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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Jun 03. 2024

엄마에게 들은 납치당한 이야기

나의 새로운 여자친구

 엄마의 마지막 제자, 그 마지막 제자였던 나의 그녀는 그렇게 나갔다. 엄마가 제자 복이 없는 것은 엄마의 잘못인지 그 어떤 것의 잘못인지 아들인 나로서는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또다시 나뿐이었다. 국악 악사인 새아버지가 계시지만, 무당과 악사 사이에서는 서로의 영역에는 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암묵적인 룰 이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무속에 관해서 하나씩 배우고 관여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나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엄마만큼은 못 하지만 무속이나 굿에 관련한 내 지식은 웬만한 애동제자들보다 더 뛰어났다.


 나 혼자 굿판의 상차림도 가능했고, 굿판이 시작되면 엄마나 다른 무당 선생님들의 보조를 완벽하게 해 드렸다. 


" 어머. 아들이 웬만한 무당들 빰치네. 어쩜 이렇게 잘해? "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내 보조 실력을 칭찬했고 어떤 무당들은 내게 물어보며 배우기까지 했다. 


 굿에 대한 내 관심은 보조를 넘어서 굿판 자체에 참여까지 가능하게 했다. 엄마가 굿을 잘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약한 부분이 장구를 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에는, 여태까지 굿판에서 장구는 엄마 대신 (이혼한 황 씨) 새아빠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엄마가 한 거리를 끝내고, 다른 무당 선생님이 또 다른 거리를 할 차례가 되어 엄마가 장구를 쳐야 하는데, 어느 날부터는 힘든 엄마를 밀어내고 내가 장구채를 잡았다.


 굿에 대한 내 욕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관심은 국악기 피리로 가 있었다. 엄마의 굿판이 열리면 장구를 치면서 내 눈은 언제나 새아버지의 피리 부는 모습에 가 있었다.


" 엄마. 아부지한테 피리 하나만 달라고 그러면 안 돼? "

" 피리? "


 나는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서 새아버지로부터 피리 한 세트를 얻어냈다. 첨엔 너무 힘이 들었다. 피리는 처음에는 '김'이라는 것을 넣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부우' 하고 무려 1분여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전에서도, 서울로 올라와서도 늘 피리 김 넣기를 연습했다. 그리고 마침 엄마의 굿판도 자주 열렸기 때문에 굿판에서 쓰이는 음악을 귀동냥했다. 


 나는 아직도 국악 악보를 볼 줄 모른다. 오로지 귀로 듣고 음을 외워서 부른다. 내 실력으로는 다른 무당집으로 다니기엔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엄마의 굿판에서는 틀리더라도 맘 놓고 부를 수 있었기에 늘 국악 피리 선생님 옆에서 쌍피리로 불러댈 수 있었다.


" 아들아. 너 당분간 정숙이모 좀 도와줘라. 응? "


  정숙이모는 엄마의 손님이었는데 단골이 되어 엄마와는 언니 동생하던 이모였다. 그런데 그 이모가 장사경험도 없이 미아리의 한 대형 카바레에서 매점을 얻었으니 나더러 인수인계를 받고 장사초보인 정숙이모를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고 정숙이모 대신 내가 인수인계를 받아서 정숙이모에게 장사를 천천히 가르쳐 주었다.


 그 매점에서 하는 일은 대충 이랬다. 카바레에 온 여자손님들의 핸드백을 보관해 주고, 담배도 커피도 팔면서 아주 간단한 과자 등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 웨이터들에게 팔면, 그 웨이터들이 자신들의 단골 고객들에게 서비스 안주로 나가도록 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무급으로 도와주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장사가 처음인 정숙이모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는지, 1년이 채 못 가서 엄마의 또 다른 오랜 단골인 일산 이모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그 일산 이모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것도 단연 내 몫이었다. 참, 그 일산 이모는 엄마의 특별한 단골이었다. 엄마가 신내림 받고 나서 엄마에게 첫 번째로 굿을 했던 엄마의 가장 오래된 신도였다. 


 그 이모에게는 딸이 한 명이 있었는데, 그 딸이 나처럼 자기 엄마 대신 인수인계를 받으러 같이 나온 것이다.

 내가 일산 이모의 딸에게 3일 정도 인수인계를 해주는 동안에 우리 두 사람은 무척이나 친해졌고, 어느새 그녀와 나는 사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이번엔 양가 부모님들이 모두 다 알게 된 상태였고 허락도 받은 상태로 연애를 시작했다.


