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난하지만 부유한 마을
<믿음이 머무는 동네>
카르멘타운은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은 마을이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실망부터 할 것이다. 길은 제대로 포장되지 않았고, 오래된 벽돌 담장은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다.
돌담 위로 덩굴이 자라나 마을 길을 뒤덮고 있었고, 이따금 그 덩굴 틈새에서 작은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가로등은 높지 않았고, 불빛도 밝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직접 창문마다 작은 등을 켰다. 빛은 도시처럼 넘치지 않았지만, 그 어둠은 사람들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빛이 적을수록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길에는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겼다. 그 웅덩이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신발을 적시곤 했지만, 누구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옆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불편함을 공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성당이 있었다. 탑은 낮았지만, 종은 높이 걸려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종소리는 마을 전체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새소리가 들린다고 고개를 드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종소리도 그저 하루의 일부였다.
이 마을에서는 누군가가 바쁘게 걷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두르지 않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와 마주치면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넸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오히려 짧기에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미사 가세요?”
“네. 오늘 성가대라서요.”
“성가대요? 그럼 오늘 미사가 더 기다려지겠네요.”
“아이구, 기대는 마세요. 그냥 작은 목소리로 부를 뿐이에요.”
그들은 이런 대화를 하고 나면 멈춰 있던 발걸음을 천천히 다시 옮겼다. 서로에게 인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어색한 일이었고,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길목에서는 누군가 아픈 이웃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때 아프셨던 어르신, 좀 어떠세요?”
“아, 기도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고 계세요.”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성당에서도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기도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건네는 인사이자 약속이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은 곧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걱정이 담긴 안부 인사 끝에는 언제나 기도가 따라붙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 역시 이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며 기도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성모상 앞에서 아이들은 손을 모으고, 때로는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오늘 미사에서 신부님이 뭐라고 하셨어?”
“사랑하라고 하셨어.”
“누구를?”
“모두.”
“모두? 나쁜 사람도?”
“응. 신부님이 하느님이 사랑하시니까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어.”
잠시 침묵. 아이들은 그 말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작게 말했다.
“어려워도… 사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성모상 앞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기도를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 기도할 줄 알았다. 기도가 필요한 순간을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언제 기도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기도하는 법이 따로 있지 않았다. 그저 마음을 모아 조용히 하느님께 이야기하는 것. 그들은 기도를 부탁받지 않아도 기도했고, 기도를 강요받지 않아도 기도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삶이었다.
카르멘타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삶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거나, 강조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기도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서 마음을 하느님께 맡기는 일.
그것이 기도였다.
삶이 고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이라 여겼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힘든 게 꼭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 덕분에 기도하게 되니까요.”
다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도할 기회를 주신 거겠죠.”
그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웃의 얼굴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걱정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부유함보다 소중한 재산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좋을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렵고 힘들 때 사랑하는 것은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날도 마을에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소리를 따라 걸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누가 나 대신 기도해줄까.”
지나가던 부부는 그 소리를 들었고,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희가 기도할게요.”
할머니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용한 저녁 햇살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종소리는 점점 깊어졌고, 마을은 다시 기도로 물들어갔다. 그 종소리는 어쩌면 하느님께로 가는 초대장 같은 소리일지도 몰랐다. 그 누구도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