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2만 장의 삭제와 맑은 공기(완결)

창작 소설 - 곰팡이의 꽃말

by 제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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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허우대만 멀쩡했지, 그렇게 생각을 깊게 하라고 해도…. 어휴.”


나도 그렇지,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얇은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봐 왔던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배신감, 억울함, 그리고 엄마에게 쪽팔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고, 평소 정신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자부심을 느껴온 내가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얼마나 억울했는지 “줬어요! 3천만 원이나 줬다고요!”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려는 걸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참았다.


그러나 엄마는 역시 내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평생 나 하나만 바라보고 나를 키워온 장본인으로서 내가 엄마의 표정만 보면 척하면 척하고 알 듯, 엄마 또한 그랬다. 엄마가 내 표정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엄마가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표, 표정이 왜 그래? 줬어? 줬지? 얼마 줬어?”


난 엄마를 속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행위는 곧 긍정이었고, 그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엄마는 계속 화를 내며 내게 따져 물었다. 도대체 얼마를 줬냐고, 내 입에서 “3천”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엄마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듯 광분을 했다.


“세상에... 세상 천지에!! 3처.... 그 돈을 받고도 이따위 쓰레기를 보낸 거야? 그것들이 사람이야? 뭐? 궁상? 그게 궁상이야?? 그것들이 사람이냐고!!”


정말이었다. 그건 가난의 문제가 아니었다. 예비 사위가 준 돈을 인마이포켓하고, 그것도 딸의 결혼식인데, 가장 싼 것으로 때운 그 행동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그것도 평소처럼 뭘 하나 사더라도 무조건 ‘싼 것’을 고집하던 습관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을까? 그 남은 돈을 어떡하려고 그랬을까? 다혜의 비상 자금으로 주려고 했을까? 아니면 자기가 쓰려고 그런 것일까? 온갖 상상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결국 그 사건으로 내 결혼은 파혼으로 결론을 맞이했다. 엄마를 몇 날 며칠을 설득을 해봤으나 엄마에게 돌아오는 말은 한가지였다.


“이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는 거야. 너 평생 그렇게 궁상맞게 살수 있어? 난 너 그렇게 안 키웠어. 잊어!”


내 결혼이 파혼이 되고, 신혼집으로 마련한 집엔 텅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 핸드폰 속의 다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난 2만 장이 넘는 다혜와의 사진들을 차마 삭제할 수 없었다. 사진에는 그녀를 사랑했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돈’과 ‘수준’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바스러졌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나 조차도 오로지 ‘사랑’만으로 그 궁상맞음을 진정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신혼집으로 샀던 집에 내 살림 몇 개 가져다 놓고 독립해서 살기로 하고 따로 나와 살았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횡단보도 접촉 사고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에서 피해자가 차에 부딪혀 넘어지는 장면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저 사람 괜찮을까?”가 아닌, 저걸 보고 “지금이야. 뒷목잡고 드러누워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무의식중에 그들의 반응이 먼저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곧바로 핸드폰에 있는 2만 장이 넘는 사진 폴더를 선택해서 ‘삭제’ 버튼을 눌렀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2만 장의 사진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이 꺼지자, 거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며 나는 문득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그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끼리끼리 살아야 해.'


나는 그 말을 지독한 편견이라 여기며 경멸했었다. 사랑이면 그깟 '급' 따위는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내가 느꼈던 그 반지하 방의 아늑함은, 곰팡냄새를 사람 냄새로 착각했던 나의 후각 마비가 빚어낸 환상일 뿐이었다.


그들과 나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고,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배율이 달랐다. 그들에게 '야무짐'이란 타인의 불행을 기회로 삼는 뻔뻔함이었지만, 나에게 그것은 천박함일 뿐이었다. 그 간극은 3천만 원이라는 돈으로 메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부엌 한구석, 이삿짐 박스 틈에 끼어 있던 그 문제의 '레이저 꽃무늬 스텐 숟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가볍고, 얇고, 조잡했다.


힘주어 구부리자, 숟가락의 목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휘어졌다.


"그래, 이게 맞지."


휘어진 숟가락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쨍그랑' 소리가 났지만, 이번에는 그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진 듯한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다혜는 아마 자신과 똑같이, 접촉 사고가 나면 뒷목 잡고 드러누울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행복할 것이다. 5천 원짜리 조화에 감동하고, 천 원짜리 장갑을 득템이라 부르며 기뻐하는 남자. 서로의 궁상을 '생활력'이라 치켜세워주는 그런 남자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은수저의 무게감을 알고 예의라는 것의 가치를 아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 그것은 속물근성이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른 종(種)의 생물이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였다.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 저 수많은 불빛 아래에는 수만 가지의 삶이 뒤섞여 있겠지만, 물과 기름이 결코 섞일 수 없듯, 나와 그녀의 세계는 애초부터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잘 가라. 너희들끼리."


나는 비로소 편안해진 얼굴로, 텅 빈 거실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곰팡냄새를 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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