" 사실 난, 걱정이 있어. 네가 잘 알다시피 이모는 엄마가 신내림 받을 때부터 단골이었어. 15년이 넘도록 신도였다고, 만약 니들이 서로 잘못되면 이 15년이 넘는 신도의 관계도 서먹서먹 해질 거야. 그러니까 잘해야 해. "

" 예.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


 우리는 그렇게 양가 부모님 허락 하에 공개 연애를 시작했고, 굿이 있는 날에는 그녀도 함께 가서 도와주는 등 무당의 아들이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윈 전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다툼이나 싸움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다만 서로 맞지 않는 점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서로의 가정 형편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이었다. 누가 들으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라고 묻겠지만, 실상은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부유하게 자라면서 그 씀씀이도 약간 달랐다. 씀씀이 자체가 헤픈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가족의 소비 습관은 무얼 하나 사더라도 비싸고 좋은 것을 사자!라는 반면, 그녀의 집안은 '부유'와는 거리가 먼 가정환경이었다. 늘 돈에 쪼들려야 했고, 그 덕분에 무얼 하나 사더라도 무조건 저렴한 물건이 우선이었다. 


 한 번은, 그녀가 날 준답시고 장갑을 하나 사주었는데 그 장갑은 지하철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며 싸게 파는 사람으로부터 산 장갑이었다. 그런 물건을 사준 그녀 앞에서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맙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런 물건은 돈이 억만금이 있어도 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녀와 맞지 않는 것은 또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가 시집을 가는데, 결혼 선물을 한답시고 전철을 타고 발품을 팔아 겨우 사온 다는 것이 아주 자그마한 5천 원 정도 되는 조화 화분이었다. 


" 그걸로 되겠어? "

" 응?? 이게 어때서..? "


 그녀는 도통 뭐가 잘못되었다는 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나 같으면 베스트 프렌드가 결혼을 해서 집들이를 한다고 하면 부부끼리 오붓하게 먹으라며 괜찮은 와인을 사준다던가, 부부 속옷 세트를 사준다던가 그래도 그럴법한 선물을 할 텐데 겨우 사준다는 게 5천 원짜리 조화 화분을 사주는 것이다.


" 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네 친구 남편이라면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할 것 같아...."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사귀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는데 그 한 마디로 대판 싸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여느 커플들이면 한 두 번씩 있는 연례행사 같은 정도였다.


 웬만하면 나도 그녀도 서로 다르게 살아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의 그런 점을 이해해 주기로 하고 잘 지냈다. 


 그녀와 공개적으로 사귄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사 자격증 취득까지 마쳤다. 


 무당이 되고 난 후, 방송국 등에서 수많은 출연 요청이 들어왔지만 엄마는 '무당이 방송에서 뜨면, 반드시 방송에서 죽는다.'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 거부를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고 엄마의 손님은 옛 IMF때보다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엄마는 그런 엄마의 신조를 깨버리고 방송 출연을 허락하고 말았다.


방송 장면 캡처


 종편 채널의 '대찬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 역시 대학원에 다닐 적에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거실에 누워서 가볍게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 엄마. 근데... 아빠랑 어떻게 만났어? "

" 응?? 왜 갑자기? "

"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어떻게 만났길래 날 낳았나 싶어서..."


 그렇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엄마와 아빠는 내가 정확히 7-8살 때 일산이 신도시가 되기 이전에 사글셋방에서 살 적에 결혼식을 했다. 


 아마도 돈이 없었고, 그리고 결혼식을 할 여건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 먼저 가지고 난 다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 음... 예전에 엄마네는 벽제에서 살았는데 그때 주위에 부대 하나가 있었어. 너희 아빠는 그 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이었어. "

" 군인?? "


 이어진 엄마의 말로는 이랬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논에 일을 하러 가려고 집을 나서는 이른 아침이었다고 한다.


" 숙아! 퍼뜩 인나서 청소 쫌 해라!! 밭에 댕겨 온데이! "

" 하.... 알았어. "


 그렇게 집에 엄마만 놔두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논으로 향하는데, 한참 잘 가고 있다가 자전거 옆으로 육공 트럭이 지나가게 되었고 그 트럭에 자전거가 부딪혀 사고가 난 것이었다. 다행히 아주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동안 병원에서 입원해 있느라 논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아이고! 참말로 큰 일 났네!! "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 온통 논일 걱정뿐이었다고 했다. 마침 논에 모를 내야 할 시기인데 병상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걱정을 듣고 엄마는 분통을 터뜨리면서 다짜고짜 부대로 찾아갔다고 했다.


