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형, 나도 가도 돼?
믿음이 머무는 동네
그 주 일요일 아침. 이안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방 안에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지만, 그는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마치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곱씹고 있는 사람처럼, 침묵 속에서 짧은 숨을 반복했다. 오래 생각해온 일이었다. 혼자만 다녀오던 성당에, 드디어 동생을 데려가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그 결심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에린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기도’라는 행위가 동생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에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던 그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도 가도 돼?”
형이 어색한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 에린은 더 묻지 않았고, 그날 밤부터 이안은 오늘이 오기를 기다려왔다. 몸을 일으킨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에린은 이미 옷을 갈아입은 채 신발을 신으려고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 형을 바라본 동생은 아무 말 없이 작게 웃었고, 이안은 그 미소에 이끌리듯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며 그는 짧게 말했다.
“가자.”
에린은 말없이 따라섰다. 두 형제는 그날 아침, 함께 성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마을을 벗어나 카르멘타운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을 지나고, 허름한 담벼락과 낡은 가게들을 지나며, 두 형제는 별다른 대화 없이 걸었다. 에린은 처음 가보는 길이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형의 옆을 조용히 따라가며 자신만의 속도로 걸었다.
이안은 동생의 걸음이 빨라지거나 뒤처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은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이 길을 동생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시간 대화가 사라진 상태였기에, 이렇게 나란히 걸으며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어색하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이안은 동생의 손등을 스치는 햇살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지?”
에린은 잠시 형을 올려다보더니, 짧게 “응.” 하고 대답했다. 그 한 마디가 충분했다. 대답을 들은 이안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묵묵히 걸었고, 에린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두 형제는 오래도록 이어진 흙길을 조용히 걸으며 카르멘타운 성당을 향해 나아갔다.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에린은 걸음을 멈추고 그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회색 벽돌로 지어진 작은 성당. 낡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 모습은 에린에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이안은 그런 동생의 시선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가 성당이야.”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에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형의 옆으로 걸어왔다. 문 앞에 서자 이안은 에린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무서워할 거 없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돼.”
그 말에 에린은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쥐었고, 두 형제는 함께 나무문을 밀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에린은 멈춰 섰다. 어두운 듯하면서도 촛불로 은은히 밝혀진 공간. 높은 천장 아래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 기도 중인 사람들의 조용한 숨소리. 그 모든 것이 에린에게는 생전 처음 겪는 낯선 풍경이었다. 그는 형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이안은 그 손에 전해지는 긴장감을 느끼고 옆으로 시선을 돌려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그냥 조용히 보고 있어도 돼.”
그 말이 신호였는지, 에린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은 에린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빈 자리에 함께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묵묵히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고해소의 문이 열리고 신부님이 나오셨다. 미사를 준비하러 가시려는 순간, 신부님의 시선이 성당 구석에 나란히 앉은 두 형제에게 닿았다. 신부님은 이안에게서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고, 그 곁에 앉은 작은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장을 마친 후, 신부님은 잠시 입을 열지 않고 두 형제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이안, 그리고…”
신부님은 동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안은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 작게 대답했다.
“제 동생이에요. 에린이요.”
그 말에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에린을 바라보았다.
“그래, 에린. 너도 같이 왔구나. 잘 왔어.”
신부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에린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고, 신부님은 두 형제를 둘러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형이랑 같이 와줬구나. 아주 잘했어. 둘이 같이 기도하는 건 아주 좋은 일이란다.”
그 말에 에린은 미묘하게 얼굴을 붉혔고, 이안은 이유 모를 뿌듯함에 잠깐 시선을 내렸다. 신부님은 이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동생을 데려와 줘서 고맙다, 이안.”
그리고 에린에게도 조용히 손을 얹었다.
“에린, 오늘 이곳에 와줘서 고맙다. 그냥 편하게 앉아서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돼. 하느님은 너희들이 꼭 기도를 잘하지 않아도, 그냥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도하는 거야.”
그 말에 에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신부님은 두 아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남긴 채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짧은 인사만으로도 두 형제의 긴장은 눈에 띄게 풀어졌고, 이안과 에린은 나란히 앉아 서로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은 채 미사를 기다렸다.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낯선 이들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성당 안에 앉아 있었다.
곧 미사가 시작되자 성당 안에는 오르간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안과 에린은 나란히 앉은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고, 신부님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에린은 긴장한 듯 형의 손을 살짝 더 세게 잡았다. 이안은 동생의 손가락이 자신보다 작고 가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며, 괜히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에린은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켜진 촛불들, 천장에서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 조용히 고개를 숙인 신자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에린은 형을 흘끔 바라보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순간 형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괜히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안 역시 동생의 손을 잡은 채 미사가 시작되는 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도 처음 이 공간에 왔을 때 얼마나 낯설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에, 동생이 침묵 속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이해되었다.
