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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Apr 28. 2024

엄마에게 들은 엄마의 불같은 성격

'마담'이라고 하면 죽는다.


[별장 건어물 과일]

엄마가 아빠와 별거생활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엄마가 일산 능곡에 열었던 가게 이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산이 신도시가 되기 전에 사글세 단칸방을 얻어 생활했었다. 엄마는 그때 오토바이에 당시 6-7살이었던 내가 들어가도 될 만큼이나 큰 가방을 뒤에 매달고 아모레 화장품 방판을 시작하셨다.

처녀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던 그녀

" 아이고 언니~ 됐다니까~ "
" 아.. 다 했어~ 조금 남았는데 뭘. "

엄마는 화장품 하나를 팔기 위해서 고객의 집에 가서 설거지와 청소까지 하며 영업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품을 사든 안 사든, 마사지 기계를 갖고 다니면서 고객들의 얼굴에 마사지를 해주면서 영업을 했고, 그 결과 아모레 화장품 판매왕을 몇 번이나 했다고 했다.

엄마의 고객층은 다양했다. 그 고객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바로 '무당'이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당' 하면 천하게 보던 그런 사람이었으나, 그 무당 역시 고객이기 때문에 겉으로 티를 낼 수 없었다.

" 이그. 우리네 팔자 인 걸...."
" 네? "

무당이 자신의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는 '우리네 팔자'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쌍욕을 해댔지만 화장품을 팔아야 할 방판원이 그럴 수는 없었다. 엄마는 그 무당집에서 나오고 나서야 그 신당에 대고 쌍욕을 퍼부어댔다.

" 미친년이 우리네 팔자는 무슨 "

엄마가 판매왕을 하면서 가난하게 시작했던 우리 가정은 점차 좋아지는 듯했고, 나는 일산국민학교를 입학해서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학인 능곡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다. 우리 가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방 한 칸이 딸린 건어물 가게로 이사 가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아빠에게 근사한 차가 생겼다. 그 이름하여 사장님들이나 탄다는 그랜져였다. 아빠가 갑자기 그런 차를 몰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남동생인 혁이 삼촌 때문이었다. 분명히 혁이 삼촌 '덕분'이 아니라 혁이 삼촌 '때문'이었다. 혁이 삼촌은 우리 아빠에게 멀쩡히 잘 다니고 있는 외국계열 회사를 관두게 하고 아빠에게 회사를 차리도록 했다. 그 회사 이름은 '재팬 라이프'.

나는 그 당시 워낙 어려서 그게 뭐 하는 회사 인지는 몰랐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저 피라미드회사라고만 했다. 아빠는 피라미드 회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했더랬다. 그 덕분에 나는 92년 당시 으리으리한 그랜져를 우리 아빠차로 가질 수 있었다.

아빠가 피라미드 회사에 손을 대고 나서부터 우리 집이 서서히 불화가 자주 생겼다. 평소에 그러지 않았던 아빠는 허구한 날 엄마와 싸워댔고, 그 단칸방의 없는 살림을 부수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당시 가장 친했던 언니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언니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 야... 숙아.. 그 있잖니... "
" 뭔데? 뭔데 그렇게 말을 못 해... 괜찮으니 말해봐. "

그 언니는 또다시 한참을 망설이더니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 늬 남편이... 아무래도 바람난 것 같다? "

그 언니의 남편이 택시 기사를 하는데, 먼발치에서 우리 아빠가 어떤 한 집으로 다른 여자와 함께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 풉... 아냐. 재성아빠는 나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야. 잘못 봤겠지. "

그 이후로, 새삼스럽게 아빠의 외박이 잦다는 사실이 느껴졌고, 참다못해서 그 언니와 남편의 택시를 타고 아빠의 뒤를 따랐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아빠가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엄마 눈으로 직접 봤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다짜고짜 그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그 집에서 엄마는 기가 막힌 꼴을 보고야 말았다. 어떤 한 여자가 아빠의 발을 씻겨주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 이후로 엄마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나왔고,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별거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엄마가 열었던 [별장 건어물 과일] 가게도 문을 닫고 나는  번째 전학인 외할머니 댁으로 인천 가좌동 ' 건지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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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숙아. 한 번 가자니까... 응? 내가 예상 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 "
" 아... 싫다니까... 나 보리밥집에 김장사 하기도 바빠!!! 무슨 점이야 점은!! "
" 아이 참... 잔말 말고!! 따라와! "

엄마가 그 '하혈'이라는 놈을 40여 일이나 할 무렵, 엄마 친구는 그렇게 날이 가면 갈수록 말라가는 엄마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짜고짜 엄마를 무당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끌려간 무당집의 점상 앞에 앉았더니, 그 무당은 다짜고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 신령님을 모시고 있는 만신이 무슨 점을 보러 왔대~? "

