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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Jun 06. 2024

내가 태어난 이야기

갓난아기를 볼모로 잡은 시어머니


" 아저씨!! 나 임신했어요!! 어쩔 거예요!! "

 엄마는 아빠를 보자마자 대뜸 자신이 임신했노라고 소리를 쳤다. 옆에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오로지 엄마의 시선에는 아빠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빠의 반응이 엄마의 예상과는 빗나갔다고 했다. 아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크게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정말? 와하하하하하!! 됐어! 이제 됐다!! 이야~!! "
" 예?? "

 아빠의 그런 반응에 엄마가 오히려 당황했고, 벙찐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빠는 그 길로 엄마와 양가에 허락을 받았다.

 그때, 아빠네는 시골에서 서울 구파발로 와 있던 상태였는데 결혼식도 할 처지가 못 돼서 식도 올리지도 않은 채로 혼인 신고만 하고 같이 살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가 시집을 가보니, 양 시부모님에 시누이가 2명이나 있었던 집이었고,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빠는 트럭에 소금을 싣고 장사를 해서 근근이 먹고살던 처지라고 했다.

 아빠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엄마가 며느리랍시고 들어왔으니 할머니의 반김을 받을 리는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할머니는 아빠와 엄마와의 결혼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엄마의 시집살이는 고되었다고 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넉넉한 집안 환경의 그것도 막내딸이어서 귀염을 받던 엄마가 이런 집안에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를 해야 하니, 그건 보나 마나 여느 드라마에서 보던 고된 생활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며느리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던 시아버지가 계셔서 버틸 수 있었다는데, 당시 할아버지는 그 동네 통장까지 맡아 일을 하고 계셨고 엄마는 집안 일과 함께 그 통장 업무까지 도맡게 되었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임신을 했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임신을 하니까 먹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아졌고, 하루하루를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버텼다고 했다. 살아간 것이 아니라 버텨냈다.

 엄마의 그런 옛이야기 중에서 그 당시 할머니의 못된 그 성질머리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엄마가 너~무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꾀를 내어 통장의 일을 꼭 점심시간에 다녔다고 했다.

" 아이고 통장 며느리 왔네~  밥 먹고 가!"

 그렇게 배가 불러있는 상태에서 점심시간에 다니면 이웃들이 항상 밥을 먹고 가라고 하니까. 그렇게 이웃집에서 얻어먹고 버텨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가래떡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다. 그건 며칠이나 지나도록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근근이 버텨내고 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장판 밑에 돈을 보관하는 것을 보고 할머니 몰래 장판 밑의 오백 원을 몰래 꺼내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가래떡을 사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할머니가 알게 된 것이다.

" 아이고!! 내가 며느리가 아니라 도둑년 하고 같이 살고 있네. "

 그렇게 할머니는 엄마를 보고 도둑년이라며 난리가 났고 아빠가 퇴근 후에 겨우겨우 달래 가며 용서를 빌고 나서야 끝이 났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못된 성질머리는 그 이후로 계속되었다.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아빠는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배 고파하는 엄마를 위해서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아빠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방 창문 밖에 군고구마 봉지를 매달아 놓고 들어왔다.

" 저 왔어요. "
" 응. 고생했다. "
" 오셨어요?? "

 당시 엄마와 아빠가 지내던 방에는 TV가 있었다. 아빠가 들어오니 할머니는 그 방에서 TV를 보고 계셨다고 했다. 아빠는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시선은 창문가에 가 있었다. 날이 추워서 군고구마가 식을까 봐, 얼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신혼부부의 방에서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건너가지 않고 버티고 앉아서 계시고 건너가지 않으셨다고 했다.

 군고구마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신혼부부의 방에서 그놈의 TV가 뭔지 그걸 보느라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할머니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저 자기 아들이 여자와 꽁냥꽁냥 하는 것 자체가 싫고 방해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내가 알던 할머니의 성격으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

" 하~~ 암.... 이제 졸리네. 너희들도 그만 불 끄고 자거라. "
" 네. 건너가세요. "
" 주무세요. 어머니. "

 그러고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것을 기어코 보고 건너가셨고, 아빠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창문을 열어서 군고구마 봉지에서 군고구마를 꺼내 확인했더니, 그 군고구마는 이미 식다 못해서 꽝꽝 얼어서 딱딱한 돌덩이 같이 변해버렸던 사건도 있었다고 했다.

