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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Apr 29. 2024

내가 겪은 애동제자 무당 엄마

신내림을 받았는데 '어버버'도 못하는 우리 엄마

" 왜 애를 니가 데려가? 재성이가 김씨지 이씨야? "
" 안 돼. 난 재성이 없이는 못 살아. "

 별거를 시작하고 처음엔 외할머니댁으로 보내졌고, 나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친할머니댁으로 다시 보내져 세 번째 전학을 해야 했다. 친할머니는 날 앉혀놓고 늘 세뇌시키듯 말했다.

" 남자는 이 계집 저 계집 끼고 그럴 수 있는 거야~ 재성아. 나쁜 건 그 혁인지 헉인지 하는 그 ㄱ새ㄲ야.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 관두게 하고 재팬뭐인지 하는 그 피라미드 회사에 꼬시지만 않았어도 으이그!! "

 엄마는 별거 중에도 시시 때때마다 친할머니한테 용돈을 보내왔다. 제사면 제사, 그리고 생신 때, 심지어는 의정부에서 김장사가 잘 되자 당시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인천 모래내 시장 노점에 김 기계를 사드리고 김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줬다.

 내 기억으로는 아빠도 피라이마 회사를 관두고 그 시장에서 이것저것 장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모두 집어치우고 다른 구직 활동에 나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서 내가 판단한 우리 아빠는 성실했지만 능력이 없었다. 착했지만 능력이 없었고, 가끔씩 욱하는 성질도 있어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던 그런 캐릭터로 판단했다.

 가끔은 내가 일이 잘 되지 않을 적에는, 나도 그 핏줄을 물려받아서 능력이 없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 엄마는 여자인 몸으로도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것도 그냥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공을 했다.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와 아빠의 삶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토록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었으나, 아빠의 삶은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처참히 내리막을 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게 그런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은 비단 할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빠에게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나에게는 큰 고모와 작은 고모였다. 그 3 남매 중 그래도 가장 잘 배웠다는 고모는 작은 고모였다. 그런데도 그 작은 고모도, 그리고 여태껏 엄마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가 최근에서야 1살 언니가 아닌 본인과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못 된 큰 고모도 역시 나만 보면 이 씨 집안을 욕해댔다.

 물론 나도 지금에 와서도 그 혁이라는 외삼촌을 미워한다. 그 성실했던 아빠를 바람둥이로 만든 장본인이 아닌 가 싶기도 했고, 그 되지도 않는 피라미든지 뭔 지 하는 회사를 차리게 만드는 바람에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고모들이 내게 그렇게 세뇌교육을 해도, 내 머릿속에는 오직 엄마 밖에 없었다. 또 이 씨 집안을 욕을 하는 할머니가 이해가 간 것은 아니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할머니는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 되게 한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의정부로 가기도 전 일이었다. 엄마는 혼자 살면서 할머니 댁으로 날 보게 해달라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엄마가 온지도 몰랐지만, 그날 끝끝내 할머니는 날 만나게 해주지 않았고 엄마는 돌아가면서 김약국에서 수면제를 사다가 집으로 돌아가 왕창 입으로 때려 넣은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김약국에서 그런 몹쓸 약을 팔았다는 것을 알고 당장 그 약국으로 달려가 그 약국을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AI로 만든 가상 이미지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구해준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끝나지 않는 이 씨 집안 욕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나는 엄마가 좋았다. 어릴 적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어보면 그 자리에서는 둘 다 좋다고 했지만, 항상 내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더 좋았다.

" 법원에? 그래... 그래... 알았다. "

 어느 날 할머니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3학년이었던 내 귓가에 분명하게 들려온 두 글자. '법원'이었다. 그때 뭘 안다고 그랬을까? 그 두 글자만으로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 아.... 엄마와 아빠가 진짜로 이혼하는구나. ' 하고 말이다.

" 법원?? 할머니! 그거 엄마 아빠 얘기지?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는 거지!!?? 응?? "

 그러자 할머니는 전화를 끊고 날 달래려고 그랬지만 나는 울음이 터져버려서 내 방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고 잠갔다. 그리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울어버렸다. 아마도 그게 처음인 것 같았다. 내 평생 그렇게 목놓아 울어버린 것이 말이다.

 할머니는 어렵게 방문을 따고 들어와서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재성아. 할머니가 말했지? 남자는 바람도 피울 수 있고 그런 거야. "

 그 말이 어린 내 가슴을 더욱 후벼 파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엄마와 아빠는 나에 대해서 서로 합의를 봤다. '친권'은 아빠가 갖되 '양육권'은 엄마가 갖는 것으로 말이다. 내 기억으로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와서 나랑 잠깐씩 만나고 그랬는데, 그때마다 지겹도록 내게 한 말이 있었다.

" 너는 아빠 닮지 말아라. "

 바로 이 소리였다. 그 소리가 내게는 할머니가 내게 세뇌시키는 그 지겨운 소리보다 더 지겹게 들렸다. 내가 아빠에게 엄마 버리고 왜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했냐는 진솔한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 엄마의 그 욱하는 성격. 그게 싫었어. 처음엔 그 성격을 고쳐보려는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했다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어. "

 나는 아빠의 그 대답을 믿었다. 할머니가 내게 하는 그 세뇌 교육도 구분을 하던 나였는데, 왠지 아빠의 말은 말 그대로 믿었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진짜라고 믿고 싶었나 보다. 아니, 그 말도 안 되는 핑계가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
.
.