그 소리를 듣고 엄마는 그 무당의 면전에 쌍욕을 퍼부어댔다.
" 이 씨ㅂㄴ이 얻다 대고 만신이래? 돌팔이 무당년 같으니라고. "

그러면서 그 점상을 확! 하고 둘러엎어버리고 나왔다고 했다. 그 순간 엄마는 내가 지금 이렇게 돈을 잘 벌고 있는데, 그러 내게 만신이라니 저 무당은 미친년이 틀림이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마당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평지에서 발을 헛디뎠는지, 마치 경사로에서 구르는 것처럼 엎어져서 몇 바퀴를 굴렀고, 여기저기 다치기까지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 이후 엄마는 또 장사에 매진했고 엄마의 그 알 수 없는 병은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엄마의 머릿속에는 '만신'이라는 글자가 계속 맴돌았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엄마는 자신이 점상을 엎어버린 그 집에 사과를 할 겸해서 다시 찾아갔고, 그 무당은 여지없이 무당 팔자이고 결국엔 신령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무당에게 신내림은 절대 받기 싫다고,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고, 그 무당은 엄마에게 '물장사'를 해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 잘 나갔던 '전주 보리밥집'의 간판을 내리고 '까치 단란주점'으로 바꿔 달고 인테리어까지 싹 다 바꾸고 물장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그 어떤 사업이든 열었다 하면 너무나도 잘 됐다.

" 하... 사장니임.. 제발 나오지 마세요. 네? 장사는 잘 되고 있는데 사장님이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

한 번은 술을 먹던 남자 손님이 엄마에게 '마담'이라고 호칭하면서 술을 권유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그 '마담'이라는 소리는 술집 여자를 천하게 부르는 호칭이라고 생각이 되었나 보다. 엄마는 그 남자 손님이 자기를 '마담'이라고 부른다고 쌍욕을 해댄 다음, 한쪽에 쌓여 있던 맥주 박스를 번쩍 들어서 그 남자 손님에게 집어던져버렸다고 했다.

엄마가 손님에게 그렇게 했는 데도 물장사는 너무나도 잘 됐다. 그래서 보다 못한 여직원들이 제발 좀 사장님 출근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장사는 자기네들끼리 어찌해도 잘 굴러가니까, 사장님은 와서 정산만 하고 손님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내쫓지 말라며 간곡히 부탁할 정도였다.

그렇게 엄마는 몸이 망가져갔는데도 장사가 잘 되어 무당의 길은 생각지도 않게 되는 듯했으나, 얼마 후 엄마가 집을 잘못 사게 되면서 수억 원의 빚을 지게 된 후, 서서히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무당'을 해야 하나라는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또다시 그 무당 언니를 찾아갔다.

" 결국 이렇게 됐구나. 하지만 나는 숙이 네 신엄마가 될 수 없어. "
" 응? 왜? 기왕 할 거면 언니한테 받을 래. "
" 아냐, 넌 선거리를 배워야 해. 난 앉은 거리 무당이야. 넌 반드시 선거리 무당을 해라. "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 선거리 무당이 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울의 다른 무당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가는 곳마다 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피할 길이 없냐고 물었지만 무당마다 이미 눈에 신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장사를 하면서도 엄마도 모르게 손님들의 점을 봐주었다고 했다.

" 에그... 머리에 백나비를 꽂았네. "
" 네?? 백나비?? 이거 미친년 아냐? "

백나비는 상을 당한 여자들이 머리에 꽂는 것이다. 자기 더러 갑자기 주위에 누군가 죽어서 머리에 백나비를 꽂겠다고 말하는 엄마를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손님들의 지갑에 얼마 있는 것까지 맞출 정도로 하루하루 신(神)의 세계와 가까워져 갔다.

결국 엄마는 어느 날, 나를 앞에다 앉혀놓고 말했다.

" 재성아... 엄마가... 무당이 되어야 할 것 같아. "

엄마가 그렇게 뜸을 들여 입을 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려던 그때였다. 그런데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엄마의 예상에 빗나가는 대답을 해줬다.

" 무당? 그래. 알았어. "

엄마는 나의 '그래 알았어.'라는 얼토당토않는 반응에 놀랐다.

" 무... 무당이 되면 친구들이 놀릴 텐데? 무당집 아들이라고? "
" 에이. 난 안 부끄러워. 내 걱정하지 말고 엄마 맘대로 해. 난 상관없어~ "

그렇게 엄마는 신내림을 받게 되었고 당시 '신할머니'로부터 받은 [왕룡암]이라는 별칭을 얻어 간판을 내걸고 엄마의 제3의 인생인 무당의 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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