 그 못된 송아지 같은 할머니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엄마의 말로는 정말 기가 막힌 사건을 들었다.

 때는 해가 바뀌고 봄이 오는 시절, 드디어 내가 태어나게 되었고, 아빠와 엄마는 그토록 기다리던 나를 얻었다고 했다.

" 그런데 있지? 그때 그 시절에 엄마는 널 산파집에서 낳았다? "
" 엥?? 80년대 중반인데 산파집에서?? "
" 늬 할머니가 얼마나 독하던지...."

 나는 8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그 당시에 산파집에서 애를 낳는 문화는 거의 없어져 가는 문화 중에 하나였고, 대부분은 산부인과에서 애를 낳았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엄마를 산부인과에 보내는 돈이 아까워서 동네 산파집에서 낳게 한 것이다.

 어찌 됐던 그 산파집에서 엄마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날 낳았다고 했다. 그 와중에 웃긴 사실은, 엄마가 날 낳던 도중에 아빠를 불렀다.

" 재성아빠. 나 담배 한 대만 딱 피우면 애가 쑥! 하고 나올 것 같어. "
" 어??? 어... 어!! 알았어. 어머니!! 잠깐 나가세요. "
" 에휴!! "

 그래도 할머니는 다행스럽게도 며느리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서만큼은 별 큰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엄마가 입덧을 너무 심하게 했는데, 그 입덧을 가라앉히려고 담배를 배웠고, 날 낳는 중간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피우면서 애를 낳았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날 낳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산파 할머니가 아무리 아기의 엉덩이를 때려도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엄마가 깨서 주위를 보니 아기는 이미 없었고 엄마는 순간 짐작했다고 했다.

" 주... 죽었어요? "

 그러자 산파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애가 안 울어서 병원에 갔어. "
" 네...?? 벼.. 병원이요? "

 그렇게 나는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인큐베이터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고, 할머니의 못된 만행은 그 이후로도 더욱 심해졌다.

 내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되는 날, 외할머니가 산후조리를 하는 엄마를 위해서 두터운 이불이랑 미역국에 넣어 먹으라고 소고기를 사가지고 직접 오셨다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오셨다가 돌아가시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자신의 밥상에 맹물에 끓인 미역국만 올라왔다고 했다.

" 어.. 어머니. 저희 엄마가 사 온 소고기 있을 텐데..."
" 산모가 고기 함부로 먹으면 자궁에 염증이 낀다!! 알지도 못하면서... 점순이 도시락 반찬으로 장조림 했다! "
" 예??? "

 할머니는 외할머니가 사 온 소고기로 장조림을 해서 막내 고모의 고등학교 도시락 반찬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 엄마!! 너무 한 거 아녜요?? 어떻게 산모를 이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
" 뭐??? 아이고!! 이게 아주 계집년에 미쳐가지고 부모도 못 알아보고!!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얘가 원래 이러지 않았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시집오고 나서부터 얘가 이렇게 변한 거야!!! "
" 엄마!!! "

 그렇게 아빠는 그로부터 엄마와 나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무능력한 우리 아빠에게 구파발에서 벽제까지 갈만한 돈이 없었던 것이다.

" 재성아빠. 가만있어봐. "
" 아... 어쩌게? "

 엄마는 할아버지 대신 통장일을 하면서 동네에 언니 동생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그들은 엄마가 얼마나 독하게 시집살이를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엄마가 동네 아는 언니로부터 차비를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그 길로 벽제에 살던 외할아버지댁으로 갔다고 했다. 그날은 날 낳은 지 삼칠일째가 되던 날이라고 했다.

 아빠는 그나마 하던 소금장사 마저 때려치우고, 취직을 하기 위해서 매일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엄마는 그제야 산후조리 다운 산후조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외할머니의 몫이었다. 외할머니는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뜯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그 당시 5천 원을 일당으로 받으면 그 돈으로 우유를 사고 나면 이틀도 못 가서 뚝딱 해치워 없어졌다고 했다.

" 너는 외할머니 공을 잊으면 안 돼. 널 키운 건 다 외할머니 공이야. 알았지? "
"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한 번만 더 하면 백번이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게 세뇌를 시키듯 이런 말을 해왔다.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내 친할머니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었다.

