직도 어색한 직책인 부장으로서, 그리고 올해 우리 학교 화락회의 회장으로서 오후의 나른함을 깨우는 진한 커피 한 잔 후 느긋하게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고자 했던 나의 오후 시간은 다툼이 생긴 두 선생님을 중재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느라 나중으로 미루게 되었다.


  학교에서 화락회는 말 그대로 '화평하고 즐거움 가득한 모임'이라는 의미로 직원들의 친목 도모와 화합을 위한 모임으로 친목회라고도 하는데, 화락회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신규 시절, 발령받은 지 6개월 만에 등 떠밀려 맡은 화락회장 자리는 나에게 참으로 버거운 자리였다. 학교 내에 있는 비공식 조직이지만 자발적이지는 않은, 공식 조직의 복사판인 화락회에서 직종, 경력, 개인적 성향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구성원들의 화합을 도모하기에 갓 군대를 전역하고 교직에 입문한 새내기 교사는 학교장만큼의 강력한 권한도, 선배 교사들만큼의 풍부한 경험도 없었다.


  늘 불만 가득한 구성원들의 원성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첫 학교에서 회장을 맡은 2년 동안 화락회 행사를 기획하는 일은 그 어떤 업무보다도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화락회 행사에서 회장이라는 감투 때문에 물밀듯이 몰려오는 술잔의 파도 속에서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간 적이 없을 정도로 과중했던 음주도 퇴근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2년의 시간 동안 화락회에 대한 나의 감정은 형식적으로는 비공식 조직이지만 실상은 공식 조직의 축소판인 이 모임에 대한 불만을 석사논문 주제로 삼았을 정도로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한 올해 다시 회장을 맡게 되었다. 화락회에는 흥미도, 관심도 없는 나이지만 원래 회장을 맡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신규인 후배 교사가 화락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관리자 분들의 의견이 있었기에 흔쾌히 맡기로 했다. 화락회 회장을 맡게 됨으로써 받게 될 스트레스는 불 보듯 뻔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신규 시절 등 떠밀려 맡은 화락회 회장의 경험으로 교직의 첫 단추부터 경험했던 조직과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후배 교사가 경험하게 하는 것이 싫었다. 아직 모든 면이 부족하지만, 술을 끊은 지금은 과거와 달리 회식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맨 정신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흉내는 낼 수 있으니까 화락회장이라는 자리가 예전만큼은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화락회라는 조직의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의무 아닌 의무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어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가 않다. 


  배움이든 친목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도 그렇고, 화락회도 마찬가지다. 자발성이 결여된 전시행정, 보여주기 식 배움, 친목은 조직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명칭과는 달리 집단 내 구성원들의 갈등, 그리고 누군가의 스트레스를 만들어 낼 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로 약 2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화락회의 올해 모습 어떠할지 살펴보는 것은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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