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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May 30. 2024

우리... 도망갈까?

하지 말았어야 할 연애

“자기. 어떡해...? 응? ”

“뭘 어떡해... 내가 도와줄게. 나만 믿고 있으니라니까? ” 


 내가 겨울 방학 동안에 누나네 집에서 사는 동안에 엄마가 누나에게 미션을 내렸다. 굿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누나에게 ‘문서’를 달랑 던져주고는 곧 있을 누나의 진작굿 때에는 누나가 거꾸로 가든 똑바로 가든 직접‘불사거리’라는 하나의 굿거리를 하라고 그런 것이다. 


 안 그래도 소심하고 겁이 많은 누나에게 그런 미션을 주었으니 혼자 난리가 난 것이다. 사실, 엄마는 홀로 있는 누나를 돌보라는 이유도 이유지만, 무속과 관련된 나의 지식은 웬만한 무당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날 누나의 독선생으로 보냈던 것이다. 


“ 이거 뭐야? 새로 샀어? ” 


 누나와 사귀기로 한 날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이 되니 밥상에 새로운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새로운 수저 세트가 있었다. 


“ 자기 것이야. ” 


 보수적인 성격의 엄마의 밑에서 자랐던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그런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나 보다. 어느새 누나가 남자 친구를 위해 내 전용 그릇과 수저 세트를 새로 산 것이다. 


 왠지 그걸 보고 벌써 누나와 부부 사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져서 그저 그냥 좋아서 웃어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누나의 진작굿에서 첫 굿거리를 발표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 누나한테 불사거리 문서 프린트 해서 줘. ” 


 내가 엄마의 굿거리 문서들을 모두 컴퓨터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걸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누나나 다른 제자들에게 함부로 줄 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의 허락 없이 막 줬다가는 엄마는 성인이 된 날 복날 개 패듯이 패버릴 것이 뻔했다. 


 나는 누나에게 불사거리 문서를 건네주고는 말했다. 


“ 누나. 문서 자체를 외우는 것은 내가 도와줄 수 없어. 누난 그건 만 외워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

“ 정말? 응... 알았어. 해볼게. ” 

 그렇게 누나는 내가 내려주는 더 쉬운 미션을 위해 밤낮으로 문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 하... 어려워. 도통 어려운 말도 많고..” 


 누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못했다. 남들보다 훨씬 더 이해력과 암기력이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도 며칠이 더 지났는데 누나에게 더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보다 보다 못해서 결국 내가 또 나섰다. 누나에 대한 교육방식을 조금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무조건 암기보다는 처음에 전체적으로 이해시켜 주기로 했다. 


“ 자, 봐바. 이 문서라는 것에는 구성방식이라는 것이 있어. ”

“ 구성방식? 그게 뭐야? ”

“ 처음엔 이 ‘불사님’이라는 신이 쉽게 말해서 자기가 누군지 소개하는 말로 구성되어 있어. ” 


[천궁 불사 일월 불사님 사해로는 용신불사님 아니시냐….] 


“ 이걸 모두 다 안 해도 상관없어. 하다가 중간에 생각나지 않으면 하지 말아~ 그게 다야. ”

“ 응?? 정말? ”

“ 그래. 정말이야. 그게 다야. 그다음에는 굿하는 사람이 그 굿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냐? 그리고 그 굿을 하느라고 고생했으니까 칭찬을 해줘야지. 그다음에는...” 


 그렇게 누나를 위해서 하나하나 끼고 가르쳐주었다. 내가 그렇게 끼고 가르쳐주니까 어느새 누나의 머릿속에 저절로 문서가 들어가 버렸다. 툭! 하고 치면 나오는 MP3처럼, 달달 외우게 하고는 발걸음을 가르쳐주고, 그 발걸음을 눈감고도 할 수 있을 때쯤 거기에 맞춰서 신복(굿을 할 때 무당들이 입는 신을 상징하는 옷)을 가지고 추는 춤사위법을 끼워 맞췄더니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다. 


