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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May 27. 2024

예수님은 없다?

철없는 나의 대학생활

 ' xxx 정치인 병역비리 ' 사건. 그것이 터져버린 것이다. 당시 그 정치인은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두 명의 아들 모두 불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뉴스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당시 고등학생 이상의 나이의 학생에게 비자가 원활히 나오지 않게 되었고, 나 역시 고3이었기 때문에 비자가 나오기가 어려웠다. 
 
 당시 상황으로 통장에 5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자가 보증을 서야 하며, 그렇게 해서 비자가 나왔다 치더라도 2개월에 1번씩 국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스위스 호텔 유학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영어 공부만 하느라고 학교 성적이나 수능 따위를 준비하지도 않았던 상태라서 나는 그냥 일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멍청이가 된 상태로 허무하게 졸업을 했다.

 나는 이런 현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게다가 지원이는 내가 한창 영어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고등학교 3학년초부터 한 건설회사에 취직까지 성공해서 지원이와 나와의 능력차이는 더욱더 벌어져 버렸다.

" 야. 근데 너 왜 관뒀어? 잘 다니던 직장을..."
" 어... 그냥 열심히는 했는데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다른 일을 알아보던 지 하려고. "

 고등학교 졸업 후에 지원이도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게 되었고, 그때 나는 문득 지원이를 붙잡고 말했다.

" 야. 그럼... 우리 군대 갈래? "
" 군대? "
" 응. 동반입대라는 게 있다던데..."

 지원이는 내 말을 듣더니 자기 아버지랑 상의를 하고는 흔쾌히 나랑 동반입대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3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가, 군대까지 같은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했던 해 6월, 지원이와 동반입대를 하게 되었다. 순전히 그 망할 정치인 때문이었다. 그 망할 정치인의 병역비리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이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을 텐데 머리를 빡빡 밀고 군대에 와 있다니 말이다. 

 그로부터 2년 하고도 21일이 지나고 난 후, 나는 지원이와의 동반입대를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내가 제대를 하니까 우리 집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그래도 겉모습으로라도 남편 역할을 해주던 새아빠랑 엄마가 이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술을 먹고 취해서 행패를 부려도 눈 감아주고 그러던 엄마였는데, 내가 군대에 가고 1년 정도 있다가 도저히 묵고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한 것이다. 

 엄마는 다른 것은 다 용서를 해주어도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의 친아빠 하고도 바람 때문에 헤어졌고, 새아빠 하고도 바람 때문에 헤어지게 된 것이다.

" 아들아. 그런데 오늘 굿판에서 봤던 김 선생 있지..? "

 그리고 엄마 옆에는 어느새 다른 남자가 있었다. 엄마의 3번째 남자였다. 새아빠와 헤어지고 난 후, 홀로 되어 있다가 굿판에서 악사로 온 국악사 선생님이었다. 

 제대 후 처음엔 나도 그 선생님에게 도저히 '아빠'라거나 '아버지'라는 소리가 잘 나오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저 '김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뒤늦게 겨우겨우 '아버지'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 아버지는 주로 중화동에서 지낸 것은 아니었다. 본인 집이 따로 있었고, 그저 왔다 갔다 하며 지내는 정도?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중화동 우리 집에서 엄마의 아들이자 남편 역할도 해야 했고, 그리고 무당인 엄마의 불목하니 역할도 맡아해야 했다.

 제대 후 얼마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암만 뒤져봐도 전부 '초대졸'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나 같은 고졸은 잘 구하지도 않을뿐더러 있다 손 치더라도 몸이 힘들거나 '노동'을 요구하는 그런 자리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몇 개월을 백수로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지방 대학들 입시요강에서 '추가모집' 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우연히 3곳을 지원을 했는데 3곳 모두 덜커덕 붙어버린 것이다.