" 하이고...느그 할마이가 얼~~ 마나 독하든지. 우리 동네 사람들이 느그 할마이한테 학을 뗐다 학을 떼었어! "
" 왜?? 무슨 일 있었는데? "

 엄마와 아빠가 외할아버지댁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고 했다. 그때 할머니가 벽제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화가 나서 씩씩대면서 자기 아들을 내놓으라며 악다구니를 쳤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치는 것도 모자라 마당에 있던 물건들을 부숴가며 난리를 쳤다고 했다.

 그 막무가내 할머니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라도 있었으면 아빠가 말렸을 것인데, 아빠는 그날도 취직을 한답시고 밖으로 나가있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분이 안 풀렸는지, 할머니가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빽빽 울어대던 날 데리고 나와서는 옆구리에 갓난아기를 끌어안고 다른 손에는 뜨거운 물을 들고 나에게 부어버린다며 난리를 쳤다고 했다. 외할머니로부터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너무나도 충격을 먹었다.

" 저... 정말?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할매? "
" 그때, 언제 왔는지 뒤에서 느그 아빠가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뜨거운 물을 들고 있는 느그 할머니 손을 탁! 하고 쳐버린 거야. 그것 때문에 느그 할머니는 손을 데이고 순간적으로 널 놓치고 말았어. "

 그렇게 할머니가 날 놓치고 말아서 순간적으로 엄마와 외할머니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소리를 쳤고, 아빠가 순간적으로 떨어지는 날 받아내었다고 했다.

" 자, 재성이 데리고 방에 들어가. "
" 으어어 엉.... 재성아.... 흐흐흐흐흑..."

 그렇게 손을 덴 할머니는 병원에 갔고,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소주를 먹으며 양가의 화해모드로 들어갔고, 그제야 할머니의 그 악행은 멈춰졌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나도 충격을 먹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막장 드라마가 내 인생에서, 아니 엄마의 인생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아빠는 그 이후로 가까스로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고, 일산의 단칸방 월세집으로 분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랬던 막장 스토리는 엄마의 인생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내 여자친구가 1000일을 가까이 사귀고 있었을 무렵, 엄마는 '대찬인생' 프로그램에 이어서 다른 방송에도 연 이어 출연을 하게 되면서 또다시 너무나 바빠졌다.

 당시 나와 내 여자친구가 손님 예약을 받았는데, 전화기가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당시 손님들이 엄마에게 점을 한 번 보려면 무려 3개월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또다시 이태원에서처럼 낮에는 점을 보고 밤에는 굿당으로 나가서 굿을 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엄마를 도와주며 엄마로부터 일당을 받듯 하던 내 월 수입은 500만 원을 가볍게 넘겼다. 교육대학원에 진학 후 취득했던 중등교사 자격증은 내겐 더 이상 필요 없는 스펙처럼 여겨졌다. 내가 엄마만 도와줘도 웬만한 선생님들 월급의 2배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으니 그쪽으로 관심이 갔을 리가 없었다. 물론,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학교 선생님이 되기도 어렵기도 했거니와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한 바탕 바쁜 시즌이 갔고, 엄마는 몇 개월 만에 정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 우린 아파트 싫어~ 그냥 빌라 같은 것으로도 족해...."
" 정말? 참 니들은 이상도 하다. 다른 애들은 아파트에 못 가서 안 달인데. 어쩔 수 없지. 뭐. 후회하지 마? "

 그녀와 나는 곧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런 우리들의 신혼집을 사준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정말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작은 신축빌라 하나를 사주었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여자친구의 엄마는 이 집에 채워 넣을 살림살이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혼수였다.

 누군가 그랬다.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혼수나 이런 것에서 많은 커플들이 헤어지게 된다고 말이다. 나는 그걸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 저건 쟤네들이나 그런 거지. 우리 엄마는 자기가 뭘 안 사 왔다고 해서 뭐라고 그럴 사람이 아니야. "

 실제로 그랬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은 여자친구의 엄마가 샀지만, 나머지 살림살이는 거의 대부분 우리 쪽에서 샀다. 그런 것들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그렇게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어이없는 것으로 일어났다.

" 우리 집안을 무시해도 유분수라는 것이 있는 거야. 재성아. "
" 아!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도대체 이해가 안 가네!! "

 엄마는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우리의 결혼을 물릴 듯이 난리를 쳤다.


이전 17화 엄마에게 들은 납치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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