그는 동생을 이곳으로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안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당 안은 여전히 촛불과 기도로 가득했다. 그리고 두 형제는 나란히, 그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이안과 에린은 신자들이 하나둘 성당을 빠져나가는 흐름을 따라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당 문을 나서는 동안에도 에린은 아무 말이 없었고, 이안 역시 동생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마당으로 나오자 햇살이 부드럽게 두 사람을 감싸며 내리쬐었고, 그 속에서 에린은 고개를 살짝 들고 성당을 다시 바라보았다. 마당 끝자락까지 걸어가던 중, 에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조용해서 좋았어.”
그 말은 무척 소박했고 특별한 의미가 담긴 문장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그 순간 괜히 가슴안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 짧은 말이 동생이 오늘 그 미사 안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설명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말. 에린은 더는 아무 말 없이 걸었고, 이안 역시 침묵 속에서 동생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은 그 조용한 길을 함께 걸어 집으로 향했다.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조용한 마음의 무게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이안은 평소처럼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에린 역시 아무 말 없이 따라 들어왔지만, 이안은 동생을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며 가만히 침대에 앉았다.
책상 서랍에서 묵주를 꺼낼 때도, 동생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묵주가 손안에서 사각거리며 소리를 낼 때, 결국 에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 또 할 거야?”
조용한 물음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들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은 말없이 형의 곁으로 다가와 침대 옆에 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형의 손에 들린 묵주를 바라보던 에린은 이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해도 돼?”
그 말에 이안은 잠시 동생을 바라보았다. 망설임 끝에 손에 들고 있던 묵주를 조심스럽게 동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에린은 작은 손으로 그 묵주를 가만히 감싸 쥐었고, 이안은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한 알 잡고… 주님의 기도 먼저. 그 다음 알에서는 성모송. 그렇게… 천천히 하면 돼.”
에린은 눈을 깜빡이며 형을 바라보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작은 방 안에서 묵주를 손에 쥔 채 마주 앉았다. 방 안은 조용했고, 어둠 속에서 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형은 동생을 위해, 동생은 형을 따라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작은 알맹이가 손끝에서 굴러가며 이어지는 그 기도 속에서, 이안은 문득 깨닫고 있었다. 지금 이 조용한 시간 안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마음을 아주 조용히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두 형제의 기도는 하루하루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따로 약속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밤이 찾아오면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약속이라도 있는 듯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작은 방 안에서 마주 앉았다.
이안이 방 불을 끄고 스탠드 하나만을 켜두면, 에린은 조심스레 형의 곁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스탠드 아래 퍼지는 미약한 불빛 속에서 둘의 얼굴은 반쯤 어둠에 잠겼지만, 그 조용한 공간만큼은 온전히 두 사람만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단 하나뿐인 묵주를 나눠쥐고 기도했다. 형은 묵주의 윗부분을, 동생은 아래쪽을 잡은 채 서로 번갈아 알을 굴렸다. 어색하고 서툰 그 손끝의 움직임 속에서도 두 사람은 묵주알 하나하나를 넘기는 동안 자신들만의 조용한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며칠이 지났을 무렵, 에린은 조용히 묵주를 형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형, 나도 갖고 싶어.”
그 말에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성당에서 묵주 하나를 더 받아왔다. 작고 단순한 나무 알맹이로 엮인 묵주였다. 하지만 에린은 그것을 손에 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도 받은 듯 아주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 표면을 어루만졌다. 그날 밤, 에린은 자신의 묵주를 손끝에 올려두고 형을 따라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기도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기도 시간은 말없이 이어졌다. 처음 며칠 동안 에린은 형이 시작할 때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낮고 또렷한 기도의 첫마디를 들을 때마다 에린은 무릎 위로 포개놓은 손을 조심스레 움켜쥐곤 했다.
형의 기도가 천천히 이어질수록 에린의 시선은 묵주를 굴리는 형의 손끝을 따라갔고, 형이 알을 하나 굴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움직이는 버릇이 생겼다.
주님의 기도가 끝나고 형이 성모송을 시작하자 에린은 더욱 작게 숨을 죽이며 입술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입밖으로 소리가 나지 않았고, 몇 번 따라 하다 중간에 멈추기를 반복했다. 몇 단을 지나면서 에린은 결국 작은 소리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중간중간 틀리기도 했고 멈추기도 했지만, 이안은 에린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틀리면 다시 하고, 멈추면 기다려주는 것. 그게 형이 동생과 기도하는 방식이었다. 에린이 멈추면 이안도 함께 기도를 멈췄고, 에린이 다시 시작하면 그때서야 나머지를 따라 이어갔다.
