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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May 02. 2024

엄마에게 들은 엄마의 독립

feat. 강도 잡은 썰

 우리 집 거실은 항상 엄마에게 점을 보려고 대기하고  있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난 학교와 학원이 끝나면 저녁에라도 와서 늘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는 등 손님 대접을 했다.

 엄마가 알면 또 뺨을 맞는 일이 되기는 하나, 난 엄마를 도와주는 것이 좋았고, 또 이런 일은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거의 매일 같이 낮에는 점을 보고 밤에는 굿을 하러 나갔다. 엄마는 단란주점의 문을 닫고 김 장사만을 유지했는데, 김 장사는 오로지 새아빠의 몫이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엄마의 신통력은 실로 날이 가면 갈수록 대단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한 번은 나도 모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 집에서 있었는데 갑자기 신당에서 엄마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감히 여길 어디라고 들어와!! 너 한 두 번이 아니구나? 응? "

 엄마의 큰 목소리와 함께 신당의 문이 열렸고, 신당에서는 어떤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고 엄마가 서서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엄마의 손에는 신장칼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그 신장칼로 그 사내의 머리 가운데에 겨냥한 채로 그 사내에게 몰아붙였다.


무속 도구 중 '신장칼'


" 너 무당집만 골라서 다니면서 강도짓하고 털어가는 놈이구나? 응? 너 밖에 니 친구 또 있지? "
" 예?? 그... 그... 그게...."

 분위기를 봐서 그 사내가 무당집을 전문적으로 털러 나니는 전문털이범 같이 느껴졌고, 밖에서 있던 웬 부부 중에 남편이 신당 앞까지 다가왔다. 엄마는 그 남편에게 말했다.

" 대주님! 이 새끼 이거 뒤져봐요. 신분증 있나. "
" 예?? 아.. 예. 보살님. "

 그러나 그 남편은 힘으로 그를 제압하면서 몸을 뒤적거려 지갑을 꺼내었고, 그 지갑을 열고 신분증을 빼내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그 남편이 말했다.

" 이... 이거 위... 위조 같은 데요? "

 당신에는 신분증이 코팅지 같은 것에 코팅이 된 상태여서 그 코팅지만 살짝 벗겨 내면 사진을 바꾸어 위조하기도 쉬운 신분증이었다.


응답하라 1994 중에서....

 그리고 엄마는 신이라도 실린 듯이 대로하였고, 그 순간 들고 있던 신장칼로 그 사내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아무리 신장칼이 날이 없는 칼이라고 하더라도 그 상태에서 내리치면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임은 자명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사내의 머리통에 신장칼의 날 쪽이 아닌 손잡이 쪽으로 얻어터졌다. 엄마가 순간적으로 신장칼을 거꾸로 잡고 내리친 것이다. 나중에 그 사내를 경찰에 넘기고 들어보니 엄마 또한 그대로 내리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흥분을 한 상태였지만 순간적으로 신장칼을 거꾸로 돌려 잡아 손잡이로 대갈통을 때렸다고 했다.

 그 광경을 거실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다 목격을 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더욱 신통한 보살이라고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더더욱 많아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날이 가면 갈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자기가 굿을 떼어 신엄마에게 가져다주면 늘 17만 원, 20만 원, 아주 많으면 30만 원 정도밖에 주지 않으니 우리 생활은 전적으로 김장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유지해야만 했다.

 그래도 엄마는 무당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갔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그 신엄마께 신딸로서의 도리를 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낮에 손님을 보고 밤이 되어 굿당에서 굿을 하는 날이었다.

 한바탕 신엄마와 신할머니의 굿거리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이 되어 엄마는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엄마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상한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그쪽으로 걸음을 했고 다다른 곳은 엄마가 굿을 하고 있는 1호실 옆에 옆에 있는 3호실 방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바로 국악 피리 소리였다고 했다.

 엄마는 그 아름다운 피리 선율에 정신이 나가서 담배가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밖에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굿당에서 일하는 주방 이모가 그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엄마는 다급하게 그 이모를 잡고 물었다.

" 이모. 저~기 있는 국악 선생님 부르려면... 도대체 얼마짜리 굿을 떼어야 부를 수 있어요? "
" 예? 흠.... 잘은 모르는데...."
" 난 천만 원짜리 굿인데... 저런 분을 부르려면 한 2천만 원짜리 떼어야 불러요? "

 그러자 그 주방이모는 기겁을 하며 대답했다.

" 예?? 아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천만 원짜리면 부르고도 남지. 내가 저 국악 선생님이 얼마 받는 지까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
" 그... 그럼 저기 저 선생님은요? "

 엄마의 눈에 또 들어온 것은 그 국악 피리 선율에 춤을 추고 있는 그 방의 또 다른 무당이었다.

