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3천만원과 스텐 숟가락

창작 소설 - 곰팡이의 꽃말

by 제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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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어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콱! 하고 박혀버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말하는 ‘똑똑함’이란 타인의 불행을 기회로 삼는 것이었고, ‘야무짐’에 양심을 팔아먹은 뻔뻔함이었다.


5천원 짜리 조화 화분이나, 천원 짜리 장갑은 그저 ‘취향’의 차이 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바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가져야 할 ‘인간성’의 문제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장모님의 물음에 “하하. 그러네요.” 라며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야 했다. 내가 만약 여기서 내 본심을 말해버리면, 다혜는 “그냥 농담 한 것 가지고 왜 이리 예민하게 굴어?”라며 반격 할 것이었으니까.


내 등 뒤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뉴스를 보면서 피식거리며 웃고 있는 다혜를 보며, 그 웃는 얼굴이 갑자기 낯이 설고, 기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난 그녀를 보면서 ‘이 여자와 결혼해서 혹시라도 내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내 보험금을 가지고 이렇게 좋아라 할까?’ 하는 오버스러운 상상까지 들었다.


그날 나는 그 집에서 다시 퀴퀴한 곰팡내가 짙게 내 코를 찔렀다. 맑은 공기를 한시바삐 마셔야 했다. 나는 그 좁고 냄새나는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그리고 골목 사이로 자동차가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난 그런 와중에도 맑은 공기를 맛있게 마셔댔다. 뒤를 돌아 그 집구석을 바라보며, 이들의 가난은 지갑이 비어서 생긴 게 아니라, 영혼이 가난해서 생긴 불치의 병이라는 사실을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순간에도 헤어질 생각 같은 끔찍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내 눈을 찔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정말 다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까? 모를 노릇이었다.

“엄마. 저랑 밖에서 외식하실래요?”


드디어 다혜와 결혼식 날짜가 잡혔고, 우리가 살 집도 아파트는 아니지만 신축 빌라로 대출금 없이 구해 놓았다. 이젠 다혜 쪽에서 살림 살이만 들어오면, 다혜와 내가 살아갈 신혼집이 완성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혜 몰래 장모님을 식사를 핑계로 밖으로 불러내었다. 멋들어진 레스토랑에 모시고 가서 식사를 주문하고 속주머니에서 흰색 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장모님쪽으로 스윽 하고 밀었다. 장모님은 그 봉투를 보면서 놀란 토끼눈을 하며 말했다.


“뭐..뭐야?”

“혼수 들어와야 하잖아요. 저는 다혜가 기죽는 거 싫습니다. 남는 건 엄마 용돈 하시구요.”

“아유. 인석아~. 뭘 이런 걸 준비를 했어~.”


나는 다혜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내 여자가 궁상맞은 꼴을 보이기 싫어서 내가 모아온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적금 통장을 깨어 봉투에 3천만 원짜리 수표를 넣어 드렸다. 장모님은 그걸 보면서 내게 면목이 없다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래두... 사위 밖에 없네.”

“하하. 이제 아들이라고 생각하셔요. 엄마.”

“그래. 그래야지. 아들 생겼지. 아들! 아들밖에 없어~”


나는 내가 무슨 드라마 속 재벌 2세라도 되는 줄 알았다. 돈으로 그들의 가난을, 그들의 궁상맞음을, 그들의 자존심을 다림질해서 새것처럼 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의 신혼집에는 서서히 살림살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냉장고나, TV, 침대, 화장대 등등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예단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다혜쪽에서 보낸 예단들이 도착했고, 각종 보자기 꾸러미들이 우리집 거실을 가득 채웠다. 문제는 그 보자기였다. 은은한 비단이나 고급스러운 광목천은 고사하더라도, 최소한 채도가 낮은 단정한 색이어야 했다. 하지만 거실에 놓인 그것들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색이나 분홍색들로 이루어진 나일론 보자기였다. 그 보자기를 보고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엄마는 그래도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보따리들의 매듭을 풀었다. 이상한 마찰음과 함께 풀린 보자기 속 안에 있는 내용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보자기에는 이불이 들어 있었다. 그 이불은 백화점에서나 보던 알레르망 기능성 침구세트도 아니었고, 요즘 혼수 필수품이라고 하는 이브자리 브랜드도 아닌, 생전 처음보는 마크가 박힌 이불이었다.


비닐 포장 안에 갇혀 있던 것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불은 지나칠 정도로 번들거렸다. 엄마의 손이 이불 겉면을 스치자마자 가다렸다는 듯이 ‘타타탁’ 하고 정전기가 튀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석유 냄새가 나고 있는 화학섬유 재질의 이불이었다. 덮고 자면 땀 흡수는커녕 등에 땀띠가 날 것 같은, 마치 재래시장에 있는 아는 언니네 이불 가게에서 산 듯한 이불이었다. 엄마의 표정은 굳어져갔다.


두 번째, 세 번째 보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결혼의 홈런을 알리는 결정타가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반상기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관습적으로 예단에 들어가는 식기가 아니었다. 시어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독이 닿으면 색이 변한다는 은수저, 최소한 묵직하고 기품이 있는 방짜유기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 예의이자 상식으로 알고 있는 엄마는, 그걸 보자 마자 넋을 놓고 말았다.


그 안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은의 자태는커녕, 그윽한 황금빛의 놋되도 없었다. 그저 거실등 불빛에 반사되어 시퍼렇게 번뜩이는 스테인리스였다. 그것도 그냥 스테인리스가 아니었다. 손잡이 부분에 레이저로 조잡하게 각인된 장미꽃 문양이 선명한 수저였다. 그 옛날, 동네 식당이 개업 기념으로 수건 대신 돌리거나,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면 사은품으로 던져주는 그런 수저 세트였다. 엄마는 그걸 보고 기가 막혀서 내게 말했다.


“이게... 뭐니?”


사실, 나도 그런 문화를 몰랐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화가 나서 내게 퍼부어 대는 바람에 그런 혼수, 예단 문화를 알게된 것이다.


“지금 우리 집안을 뭘로 보는 거야? 예단으로 세상천지에 스댕 숟가락을 보내는 집이 어디에 있니? 혼수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 안 해와도 상관없어! 그런데 반상기 세트는 얘기가 다르잖아! 이불이랑 반상기 세트는 기본이야 기본! 무시를 해도 유분수라는 게 있는 거다. 인석아.”


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은수저 그게 뭐라고~” 라고 했다가 된통 욕을 먹고 엄마에게 예단 문화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엄마는 사돈댁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었는데, 스텐 숟가락과 동네 시장에서 파는 듯한 그릇 세트를 보고 난리가 난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상식 자체가 없다고,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화를 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걔네 집 형편 어려운 거 뻔히 알면서, 네가 뒤로 좀 챙겨드리지. 다만 얼마라도 챙겨 줬으면 이런 민망한 것을 보냈겠니?”


엄마가 그 소리를 하는데, 괜히 내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엄마가 내가 장모님한테 3천만 원을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난리가 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보다 봉투를 받아들며 “아들 밖에 없다.”고 눈물 짓던 장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준 3천만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빚을 갚았나? 아니면…. 확실한 건, 내 피 같은 돈이 그들의 ‘야무진’ 셈법 속에서 공중분해 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작가의 질문


3천만 원을 건넸음에도 돌아온 스텐 숟가락, 이것은 경제적 가난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인격의 결함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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