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검정 비닐봉지와 쥐색 장갑

창작 소설 - 곰팡이의 꽃말

by 제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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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 예비 장모님과 다혜가 우리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우리 집은 낮부터 나름대로 분주했다. 그래도 사돈댁네가 온다고 으리으리한 상차림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격식 있게 보이려고 분주했다. 백화점에서 비싼 과일을 사다 놓고,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찻잔을 꺼내놓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띵동.


드디어 초인종이 울리고 다혜와 예비 장모님이 우리집 현관으로 들어왔다. 난 그들을 보고 속으로 ‘설마…. 설마….’ 하는 소리를 계속 되뇌었다. 남의 집에, 아니 사돈집에 처음 오면서 선물은커녕 다혜의 손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백화점 쇼핑백도 아닌, 예쁜 선물 상사도 아니었다.


그 옛날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슈퍼에 가서 “콩나물 5백 원어치 주세요.” 하면 슈퍼집 할머니가 계산대 옆에서 뜯어 콩나물을 담던 그 검정색 비닐봉지였다. 그건 ‘비닐 봉지’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 고급스러워서, ‘봉다리, 비니루’라고 불러야만 마땅한 물건이었다.


나는 다혜의 손을 보고 애써 외면하며 ‘저게 뭔 지는 몰라도 그냥 오기 민망해서 오는 길에 쓰레기라도 주워 담아 왔나?’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빈 손으로 오지.’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씩이나 말하면서, 내 얼굴은 웃어야 했고, 그들을 봤다가 엄마의 눈치를 보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했는 지 모르겠다.


거실 소파에 앉아 어색한 인사가 몇 마디 서로 오고가며, 내 설마는 현실로 다가왔다. 장모님은 다혜가 들고 왔던 그 검정색 비니루인가 비닐 봉지인가를 무릎 위에 올리더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웬수같은 물건이 나왔고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우리 인석이 주려고 지하철에서 하나 샀어. 만져봐. 아주 도톰하니 좋아.”


예비 장모님이 나에게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장갑이었다. 그것도 누가 봐도, 어딜 봐도 지하철에서 불법 판매인이 “자, 단돈 천원에 모십니다. 천 원입니다.” 라면서 악을 쓰면서 팔아대는 그런 장갑이었다. 색깔은 그레이(Grey)색이 아닌 쥐색이었다. 그렇다. 그건 정말 그레이색이 아니다. 분명 쥐색이다. 재질은 이미 보풀이 잔뜩 일어나서 손등을 긁으면 피가 날 것 같은 거친 아크릴이었다.


“오빠, 이거 진짜 득템한 거야. 아저씨가 막 떨이로 파는 거 엄마가 잽싸게 집었어. 겨우겨우 산 거라니까?”


다혜가 옆에서 자기 엄마의 말을 거들며 해맑게도 말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예비 사위 집에 처음 인사 오면서, 지하철에서 파는 천 원짜리 장갑을 ‘득템’이라며 내밀다니, 그건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행동이 ‘흉’이 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무지함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연신 엄마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엄마를 너무 잘 안다. 엄마의 표정은 벌써부터 일그러져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건 여태까지 엄마를 보며 자라왔던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분명 속으로 저들을 ‘시팔 좃팔’하며 욕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질문


상견례 자리에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온 사돈,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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