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야무짐이라는 이름의 비수
창작 소설 - 곰팡이의 꽃말
그래도 나는 예비 장모님과 다혜 때문에 그 문제의 장갑을 내 손에 꼈다. 내 손등을 긁어대는 까칠한 감촉이었다. 마치 장갑 형태로 된 수세미 아이디어 상품 같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냥. 막 끼는 거야. 막 끼고 다니라고 사왔어.”
다혜는 내게 주는 이것을 ‘막 끼는 장갑’이라는 핑계를 대며 해맑게도 웃어보였다. 어쩜 저런 표정이 나오는 지, 아주 정말 징그럽게 예뻐 보였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까 머릿 속으로 엄마가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했다. “인석아. 그래도 ‘예의’라는 것이 있는 거야.”라는 엄마의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계속 웅웅 거렸다. 엄마는 사돈 앞이라고 화도 못 내고, 그저 찻잔만 달그락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고 있었다.
나는 순간 우리 집에서 나지 말아야 할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건 바로 다혜네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코를 찌르던 그 퀴퀴한 곰팡냄새. 그 냄새가 모녀에게 들러붙어서 우리 집까지 따라 들어왔는지 저녁 식사하는 내내 나도 맡았던 이 곰팡내를 엄마도 맡을까 두려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 두 모녀를 내 차로 집 앞까지 모셔다드렸다. 장모님을 먼저 들여보내고 다혜랑 단둘이 차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힘들었지? 엄마 앞에서.”
“아니~. 엄마가 잘 해주시잖아. 날 예뻐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하핫...그래. 엄마가 널 얼마나 예뻐하시는데.”
나는 몇 번이나 다혜에게 장갑 이야기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장갑의 ‘장’ 자도 꺼내보지도 못한 채로 다혜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 예상대로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야! 인석아. 도대체 저게 뭐니? 거지 적선하니? 참네. 사위 될 사람한테 천 원짜리 장갑이라니! 아휴.”
내가 살아온 결과, 우리 엄마는 예의와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경상도 사람이라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긴 하나 사람 자체가 못 되어 먹은 사람까지는 아니고,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기가 세고, 남자들보다 의리 있고, 예의가 있으며 화끈한 사람이다.
그렇게 내게 퍼부어대는 엄마에게 나도 쪽팔려 죽겠지만, 나도 내가 선택한 여자를 부정하는 것은 나 스스로 ‘병신’을 인정하는 꼴이라 필사적으로 방어해야 했다. 그리고 난 이 결혼을 물릴 생각은 단 1%도 하고 있지도 않았다.
난 엄마나, 다른 어른들이 말했던 것 중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살아오면서 엄마의 그 말이 맞았음을 수도 없이 보면서 커왔지만, 나는 다르고, 내 사람은 다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휴. 그냥 막 끼는 장갑이야. 뭐 어때서. 요즘 세상에 다혜 같은 여자애가 어딨어! 다혜가 명품을 휘감고 다니길 해? 그런 덜떨어진 여자들보다 훨씬 낫지 뭐. 검소하고, 생활력 강하고, 얼마나 좋아?”
나는 엄마에게 그런 소리로 쉴드를 치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그건 검소함이 아니라 궁상이고, 생활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몰상식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인정하기 싫은 진짜 진실을 외면한 채로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그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 몇 날 며칠을 엄마에게 구박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와 싸우다시피 하며 그 모녀를 감싸야만 했다. 엄마의 화가 어느 정도 가라 앉았을 때쯤의 일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다혜네 집을 무상으로 들락거리며 때론 저녁도 얻어먹고 가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나는 그날도 다혜네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있었다. 거실은 너무나 좁아터져서 안방에서 상을 놓고 밥을 먹어야 했다. 장모님, 다혜, 그리고 나. 이렇게 3명뿐이었다. 다혜네 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았고 그저 벽에 걸린 낡은 사진으로만 남아 계셨다.
“인석아. 이 고추 하나 먹어봐. 오늘 따와서 아주 맛있어.”
장모님은 밭에서 본인이 기른 각종 채소들을 나에게 자랑하듯 먹어보라고 권했다. 난 장모님 때문에 민들레꽃의 잎사귀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보며 속으로 ‘그래. 그깟 장갑이 뭐라고. 화분이 뭐라고. 사람들은 착하잖아? 그럼 됐지.’ 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나 스스로에게 건 그 최면이 정말 무색해질 만큼 사건은 또 벌어졌다.
그때 TV에서는 한참 뉴스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장모님은 밥을 다 먹고 배가 부르다며 거하게 자세를 잡으며 뉴스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TV에서는 블랙박스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골목길에서 서행하던 차가 보행자의 팔을 사이드미러로 살짝 툭 치고 지나간 것이다. 보행자는 멀쩡히 서서 운전자와 대화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장모님은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더니 이내 혀를 끌끌 차버렸다.
“쯧쯧.”
나는 장모님의 반응을 보고 사고가 나서 안타까워하는 줄 알고 같이 보행자를 걱정했다. 그런데 장모님의 입에서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유. 저 여자가 바보네. 바보야. 저럴 땐 바로 쓰러졌어야지. 저렇게 멀뚱히 서 있으면 어떡해? 바보네. 바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물론, 세상이 그런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런 사람이 하필 내 사람이어야 하느냐? 라는 것이다. 난 내 주변 사람은 그런 이상한 사람은 없길 바랐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이제 가장 가까워질 ‘내 여자’의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니. 솔찬히 충격이었다. 마치 로또 당첨 번호를 하나 차이로 놓친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돈을 뜯어낼 기회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한탄을 내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다혜를 쳐다봤다. ‘내 여자’인 다혜 만큼은 “엄마 무슨 소리야. 안 다친 게 다행이지.” 라고 말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밥을 다 먹고 후식이랍시고 깎은 과일을 주섬 주섬 씹어 먹으며 깔깔 거렸다.
“맞아. 나 같으면 바로 ‘악!!’ 하고 쓰러져서 119 불렀지. 병원 가서 링거 꽂고 한 2주는 드러누워야 합의금으로 한 몇백 나오는데. 그치?”
장모는 그렇게 말을 하는 자신의 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내게 자기 딸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래야지. 역시 내 딸이 야무져. 안 그래?”
그 ‘야무지다’라는 그 단어 하나에 꽂혀버렸다.
작가의 질문
타인의 사고를 보며 쓰러졌어야지라고 말하는 연인의 야무짐을 당신은 사랑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