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가 강의를 해도 될 사람은 맞을까?
"00 씨, 혹시 강의해 보시는 것 어떠세요?"
"네? 제가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알고 지냈던 한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고, 대표님의 용건은 나를 강의자로 섭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걱정과 우려가 스쳐 지나갔다. 대표님이 어떤 교육 관련 사업을 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고, 그곳을 나도 종종 팔로업하고 있었기에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저기 들어가는 연사분들이랑 내가 한 라인업에 선다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그런 자기 의심과 함께, 내가 강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함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가 끝날 무렵 마음속에서는 기대와 설렘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기와 욕심에 가까웠던 것 같다. 지금은 소위 내가 별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나를 알아봐 줬다는 감사함. 그리고 내 가치를 인정해 준 누군가에 대해 그 선택에 후회가 없게 만들겠다는 자신감. 여러 가지 마음이 공존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일단 하자. 단,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그렇게 강의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도 이전 회사가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또 강사분들을 섭외해 교육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던 곳이라, 강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적재적소에 듣고 싶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호기롭게 강의를 수락하고 나서 드는 걱정은 딱 하나였다.
"정말 이 사람들이 나를 통해 무엇을 얻어가야 유의미할까?"
무료 강의가 아니다. 나도 돈을 받지만, 수강생들도 비싼 돈을 내고 그 자리에 온다. 물론 내 강의만을 듣기 위해 오지는 않더라도,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나이가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기에 그 돈이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다. 그렇기에 내게 주어진 2시간 30분이란 시간 동안, 정말 모든 걸 쏟아내서 다 주고 싶다.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는 그들의 선택이더라도, 적어도 푸짐하게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주고 싶다. 그게 나를 알아봐 준 대표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이 수강생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담당자와 여러 논의 끝에 'SNS 콘텐츠 운영'이라는 주제로 좁힐 수 있었고, 이와 관련되어 수강생들이 진짜 회사에 취직하거나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할 때 조금이라도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다. 좋다. 이제 정해졌으니, "이런 부분은 내가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과 "내가 만약 이런 일을 맡게 된 다면"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내는 식으로 강의안을 준비했다.
강의 날은 10월 18일. 이 날 수강생들의 반응은 사실 어떨지 모르겠다. 강의안은 완성됐고, 이제는 조금씩 체화시키면서 최종 수정만 앞두고 있다. 내가 준비한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아마 그것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것이고 그게 가짜라면 당연히 티가 날 것이다. 난 진심이기에 한 두 명이라도 이 강의가 끝나고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해 만나고 싶다 혹은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그 정도로 간절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고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흔치 않다. 어떤 기회든 자신이 계속 무언가를 한다면 찾아온다. 그리고 그 기회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고, 이를 잡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다.
나는 결코 코리안 야야뚜레로 강의를 통해 경제적 수익을 바랐던 적은 없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보고서 그런 생각에 확신을 내리는 것과 경험을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난 경험의 한 챕터를 더하기 위해 강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고, 무엇인가를 하기로 했다면 최고가 안될지언정 최선은 다해야 한다. 그 최선의 결과가 별로 라면 그것은 명확하게 내 현재의 실력이 그 정도라는 것이다. 인정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면 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하나하나 쌓여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되고, 비춰지는 모습을 기반으로 브랜딩이 된다.
사실 나는 오늘 이 강연 제안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깨달았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관성의 힘'이다.
이기는 놈은 맨날 이기고, 지는 놈은 맨날 진다. 어디서 한 번은 들어본 말인 것 같다. 저 말의 뜻은 명확하다. 약간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같은 뉘앙스로, 운과 복도 있는 사람에게나 온다는 뜻이다. 뭐 운명론적인 단어라고 생각할 순 있겠다. 하지만, 관성의 힘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다.
매번 이기는 사람에게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매번 져왔던 사람에게 지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에도 이런 말이 있다. '위닝 멘탈리티', 이기는 정신적인 힘이라고 번역하면 될 것이다. 우리 팀이 지고 있어도, 혹은 비기고 있어도 우리는 이기는 팀이야라고 팀 전체가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승리하거나 비기는 것. 질 것 같은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것 같은 경기를 이기는 팀들에게 우리는 위닝 멘탈리티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심리적 경향성은 큰 경기나,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기는 놈일까? 지는 놈일까? 아니 더 정확하게, 여태 이기는 삶을 살아왔을까? 지는 삶을 살아왔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1초 만에 결론은 났다. '지는 놈'이었다. 인생을 돌아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냥 내 입장에서 나는 지는 게 익숙했다. 지는 걸 합리화하고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답을 찾았던 그런 사람. 그럼에도 노력은 열심히 하니까 언젠간 좋아지겠지하고 자위하던 사람. 그게 딱 나였다.
하지만 코리안 야야뚜레를 시작하고 나서는 외부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과 성과는 내게 달렸다. 그렇다 보니 더 이상 지는 놈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기는 놈이 되고 싶고, 그게 어쩌면 이 강연이 처음 나를 테스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이 부족한 내가 이 하나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넘긴다고 하면, 그다음에 올 퀘스트들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또 보기 좋게 부숴주겠다. 하나씩 그 퀘스트를 깨다 보면 위닝 멘탈리티가 생길 것이고, 그 심리적 경향은 나의 가치를 더 높여줄 것이다. '저 사람이 하는 것은 나쁘지 않아'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만약 내가 늘 이기는 놈이었다면, 강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한다고 했을 것이다.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더 컸을 것이고, 내 가치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는 놈이었기에 고사하려고 했고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제 나는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늘 이기는 놈이 되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코리안 야야뚜레는 과연 이기는 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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