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빨대를 문 고양이
"아빠, '야옹이 빨대 쪽' 주세요."
씻고 나와 기분이 좋아진 딸내미가 무언가를 찾았다. '야옹이 빨대 쪽'이라니… 우리 집에 고양이 모양의 빨대가 있었나 싶어 부엌 이곳저곳을 뒤졌다. 아무리 뒤져도 부엌에서는 고양이 모양의 빨대를 찾을 수 없다. 분명 내 기억에도 없다.
"우리 집에 야옹이 빨대가 있었니?"
"그거 있잖아요 '야옹이 빨대 쪽' 아빠가 보여준 거."
"아빠는 그런 빨대 준 기억이 없는데?"
"책방에 있었잖아요."
'책방에 무슨 빨대가 있다는 거야'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빠가 답답했는지 딸내미는 쪼르르 책방으로 뛰어갔다. 재빨리 불을 켜 주려고 따라가는데 어두웠던 방에 '삐리릭' 불이 켜졌다. 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불 켜주세요'를 연발하던 딸내미는 어느새 불을 혼자 켰다 껐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자랐다. 아빠 엄마의 차체가 낮은 탓에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지만, 그래도 집에서는 나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씩씩한 다섯 살 누나가 된 딸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에 들어선 딸은 의자 위에 올라가 책상 쪽을 부산하게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집어 들고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외쳤다.
"거봐 여기 있잖아."
딸내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 '야옹이 빨대 쪽'을 보고서는 포복절도할 뻔했다. 아 맞다! 저게 '야옹이 빨대 쪽'이었지!
'야옹이 빨대 쪽'은 나의 연필깎이이다. 언제였던가 딸내미가 쪼르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무릎으로 올라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살펴보고, 이것저것 집었다 내려놨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유레카' 하는 표정으로 가장 관심 있어하던 물건 중 하나가 연필깎이였다. 연필깎이를 보자마자 "고양이같이 생겼어."라고 이야기하며 웃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해솔아, 그런데 왜 얘 이름이 '야옹이 빨대 쪽'이야?"
"귀가 쫑긋해서 고양이처럼 생겼잖아."
"그럼 아래에 있는 동그란 구멍은 뭐야?"
"그건 입이야."
"그럼 뒤에 달린 저건 뭐고?"
"음 이건 꼬리고, 저건 똥구멍이야."
엉뚱한 딸내미의 대답에 제시간에 딸내미를 재워보겠다며 잔뜩 수면 분위기를 조성해 둔 적막한 거실에 웃음꽃이 잔뜩 피었다. 아빠가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모습을 보고 빨대를 물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린 아이. 필터 없는 순수한 아이의 눈과 세상을 겪으며 형형색색의 필터를 끼운 어른의 눈은 서로 다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한없이 순수한, 바라보는 곳마다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아이의 마법의 눈이 언제까지 효력을 발휘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야옹이 빨대 쪽'처럼 사소한 물건만 보고도 재미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깔깔 웃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면 상상의 세계가 점차 현실의 세계로 바뀌어가는 것이 우리가 처한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스꽝스러운 생각, 엉뚱한 상상을 하며 늘 웃음꽃을 피우며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긴다.
'해솔아, 아빠랑 색연필로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연필로 글씨 연습도 열심히 하자. 그래야 야옹이가 빨대로 맛있는 우유를 많이 쪽쪽 빨아먹을 수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