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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욥 Apr 25. 2024

내가 겪은 기가막힌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또 다른 망설임


" 김 들여가세요~"

삽화. 황우람(루아흐)


 겨우 국민학교 2학년 짜리가 멜빵바지의 단추에 검정 비닐봉지를 매달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보일 적마다 외쳐댔다.

 엄마는 아빠랑 별거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김구이 기계를 이용한 구이김을 판매했다. 엄마의 말로는 그때 맛은 자신 있었고, 어린 아들이 학교가 끝나면 바로 시장으로 달려와서 멜빵바지에 봉투 뭉치를 매달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한테 김을 사라고 외쳐대니, 그걸 보는 아주머니들이 기가 막혀서 하나둘씩 김을 사게 되고 입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 꼬마야~ 김 얼마야? "

" 네~ 한 봉지에 천 원이에요. "

" 어머. 어쩜 어린애가 장사도 잘하네? 한 봉지 줄래? "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던 단칸방에 들어와서 엄마가 김가루가 잔뜩 들어 있는 돈 상자를 엎으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을 가지런히 세어 놓았다. 천 원짜리를 9장을 세고 그 뭉치 가운데 또 다른 천 원을 세로로 덮는다. 그러면 만원 뭉치가 완성된다.


" 아드을~ "

" 어? 히히.. 알았어. "

 엄마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다 뜻이 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밖에 있는 부엌으로 신발을 신고 가서 작은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반 스푼 이렇게 엄마 특유의 달지 않은 커피를 타서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그게 엄마랑 단 둘이 살았을 적에 내가 좋아하던 일이었다. 엄마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엄마가 커피 타는 모습을 보고 나 스스로 배웠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철이 없게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엄마가 갖고 있던 아빠가 나온 사진에 검은색 전기테이프로 얼굴을 가려 놓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 왜 그래~ "라고 하면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빠 싫어!! 엄마 괴롭히니까! 엄마랑 나랑 버렸으니까. "


 그러면 엄마는 계속 웃었다. 그때는 그 웃음이 엄마가 진짜로 좋아서 웃는 것 인 줄만 알았다. 머리가 크고 나서 다시 돌이켜보니 그건 엄마의 울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이, 아들이 하는 저 행동이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겠지.... 아마도.

 4학년 중반쯤, 내 마지막 전학여행이 끝날 때쯤 엄마에게 오니까, 의정부 제일시장 가구점은 이제 의류판매점으로 바뀌어서 허구한 날 가수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노래가 지겹도록 나왔다. 그 앞의 김 아줌마의 김가게에는 내가 서서 판매할 장소는 새아빠의 자리가 되었고, 나는 그 대신 6살짜리 동생의 종일반이 끝나면 그 동생을 돌보아하는 임무가 새로 생겼다.

 학교에서 나의 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친구 관계는 물론이고 나의 성취 수준은 다른 친구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국민학교 저학년 내내 공부와 친구를 사귀는 법도 배우지 못 한채 몇 개월마다 한 번씩 전학을 다녀야 했으니까 말이다.

' 주의가 산만하여... 읽기와 말하기, 쓰기 측면에서 성취 수준이 낮으며... '

 항상 내 성적통지표에는 이런 말이 따라다녔다. 이레 봬도 나는 엄마 앞에서 동화책을 소리를 내서 읽으며 한글을 6살 때 마스터한 신동이었는데 말이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새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주지 않아도 새아빠가 엄마를 지켜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김구이도 이제는 그냥 구이김이 아니라 비닐봉지에는 '부부 돌김'이라고 찍혀 있었고, 그 당시 하루평균 4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새아빠는 엄마를 내 대신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단, 술을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 너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싸우냐!! 어?? "


 우당탕탕!! 찰싹!!

 한 번은 동생이랑 싸운다며 술이 진탕 취해서는 날 때렸다. 그 큰 손으로 내 뺨을 때려 이빨이 부러지는가 하면, 술이 취한 날에는 어김없이 살림살이가 부서졌다.