" 아... 저 선생님은 태성엄마라고... 한양굿 하시는 선생님이에요. "
" 한양굿이요? 그게 뭐예요? "

 그러나 그 이모가 한양굿이 뭔 지 대충 이야기는 해주었지만, 엄마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마의 신엄마가 하는 굿하고는 180도가 다른 굿이었고, 품격 자체가 다른 굿이었다. 엄마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자신의 신엄마가 하는 굿과 3호실에서 하는 굿이 차원이 다른 것임을 깨닫고 서서히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고 또다시 엄마의 굿판으로 돌아와서 굿을 보는데, 국악 피리의 선율 없이 징과 장구, 그리고 심벌즈 같이 생긴 제금이라는 악기들로만으로 우당탕탕 거리는 시끄럽기만 한 굿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엄마는 그때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했다. 엄마는 속으로

' 아... 이게 아니구나. ' 하고 확신을 하며 느꼈다고 했다.

 정말 본인과 신엄마, 그리고 신할머니가 하는 굿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많은 굿이었다. 엄마는 그날부터 엄마가 그 태성엄마라는 사람처럼 국악 피리의 선율에 아름답게 춤을 추며 굿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선율에, 또 춤사위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는 본인의 신엄마에게 정정당당하게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고 했다.

" 어머니, 저 독립하겠습니다. "

 그러자 그 신엄마라는 사람은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그렇게 엄마가 말을 하기까지 약 100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100일 동안에 몇 천만 원 이상을 벌어다 준 돈 줄이 나가겠다고 선포하는데 난리가 안 날 신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그 신엄마에게 별의별 욕을 다 들었다고 했다.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맞아본 적도 처음이라고 했다. 내 친아빠도, 새아빠도 살림을 부수긴 했지만 엄마를 때리지는 않았는데, 그 신엄마는 엄마의 뺨을 수차례나 때려가며 욕을 퍼부어댔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신엄마로부터 맞으면서 독립을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국악 피리 선율에 신복을 펄럭이며 춤사위를 추는 굿을 배우려고 일단 무당 용품을 파는 '만물사'라는 곳을 무작정 찾아가서 엄마가 설명하는 그 굿은 '한양 12 거리'라는 굿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1천만 원이면 그런 뛰어난 무당 선생님도 많이 부르고, 국악 선생님도 부를 수 있는 금액이라는 정보까지 얻었다.

 사실을 알고 나니까, 자신의 신엄마라는 사람은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갈취했나 알게 되었고, 그 사실에 분했지만 엄마는 자신이 이렇게 '한양 12 거리'에 눈을 뜨기 위해 값을 치렀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한양 12 거리'를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정작 손님이 하루아침에 뚝 끊겨 버린 것이다.

" 저기... 아줌마!! 점 보실래요? 울 엄마가 무당인데요. 제가 데리고 가면 5천 원이면 점 봐줘요. "
" 뭐어?? 하하..."

 어느 날, 그 바쁘던 엄마가 갑자기 며칠 동안이나 집에 계속 있으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게 좋았지만, 엄마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애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전화통화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미쳐버리겠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길로 밖으로 나가서 마치 동대문의 옷장사 삐끼처럼 지나가는 아줌마만 보면 ' 울 엄마 무당이니까 점 보러 와요. ' 소리를 하며 손님을 끌고 왔다.

 엄마는 그런 소리를 듣고 화는커녕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지었고, 엄마가 그러지 말라며, 다음에 또 그러면 혼난다며 나에게 경고를 하는 바람에 내 삐끼 노릇도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한테 눈을 비비며 갔다. 그리고 엄마한테 말했다.

" 엄마~ 꿈에~ "

 엄마는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듣다가, 내 꿈이야기를 듣고 표정이 바뀌었다.

" 엄마. 꿈에 아주 쪼끄마한 어린애가 날더러 우리 집에 무서워서 못 들어오겠다고 막 울었어. 한... 6-7살 됐으려나? "
" 그... 그래?? "
" 무슨 꿈이야? "

 그러자 엄마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댔고, 그로부터 3일 후, 또다시 우리 집은 손님들로 북적북적거리게 됐다. 나중에 다 크고 나서 엄마에게 들은 소린데, 엄마는 손님이 하루아침에 끊기게 된 것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었던 찰나에 내가 그 꿈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뭔가 일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신당에서 저녁 11시가 되어 자시(子時) 기도를 하게 되었고, 엄마가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나와서 우리 집 현관문 밖으로 향했다.

" 아무개(동생이름) 아빠!! 이리 와 봐. "

 새아빠가 가자, 엄마는 현관 앞에 흙만이 담긴 채 버린 커다란 화분이 있었는데 그걸 새아빠를 보고 들어서 엎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새아빠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새아빠가 그 화분을 엎자, 흙이 쏟아져 내렸고 그 속에서 동자 불상의 깨진 머리통이 나온 것이다. 알고 보니 신엄마라는 사람이 우리 엄마가 모시는 신들 중에 동자신이 가장 영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몹쓸 비방을 한 것이다.


동자 불상


 엄마는 새아빠를 데리고 당장 그 신엄마의 신당으로 갔다. 그리고 그 동자 불상 머리통을 신엄마의 점상 위에 '탁' 하고 놓고는 엄포를 놓았다.

" 앞으로 이런 장난 짓거리 하면 용서 안 합니다. 제가 신어머니로 예의를 차려드리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딴 짓거리 하지 마십시오. 네? "
" 뭐? 이... 이런! 누구 덕분에 무당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

 그리고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신엄마의 신당을 나왔고, 그때부터 엄마의 '한양 12 거리' 굿 배우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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