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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31. 2022

아빠랑 잘 거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선택받은 자의 특권

  "해솔아, 오늘 엄마랑 잘까?"


  "엄마 싫어요, 아빠랑 잘 거야."


   '오늘은 비가 내리니 운동은 못 하겠고, 아까 읽다 만 책이나 읽어야겠다.'라고 아내가 해솔이를 재우는 동안 하고 싶던 일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해솔이의 밤잠 메이트가 되었다. 아빠, 엄마의 제주 여행으로 떨어져 있는 기간 동안 해솔이와 함께 자는 영광을 아내와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기대했었는데… 여전히 선택받은 자의 영광은 내가 온전히 누리게 되었다. 영광도 이런 영광이 없다.


  해솔이의 확고한 취향(?)이 생기기 전 해솔이의 밤잠 재우는 시간은 당번에게는 아이가 잠에 빠져드는 순간까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투정을 받아 주거나, 잠들 듯 잠들 듯 잠들지 않으며 뒤척이는 모습을 인내심을 갖고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반면, 당번이 아닌 이에게는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치열했던 그날의 육아 흔적을 치워 두고 운동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평소에 미뤄 두었던 드라마를 숨죽여 보던 일과 육아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시간이었다. 하긴, 요즘은 해솔이의 자는 시간이 늦어진 바람에 당번이 아닌 이도 운동을 하기엔 늦은 시간이고,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볼 체력적 여유가 없긴 하다만… 그래도 매일같이 아이의 밤잠 메이트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창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아빠를 들볶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아이 곁에 누워 아이가 꿈나라로 떠나기 전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쉽지 않다. 먼저, 숨 죽이고 누워 있는 동안 아직 채 소화되지 않은 저녁 식사가 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을 온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다. 방 청소를 위해 부단히 움직이거나, 아파트 단지 주변을 한 바퀴 걷고 들어오면 참 상쾌할 텐데… 내가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소화기관들도 주인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있을 테니 제대로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


  다음으로 힘든 점은 아이와 함께 누워 있는 동안 나도 잠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아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능력 중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 등만 대면 어떤 환경에서든 쉽사리 잠이 드는 마법 같은 능력은 아이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아빠를 귀찮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소화기관이 숨죽이고 있느라 속이 편안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아빠가 먼저 잠들고, 딸내미는 아빠의 잠든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잠들고, 아내는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기 전 저녁에 해야 할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들어가던 남편을 조심스럽게 깨우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육아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일상은 그 시간이 짧기도 짧거니와 정신이 맑지도 않으니 늘 아쉬움만 가득 남긴다.


  마지막으로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아이 곁으로 호출되어 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해솔이 곁에서 자는 날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아내가 해솔이 곁에서 자는 날엔 어김없이 "엄마랑 자기 싫어, 아빠랑 잘 거야"라는 말, 아이의 울음소리가 모닝콜처럼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잠이 채 덜 깬 채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주섬주섬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찾으려 하면, 아내가 이 상황을 해결할 선택받은 자를 데리러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해솔이와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한다. 그나마 요즘 해솔이가 이전처럼 자정이나 새벽 1-2시경 깨는 일이 없이 통잠을 자는 덕분에 자던 도중에 비몽사몽으로 호출되는 불상사가 없는 점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원치 않는 시간에 잠들어야 하고, 원하는 시간에는 잠에서 깨어야 하는 선택받은 자의 임무는 참 막중하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늘 엄마랑 놀겠다, 아빠랑 자기 싫다 투정을 부리는 다른 집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좋아하고, 아빠와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집 아이의 아빠는 틀림없이 선택받은 자인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앞으로 해솔이가 커 가면서 지금처럼 아빠와 늘 곁에 함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아빠와 함께 있겠다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애틋하지만, 아빠도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온전히 아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작은 희망은 늘 마음에 품게 된다.


  입에 물고 있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불안해하고 울음을 그치지 않던 공갈 젖꼭지, 일명 쪽쪽이와도 결국 작별했고, 아직 작은 실수를 하긴 하지만 기저귀와도 작별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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