" 왜 때리는 데? 어? 네가 뭔데 내 아들을 때리는 거야!!! 술만 먹으면 으이그!!! 증말!! "


 그러고 아침이 돌아오면 엄마에게 빌고 또 빌어서 또다시 착한 새아빠로 돌아왔다. 6학년때에는 날 때린 반친구를 혼내준다며 학교로 가는 길을 걸어가다가 마대자루의 나무 부분을 발로 툭 하고 부러뜨리고는 그 친구에게 가서 혼내준 적도 있었을 만큼 말이다. 난 그게 내 편을 들어줘서 좋은 아빠라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술을 먹으면 개가 되는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한 번은 또, 술이 잔뜩 취해서 또 개로 변신했는데, 이번엔 미쳐도 완전 미치는 바람에 밤 12시가 넘어서 이번엔 동생도 같이 새아빠를 피해서 3명이서 집 밖으로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제정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새아빠는 엄마에게 빌고 또 빌었고,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그 매번 돌아오는 마지막이라는 소리에 또 져줬다.


" 정말 다시는 술 안 마실게. 정말이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만 눈 감아줘. 응? "

" 그 마지막이라는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천 번이다. 알아?? "

 아마도 엄마는 그 사이 새아빠에게 정이 들어버린 것도 있었겠지만, 평소에는 자상한 내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기에 또 받아주고 하면서 내 아들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엄마는 김구이 장사로 대박이 터졌고, 새아빠는 부인을 잘 만난 남자가 되어 김장사 아줌마의 남편이 되면서 우리 집도 차츰 규모가 커져갔다.

 15평의 장암동 주공아파트로, 그리고 30평의 주택으로 차츰 집이 넓어져갔다. 우리 가족이 장암동 아파트에 살 무렵에는 엄마는 사업을 확장시켜서 의류판매점 건물 지하에 보리밥집을 오픈했다.

 우리 엄마의 언니인 첫째 이모는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났는데, 그걸 이용해서 전주보리밥집을 오픈한 것이다. 엄마의 그 사업 역시 너무나도 잘 되었다. 김 장사는 아주 새아빠에게 일임하고 엄마는 보리밥장사에 매진했다. 연일 장사가 잘 되어 엄마는 늘 시장 곳곳으로 손수 배달을 다니곤 했다.

 엄마는 그야말로 오픈하는 사업마다 너무 잘 되었다. 그리고 신곡동으로 3층에 있는 30평 주택으로 이사 갔는데 이상하게도 그 잘 되던 보리밥집을 관두고 그 자리에 단란주점을 오픈했다.

 역시 그 단란주점도 너무나도 잘 되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부자가 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하루하루를 골골거렸다. 엄마가 다른 엄마친구인 김말이 이모와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40 여일 넘도록 '하혈'이라는 놈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하혈'이 뭐기에 엄마가 저토록 날이 가면 갈수록 말라만 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도 엄마의 사업은 너무 잘 되어 30평대 주택에서 이제 곧 1, 2층 합해서 60평이나 되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다.


 나와 동생도 무척이나 기대했다. 그런데 그 집을 계약한 지 얼마가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 집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TV에서 보던 '차압' 한다는 딱지가 바로 이것 같았다. 내가 엄마한테 듣기에는 그 새로 산 집이 잘못된 모양이다. 아직도 그 사기 친 아줌마 이름도 잊어먹지도 않는다. 김ㅅ순!! 우리 집을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 당시 엄마는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고, 등기부나 이런 걸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지인 간 친분만으로 믿고 거래했는데, 그 집에 갖가지 압류가 되어 경매에 넘어가기 일보직전의 집을 계약한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의 빚은 그 당시에 6억이 넘는 빚이 하루아침에 생겼다.

 그렇게 우리 집은 망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커서 엄마에게 들어보니 그 빚쟁이들을 집에 모아놓고 여태까지의 본인 신용으로 자길 믿고 기다리면 이자까지 빠짐없이 갚겠다고 설득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가 너무나 잘 되고 있었던 터라 가능했지 않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38kg의 빼빼 마른 엄마는 날 불러놓고 또 한 번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머뭇거렸다. 나는 엄마가 또다시 날 아빠에게 보낸다는 이야기를 할 줄 알고 엄마의 입을 열기도 전에 미리 받아쳤다.

" 나 아빠한테 안 가! "

 집안의 분위기가 또 날 다시 아빠한테 보낸다고 그럴 것만 같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다.

" 저기...  재성아? "
" 아 뭔데? 아빠한테 가는 것도 아니고 "

 그 이후로 엄마는 또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마음을 먹었는지 입을 열었다.

" 엄마... 무당이 되어야 할 것 같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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