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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02. 2022

눈치게임

눈치가 없으면 손발이 고생한다

  바야흐로 휴가철, 우리 부부는 8월의 첫날이자 월요일이었던 오늘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작전 회의를 했고 눈독 들이고 있던 에스프레소 머신도 살 겸 하남 스타필드를 찾기로 결정했다. 춘천에서 거리가 멀지 않고, 피서를 떠나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므로 차가 막힐 일도 없을 것이고, 평일이라 사람들도 많이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익숙한 곳이니까…. 결론적으로 완벽할 것 같았던 오늘의 스타필드 나들이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지금까지 스타필드를 찾았던 날들 중 최악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말이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눈치가 없으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이다. 하남 스타필드에 가기 전까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럿 있었다. 소설로 치면 복선이라고 해야 할까….


  첫 번째 복선은 해솔이의 반응이었다. 평소 같으면 스타필드에 가자고 했을 때 나와 아내가 나갈 채비를 갖추기 전에 잔뜩 들뜬 모습으로 옷도 입고, 양말도 신고, 신발도 신고 온 집안을 돌아다녔을 텐데… 오늘은 어째 영 시큰둥한 것이 평소와는 달랐다.


"해솔아 얼른 옷 입어야지 스타필드 가는데?"


"안 가. 집에 있을 거야."


  평소와는 다른 해솔이의 모습이 아침 일찍부터 아빠 엄마와 방 안에서 몸 쓰는 놀이를 많이 해서 피곤한 탓이라고 넘겨짚고 출발을 강행한 것이 오늘의 첫 번째 실수였다.


  두 번째 복선은 한 눈에도 정체되어 보이던 고속도로 상황이었다. 남춘천 IC를 향해 가던 길, 멀리 보이는 교량에 차들이 더디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서울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었다.


"월요일에 서울로 가는 차들이 막힐 리가 없는데?"


"부분 부분 잠깐 막히는 게 아닐까? 설마 하남까지 내내 막히겠어?"


  우리는 차들이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에 남춘천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곧 느릿느릿 거북이의 행렬에 합류했다. 광판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난 바람에 한참을 가는 둥 마는 둥 하다 강촌 인근에서 차들은 다시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역시 일시적인 정체였음에 틀림없다고, 월요일부터 막힐 리가 없다고 확신한 나는 강촌 IC에서 춘천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눈치 없이 서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남양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시작된 거북이의 행렬에 합류했고, 그 행렬은 행선지인 하남 스타필드까지 이어졌다.


만차라니...

  우리의 예상과 달리 하남 스타필드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애버랜드에서 사파리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차들은 긴 줄을 서서 주차장으로 밀려 들어갔고, 주차장도 이미 자리를 잡은 차들로 가득하여 한참을 빙빙 돌다 겨우 주차를 하고 주린 배를 붙잡고 3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점심 먹을 자리는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평소 주말에 찾았을 때보다 자리 찾기 눈치게임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나마 주말에는 자리 찾기가 힘들지 몇몇 인기 있는 가게를 제외하고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먹고 싶은 음식 주문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은 흔치 않았는데 오늘은 주문할 수 있는 메뉴의 선택폭이 적었다. 심지어 밀려 있는 주문 탓에 주문받기를 포기한 가게도 있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자리에 앉아 생각지도 못했던 메뉴로 주린 배를 채운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1층에 있는 전자 기기 매장으로 향했다. 힘들게 왔으니 커피 머신들을  둘러보고  좋은 결과물을 얻어 가겠다는 마음으로 둘러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생각보다 많이 높은 가격에 목표했던 커피 머신은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스타필드에 머물렀던 3시간은 해솔이의 끊임없는 칭얼거림과 금방이라도 앉아 잠들 것처럼 피곤해 보이는, 넋을 놓고 움직이는 좀비 부부의 모습으로 요약할  있을  같다. 큰맘 먹고 향한 하남 스타필드 원정의 결과물은 카페에서 정신없이 마신 커피  ,  사면 해솔이의 발길을 돌릴  없을  같다는 핑계로(사실은 나의 사심이 가득 담긴) 새로이 우리 식구가  고래상어 쿠션, 그리고 큼지막한 피자  판으로 요약되었다.


상어야 이제 집에 가자


  

  춘천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해솔이는 가끔 자신이 상어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좋아하는 (고래)상어를 손에 넣어 즐겁게 마무리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오늘의 스타필드 원정. 앞으로 해솔이와 놀러 갈 때면 해솔이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는 점과 눈앞에 다가오는 복선들을 빠르게 알아채고 대처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값진 시간이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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