그 조용한 반복 속에서 에린은 점차 스스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고, 어느새 두 사람의 방 안은 익숙한 기도 소리로 조용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굴러가는 묵주알이 서로를 닮아가듯 두 사람의 손끝은 점차 하나의 리듬처럼 움직였다. 침묵과 어둠으로 가득했던 그 방 안은 더 이상 고요하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기도 소리와 묵주알이 구르는 작은 소리가, 밤의 정적을 서서히 따뜻한 리듬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형은 동생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형답게 묵주를 쥔 손끝에서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생 역시 그 손끝을 닮아가고 있었다.
에린은 처음과 달리 묵주알을 굴리는 손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고,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문도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러웠다. 성모송을 반복할 때면 형을 힐끗 바라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살피기도 했지만, 이안은 동생의 시선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평소처럼 묵주를 굴리며 기도를 이어갔다.
마치 틀려도 괜찮다는 듯,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듯 동생을 기다려주는 그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에린에게 작은 안심이 되었다. 에린은 틀렸다는 걸 깨달으면 스스로 중단하고 다시 시작했고, 이안은 그런 동생의 옆에서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다시 함께 시작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그 동작은 두 형제 사이에 단순한 기도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묵주알이 손끝에서 익숙하게 흘러가고, 성모송이 작은 방 안에 퍼질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에린의 표정은 처음의 어색함을 벗고, 작은 목소리로 기도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형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동생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밤마다 두 사람이 무릎을 꿇는 그 시간이, 이제는 하루의 마지막처럼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안은 그런 매일 밤의 기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손끝에서 익숙해진 묵주의 감촉이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문 때문이 아니라, 그 곁에 동생이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에린과 함께 무릎을 꿇고 손끝에서 굴러가는 묵주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안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실감했다. 과거에는 집 안의 침묵이 차갑고 무거운 공기처럼 자신을 눌러왔다면, 이제는 그 침묵조차 누군가와 나누는 시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기도 소리가 가득 찬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한 말이 오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그 조용한 공기 속에서 이안은 안도하고 있었다. 묵주알이 서로 다른 두 손끝에서 차분히 굴러가며 내는 작은 소음, 그리고 기도 중간중간 들려오는 에린의 숨소리와 형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 있다는 증거로 들렸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은 채 기도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조용한 시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가운데가 따뜻해지는 것을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일요일이 반복될수록 이안의 부모는 알 수 없는 불안을 품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그저 아이들이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매주 아침마다 두 아이가 나란히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이 너무도 규칙적이고, 또 너무도 비밀스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이안과 에린은 서로 눈빛만 주고받은 채 가방을 챙겼고, 어디 가느냐는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이 반복될수록 아버지는 신문을 펼친 채 종이장을 넘기다가도 손끝을 멈추곤 했다. 엄마 역시 머그잔을 입에 대고 있다가 가만히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고 눈을 돌리곤 했다. 처음엔 무심한 듯 넘겼던 이 작은 이상함이 점점 두 사람의 마음을 눌러오고 있었다.
이안의 아버지는 결국 그 불안을 말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아이들이 나간 뒤 식은 토스트를 바라보던 그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쟤네들, 대체 요즘 어디 가는 거야.”
그 말은 마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그저 궁금하다는 듯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거실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아이들의 발걸음이 매번 일정하게 반복될수록 마음 한편에서 이상한 감정이 자라나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온 뒤,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요즘 매주 일요일마다 어디 가는 거니?”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질문 뒤로 감춰진 불안은 두 아이 모두 알아챌 수 있었다.
이안은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동생 에린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지만, 형은 그 시선을 피한 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에린이 대신 대답할까 걱정되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물음은 허공에 머문 채 사라졌고, 그 침묵 속에서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부모는 달라졌다. 엄마는 예전보다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에 민감해졌고,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신문을 넘기면서도 눈길을 문쪽으로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은 없었지만, 서로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결국, 부모는 아무 말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어느 일요일 아침,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몰래 따라가기로 했다.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아버지는 코트를 챙겼고 엄마는 지갑을 들고 나섰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의심과 불안이 짙게 깔린 눈빛 속에서, 그들은 아이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점점 커지는 불안을 안고 아이들을 따라 카르멘타운으로 들어섰다. 두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걸었고, 그 뒤를 부모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쫓아갔다. 아버지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담배를 물었지만, 정작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엄마는 걷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이 낯선 동네까지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난하고 오래된 골목들, 무너져가는 벽과 삐걱대는 철문, 조용한 동네를 지나는 그 발걸음들 위로 아침 햇살만이 무심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부모는 마침내 아이들이 멈춘 곳을 보게 되었다. 작은 성당이었다. 회색 벽돌로 지어진 그 성당 앞에서 이안과 에린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로 마주 보았다. 아버지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고, 엄마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이들이 들어간 문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문을 밀고, 아이들이 향한 그곳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선 부모는 그 안에서 마주한 광경 앞에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회색 벽돌 건물 안은 의외로 깊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빛과 벽을 따라 켜진 촛불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앉아 있거나 무릎 꿇은 신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설고 생경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쩐지 그 공간은 무겁지 않았다. 엄마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성당 안을 바라보았고, 아버지는 어색한 듯 뒤를 돌아볼까 하다가 결국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부모가 따라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저 멀리 성당 안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안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에린은 형 옆에 작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작은 등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엄마는 묘한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옷자락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들어선 이 조용한 공간을 조심스럽게 마주하고 있었다.