“ 자기. 우리도 노래방 가자. 응? ”

“ 웬 노래방? ” 


 지난번에 엄마가 계신 중화동에 다녀오더니 하는 말이다. 엄마가 자신이 굿을 공부할 적에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목청을 틔우기 위해서 하루 종일 노래방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누나는 날이면 날마다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는 것이다. 뭐, 덕분에 나 역시 그때 목청이 틔었는지, 내가 노래를 잘하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누나에게는 문서를 외는 것보다, 춤사위를 예쁘게 추는 것보다, 목청을 틔어야 하는 것보다 더, 더, 더, 심각한 것이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누나의 소심한 성격이었다. 아직 본인의 진작굿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떨려서 안절부절못하는 정도였다.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뒤늦게 느낀 것인데, 그 문제는 내가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 이번 진작굿에서도 떨려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마칠 것이다. 누나의 그 소심함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경험’이다. 많이 해보면 해볼수록 점점 나아질 것이다. 


 내 예상대로 누나의 진작굿에서 누나의 첫 굿 발표는 떨림으로 시작해서 떨림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한탄을 했다. 


“ 괜찮다니까. 잘했다고~ 내가 잘했다고 그러면 진짜 잘한 거야. 날 못 믿는 거야? ”

“ 아... 아니. 믿지... 훌쩍...” 


 누나는 충남의 한 지방에서 살았는데, 나는 겨울 방학이 끝난 이후로도 거의 자취방이 아닌 누나의 집으로 무려 대전에서 왔다 갔다 했다. 우리는 엄마 몰래 비밀연애를 하면서도 서로 정말 부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여전히 엄마의 굿이 많긴 했지만, 예전만 못하긴 했다. 이 나라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살기 편하다고 했던 적이 없던 세상.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손님이 들어오는 곳은 바로 무당집이다.  


 사람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내게 무슨 문제가 있나? 내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찾아오는 것이 바로 무당집이라는 것이다. IMF가 왔을 당시에도 엄마의 신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그렇게 어려울 당시에도 손님이 있었는데, 점점 손님이 줄어들어갔다. 굿이 있는 날이면 나는 대전에서 충남에 있는 누나의 집으로 가서 픽업을 하고 중화동으로 올라갔다. 


 엄마의 다른 신제자들은 거의 다 나가고 누나와 몇몇의 제자 밖에 없던 상황, 저녁에 올라가면 엄마는 2층에서 자고 나와 누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먼저 출발해야 해서 1층 신당에서 잠을 자곤 했다. 


 우리는 늘 겁이 났다. 나와 누나의 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엄마가 아는 날에는 엄마의 반응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예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연애, 그 위험한 연애에 나는 우리의 미래를 뻔히 알고 있었다. 이 누나 역시 신제자로서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비밀 연애 관계도 역시 끝이 나겠지? 


 나는 신당 거실 소파에서, 누나는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했다. 늦은 저녁이라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그리고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시끄럽게 했다. 


“ 우리.... 도망갈래? ” 


 가만히 누워있던 누나가 그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의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뻔했다. 누나의 그 도망가자는 말속에는 힘듦이 있었고, 지침이 있었다.


“ 나 백수야... 나 능력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핑계는 그게 전부였다. 난 평생 엄마가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고, 엄마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지금은 엄마랑 말다툼까지 해서, 그리고 엄마의 그 불같은 성격에 질렸지만 그래도 내 연애 때문에 엄마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무리였다. 아마도 누나도 그렇다는 걸 뻔히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말속에 담긴 깊은 뜻이 무엇인지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나도 누나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


“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

“ 정말? 내가 능력이 없어도? ” 


 그러고 싶었다. 백번이나 천 번이나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누나에게 더 이상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며칠 후, 누나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고, 우리의 비밀 연애도 자연스럽게 끝이 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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