 사람들이 많이 하는 크나큰 착각. 신을 받으면 신이 몸에 실려서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줄줄줄 말하며 점을 볼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건 정말 큰 착각이다. 지금의 엄마는 무당들의 세계에서 손꼽는 만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아기 무당이었을 적에는 다른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버버' 소리도 못했다.

 비유를 들어보면 쉽다.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입을 떼고 말을 해보려 해 봤자 '어버버버' 댄다. 그 아이가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걸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아기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면서 성장해 나간다. 성장하면 할수록 생각과 언행이 깊어지고 제대로 된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무당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신내림을 받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갓난아기는 '어버버'라도 소리를 낸다. 하지만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은 손님을 앉혀놓고 아무리 속으로 빌어봤자 '어버버' 소리도 못한다. 무당도 신이 아무리 점을 던져 주어도, 그것이 자기 생각인지 신의 그 무엇인지 구별할 줄 몰라서 점을 못 보는 것이다.

' 하... 동자야... 제발... 뭐라도 말해주렴... 신내림 굿 할 때에는 잘만 말하더만...응? '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정부 제일시장 김장사 아줌마가 신내림을 받았다고 소문이 나니까 손님은 걷잡을 수 없이 들어왔다. 매일 같이 우리 집 거실에는 손님들로 그득그득했고,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와서 손님들의 커피를 타주기 바빴다.

 엄마는 처음 손님을 볼 때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무리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방울을 흔들어보고 부채를 부채질을 해봐도 뭔가 신은커녕 말 한마디 못하고 1시간 넘도록 1 사람의 손님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했다.

 엄마는 부채와 방울을 들고 신당을 향해서 번쩍 들어 흔들어대면서 속으로 애가 타도록 간절하게 외쳐댔다고 했다. 그런데 1시간이 넘도록 흔들어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했고, 그렇게 손님들이 많이 들어왔어도 그냥 돌려보내기를 며칠 동안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우연하게도 갑자기 동자신이 들어오는 것을 캐치를 하면 그때부터 거실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점을 한꺼번에 봐주기 시작했고, 그 동자신이 실려서

" 엄마는 떡 살 담가야 해! "

 그 한 마디면 그 손님은 신당에 쌀을 올리고 굿 날짜를 잡고 돌아갔다. 그 당시에 엄마는 이제 신을 받은 애동이 건방지게도 손님에게 굿값이 얼마냐는 질문에 '1천만 원'이라고 대답해 버렸고, 손님들도 엄마에게 푹 빠져서 그랬는지 엄마에게 그런 거금을 내고 굿을 했다.

 그때부터 엄마의 점을 보는 실력은 서서히 늘어갔다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봐주기는커녕, 엄마의 몇 마디가 그 손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려 주었고,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그 손님은 쌀을 걸어 놓고 돌아갔다.

 엄마는 무당이 되고, 하루하루가 바빴다. 낮에 점을 보고 밤에는 산에 있는 '굿당'이라는 곳으로 일을 하러 갈 정도로 말이다. 어쩔 때에는 저녁마다 엄마의 '신엄마'가 우리 집으로 출근을 했다. 그 '신엄마'라는 사람은 커다란 빈 가방을 들고 와서, 신당에 들어갔다 나오면 항상 그 가방이 빵빵하게 되어 돌아갔다.

 그런데 엄마가 천만 원짜리 굿을 떼어 신엄마에게 가져다주면 엄마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작 17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 그리고 신 언니라는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뗀 굿판에 왔으면서도 신엄마의 총애를 받는 우리 엄마를 시기 질투하기 바빴고, 그 덕분에 '신복(굿판에서 무당들이 입는 옷)' 조차 손을 대지 말라고 윽박지르며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고 했다.

" 야! 니 굿이라고 벌써 감히 신복에 손을 데는 거야? "
" 예? 아... 아니 저.. 그게 아니라 널브러져 있기에..."
" 손대지 마!! 건방지게 이제 막 받은 애동이 무슨!! "

 엄마가 무당이 되고 나서, 엄마가 날 때리는 일이 잦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우리 엄마가 무당이 되었으니 그쪽으로 호기심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래서 신당 안으로 기웃거리거나 하면 어김없이 엄마의 손이 내 뺨으로 날아왔다.

" 여기에 관심 갖지 말랬지!! "
" 앗.. 왜 때려.. 그렇다고... 아파라.."

 아주 나중에 들은 얘긴데, 엄마가 신을 받겠다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었다. 그때 엄마가 지금의 엄마의 손님들처럼 무당의 신당에 쌀을 올려놓고 내림굿을 하겠다고 했던 곳은 바로 지금의 신언니의 신당이었다고 했다.

 그때 신언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 사실, 무당 팔자는 네가 아니야. "
" 예? "
" 무당 팔자는 네가 아니라, 바로 니 아들이야. 아들에게 갈 신이 네게 온 것이야. "
" 예??? 그럼 제가 받지 않으면..."
" 그래. 네가 신을 거부하면 끝이 아니라, 그 신은 네 아들에게 가게 될 거야. 니 아들이 원래 무당 팔자였으니까. "

 엄마는 나 때문에 결정적으로 신을 받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아들을 무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 지 내가 신당에 기웃대거나 무속에 대해서 무언가 궁금해하면 어김없이 손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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