곧 성당 안에는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공간을 가득 채워오는 그 깊고 울림 있는 선율에 엄마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아버지 역시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둘 다 종교적인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이 공간과 소리, 그리고 촛불이 가득한 풍경이 낯설게만 다가왔다. 그런데도 묘하게 그들은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오히려 성당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채, 묵묵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잠시 뒤, 미사 입장 행렬이 시작되었다. 흰 제의를 입은 복사들이 앞장서고, 그 뒤로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신부님이 먼저 성호경을 하자, 모두는 신부님을 따라 성호경을 긋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동작을 흉내 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채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아이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이 제대 앞에 서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침묵과 기도의 공간 속에서 신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응답 소리와 성가대의 노래가 이어졌고, 그 모든 소리는 두 사람의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울림을 듣고 있었고, 그 울림 안에 서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공간 속에, 자신의 아이들이 조용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묘하게 흔들고 있었다.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이상하게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신부님은 복음을 마친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성당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 잠겼고, 모두가 그 침묵이 깨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신부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먼 나라로 떠난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신부님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깊었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탕자는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야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고, 아무도 곁에 없는 그때… 그는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돌아왔든, 아버지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단상 위에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성당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모든 신자들과 눈을 맞추려는 듯 천천히 움직였다. 구석에서 서 있는 부모의 자리까지 스쳤다.
“탕자는 자신이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종으로라도 받아달라 말하려 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들은 아직도 멀리 있었는데… 그를 보고 먼저 달려가셨습니다.”
신부님은 그 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성당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버지는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그 길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그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 한마디는 낮았지만 무겁게 울려 퍼졌다.
“하느님은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멀리서라도 발걸음을 떼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분께서는 먼저 달려오십니다.”
신부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단했다.
“혹시 우리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하느님께 갈 자격이 없어.’ ‘나는 하느님께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일 거야.’ ‘나는 너무 멀리 왔어. 이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여러분, 오늘 복음이 분명히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 멀리 있는데도, 먼저 달려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 앞에서 손을 움켜쥐었고, 엄마는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신부님은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더 잘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덜 나빠서 사랑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존재하기에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성당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맺었다.
“오늘 혹시라도 마음속에 이렇게 중얼거리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하느님께 갈 수 없어.’ 그때 이렇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한 발을 내디딜 때,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천천히 성당 안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멀지 않습니다.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그분께서는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말이 끝나자 성당 안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쉬었고,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에 가슴이 눌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함께 서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자 성당 안은 고요했다.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신자들은 천천히 일어나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고, 미사는 예정대로 이어졌다. 부모는 성당 구석, 어두운 벽에 기대어 선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모르는 세계가 아이들 앞에 열리고 있다는 느낌만이 막연한 두려움처럼 가슴 한켠에 차올랐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손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공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기도 소리와 오르간 소리 사이에 자신을 묻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은 아직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막연히 알아차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사는 계속되었다. 촛불이 타는 냄새, 오르간 소리, 그 안에서 사람들이 읊조리는 주님의 기도와 기도문들이 어쩐지 낯설게, 그러나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리는 소리로 들렸다. 두 사람은 끝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나자, 부모는 조용히 아이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두 형제는 나란히 선 채 십자가를 향해 기도문을 따라 읊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부모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그 작은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이들이 돌아서는 순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이 몰래 따라왔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그들은, 자신들조차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가 성당을 나설 때까지, 부모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성당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성당 바깥의 햇살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걸어 나오는 발걸음은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걸었고, 엄마는 손끝을 가만히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상한 침묵이 길게 흘렀다.
“…….”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한 번 달싹거릴 뿐이었다. 엄마는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옆에서 느끼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먼저 낮게 말했다.
“저런 곳에서… 저렇게 둘이…”
목소리는 작고 떨렸고, 말 끝이 이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들으며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왜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저 공간이 두렵게만 느껴졌는지.
둘은 그렇게 무겁고 묵직한 침묵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성당에서 멀어질수록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쉬는 듯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은 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두 사람 역시 그날 있었던 일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성당 안에서 들었던 미사곡과 신부의 설교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떠올랐고, 그들은 이유를 모른 채 밤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