 극동대학교, 배재대학교, 강원도의 이름 모를 대학교, 이렇게 3곳에서 합격 문자가 왔고 대학 진학은 포기했던 나도 엄마도 그 소식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비록 지방대였고, 추가모집에서 합격한 것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내 성적과 실력, 능력에 있어서는 과분한 합격통지인 듯 느껴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 음... 배재대를 가라. "
" 배재대? 대전인데? "
" 응. 엄마가 무당으로서 보면 넌 배재대를 가면 좋을 것 같아. "

 그렇게 나는 엄마의 권유에 따라서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 그런데 여기 기독교 학굔데? "

 사실, 내가 예수님을 접하게 된 것은 배재대에서가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다녔던 서울 오산중학교 역시 개신교를 종교로 하고 있는 학교였고, 배재대 역시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님이 지은 학교라서 채플이라는 수업을 들어야 했다.

" 크큭... 괜찮아. 어때~ 넌 그냥 예배하면서 속으로 동자야~ 이러고만 있어~ "

 예배(채플)를 들어야 한다는 나의 걱정스러운 말에 엄마는 쿨하게 웃으면서 내게 그랬다. 채플 시간에 앞에서 기독교 동아리로 보이는 학생들이 찬양을 하고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예수님'이라는 말이 나올 때 나는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AI로 그린 상상 이미지


" 씨ㅂ 예수? 예수가 어딨어? 예수 좋아하시네. 우리 엄마는 시퍼런 작두 위에서 맨발로 펄쩍펄쩍 뛰는 사람인데. "

 그랬다. 나는 예수님은 없다고, 교회엘 다니는 인간들이 미친 인간들이고 그저 자기 나라의 토속 신앙을 개무시하는 몰상식하고 이기적이며 배타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당시 배재대학교 근처에는 이런 소문이 나 있었다. 

'배재대 다니는 서울출신  학생들을 사귀어라.'

 이런 이상한 소문이 나 있는 이유는, 서울에 사는 부잣집 아들들이 성적이 부족해서 오는 대학교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의 진실성을 뒷받침해주기라도 한 듯이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는 부유하게 기숙사가 아닌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아마도 어른들이 '재성이처럼 착한 애는 없을 거야'라는 평가를 들었던 그 착한 내가 서서히 변모하게 된 시점이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엄마는 너무나 잘 나가는 무당이었고, 어느새 나에게는 돈 백만 원이 우스운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내게 백만 원은 그저 엄마가 손님들에게 몇 마디 말만 하면 손쉽게 벌 수 있는 그런 금액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알바도 하지도 않는 내 카드 값은 늘 3백만 원을 웃돌았고 그 정도는 너무나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을 했다.

 1학년을 마칠 때쯤 나는 경영학과 수업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어 국문과로 전과를 해버렸고, 그 사이 엄마에게는 새로운 제자들이 6명이나 생겼다. 

 역시나 그 6명은 엄마에게 배운 다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엄마의 완벽함을 따라가지 못했고, 또 무서운 엄마 성격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했다. 그 6명 중에 1명은 나보다 7살이나 많은 무녀였는데, 특히나 그 누나는 겁이 많아서 엄마를 잘 따르면서도 무서워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 아들아. 이번 겨울 방학 동안에 네가 같이 지내면서 돌봐줘.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혼자 살아서 뒷바라지해줄 사람이 없어. "

 엄마의 실수였다. 군대까지 다녀온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았던 것일까? 나보다 7살이나 많았다곤 하지만 젊은 남녀를 같이 살게 했던 것이 실수였다.

 왠지 그 누나도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았고, 나 역시 처음엔 그 누나를 여자로 볼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겨울 방학 동안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우려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누나와 같이 지내면서 급속도로 친하게 되었고, 그 친분은 친분을 넘어서게 되면서 하룻밤까지 지내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 누나와 그 누구도 모르게 비밀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엄마가 알면 잘난 자기 아들이 '무당'과 사귄다고 난리를 치면서 쓰러질 것이 뻔했고, 그 누나 역시 무서운 신엄마에게로부터 쫓겨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우리 둘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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