" 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 안 되기는! 책임자 나오라고 하라니까요!! 당신들 때문에 우리 논에 모를 못 심잖아요!! 아!! 몰라!! 책임자 나올 때까지 나 이러고 여기 앉아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 거니까. 알아서 해요. "


 그러고 엄마는 부대 위병소 앞에서 다짜고짜 드러누웠다고 했다. 위병소에서 근무하던 군인들은 어쩔 수 없이 부대에 보고를 했고, 잠시 후 나온 사람은 그 부대의 주임상사였다고 했다. 


 엄마는 그 주임상사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달려들어서 책임지라고 악다구니를 쳤고, 그 주임상사는 엄마의 그 못 말리는 악다구니에 지쳐서 부대 차원에서 모내기 지원을 약속을 겨우 해주었고, 엄마도 그 약속을 단단히 받아내고 나서야 돌아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 정말 부대에서 군인들이 나와서 할아버지의 논에 모내기 지원을 나왔고, 그때 엄마는 몰랐으나 지원을 나온 군인이었던 아빠가 엄마를 처음 보고 엄마에게 푹 빠져버렸다고 했다.


" 그때 부대에서 망원경 같은 것으로 쭈욱 지켜봤다 봐. 그것도 제대할 때까지. 3년 동안. "


 그 당시에는 군인들이 주변 민가에서 종종 밥도 얻어먹고 막걸리나 이런 것도 몰래몰래 얻어먹고 그런 시절이었나 보다. 군인이었던 아빠가 종종 엄마의 집으로 와서 밥도, 막걸리도 얻어먹으면서 엄마에게 자신의 얼굴 도장을 찍어 친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제대를 하고 어느 날, 아빠가 다시 엄마의 집으로 찾아와 엄마를 택시에 태워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고 했다.


 그 당시 엄마와 아빠는 꽤나 친했던 민가 처녀와 군부대 장병이었으므로 별 의심 없이, 어디서 맛있는 걸 사주려나보다 하고 따라나섰다고 했다.


" 아저씨! 어디 가는 거예요?? 왜 이렇게 멀리 가요!! "

" 그냥 나만 믿고 가자. "


방송 장면 캡처


 엄마는 아빠가 자기를 그 길로 택시에 태운 상태로 전라도 시골까지 데리고 내려갔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가 그 택시 기사인 사촌동생에게 도움을 받아서 둘이 짝짝꿍을 맞춰서 일을 벌인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전라도 한 지방까지 도착을 했고, 아빠는 다짜고짜 할머니께 자기랑 결혼할 여자라고 소개를 했고, 엄마는 그 상태에서 무려 1주일 가까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동네 어딘가로 갈 줄 알고 무일푼으로 나왔고, 게다가 그때에는 핸드폰은커녕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엄마는 계속 도망갈 기회를 기다렸고, 어느 날 할머니가 장판 밑에 돈을 숨기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걸 몰래 훔쳐서 겨우 겨우 도망을 쳐 나왔다고 했다.


 엄마의 집에서는 발칵 뒤집혀 난리가 났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상태였다. 

" 그래서 할아버지한테는 뭐라고 했어? "

" 그때 하도 겁이 나서 그냥 친구집에 있다가 왔다고 거짓말했어. "

" 엥??? 왜?? "

" 사실 대로 말하면, 너희 외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빡빡 밀고 뒤지게 팼을 거야. 무척이나 엄한 아버지였거든...."


 그렇게 엄마는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고 대략 1-2개월이 흘렀을 무렵, 엄마는 지난 1주일간 동안의 일 때문에 덜커덕 임신을 한 것이다. 


 엄만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다방에서 그저 제일 친한 친구에게 울면서 사실을 털어놓고 그 젊은 나이에 자신의 신세 한탄을 했다. 


" 흐흐흐흑...미자야. 나 어떡해?? 아부지가 알면...난리 날거야. 응? "

" 하이고..."


 그렇게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울고 있노라니까, 어디선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 익숙한 목소리에 이끌려서 뒤편으로 가보니 아빠랑 어떤 한 남성이 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다른 남성이 누군지는 관심 밖이었고, 오로지 아빠만 보였다고 했다. 내가 아는 지금 엄마의 성격으로는 그렇게 아빠를 만났으면, 그 아빠는 반쯤은 초주검이 되어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의 엄마는 다짜고짜 아빠를 보고 아빠의 어깨를 치며 뛸 듯이 기쁘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 아저씨!!! "

" 어??? 수... 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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